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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이아데스 Mar 16. 2023

다시 세상 속으로

류OO 작가의 글을 좋아한다. 그의 글은 상처받은 사람이 공감하는 어떤 감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아픔을 치유하는 유머의 힘이 있다. 아무튼, 감사하게도 그의 글을 통해 상처는 아물었고 예민함은 위로받았다.


하나같이 예민하지 않은 것이 없다. 고추장이나 된장이 피부에 묻으면 발진이 생긴다. 몸 상태가 안 좋으면 더 심하다. 그까짓 피부가 민감해서 생기는 알레르기쯤이야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니 별일 아니다.

전원생활을 오래했지만 여전히 벌레에 놀라는 일이 많다. 하루에 몇 번씩 들려오는 비명은 집에 사람이 있다는 신호이다. 샤워하다 갑자기 튀어나온 귀뚜라미에 놀라 뛰어나가고 텃밭 가꾸다 지렁이에 놀란 내가 뒤로 넘어질 때 바구니는 공중으로 자주 날아갔다.

햇살이 반짝이던 어느 봄날 오후였다. 밀려둔 설거지를 하기 위해 개수대에 걸쳐있던 고무장갑을 꼈다. 그런데 오른쪽 세 번째 손가락 끝 부분에서 무언가가 느껴지는 게 아닌가. 그 순간 비명을 지르고 고무장갑을 벗어던졌다. 놀란 나를 위로하듯 그 속에서 그리마 한 마리가 천천히 다리를 흔들어 보이며 기어 나왔다.

경이로운 뉴질랜드 여행 중 동물찻길 사고를 보는 것은 최악이었다. 연속되는 내 비명에 놀라 운전 중인 지인과 다투기도 했다. 위험하기도 했지만 나오는 비명을 어쩌겠는가. 오롯이 감각과 신경의 예민함 때문인데.

오래전 친구랑 ‘플래툰’이라는 영화를 보러 갔었다. 전쟁영화는 싫어했지만, 그 당시 최고 흥행작이었다. 영화 장면에서 들려오는 총소리는 참기 힘들었다. 손가락으로 눈을 가리면서 두려움으로 영화를 보던 중, 월렘 데포가 V자를 그리며 쓰러지는 장면에서 나도 그만 쓰러졌다. 그때는 친구가 비명을 질렀다. 팔과 다리가 의지와는 상관없이 움직였고 몹시 당황한 친구는 옆 사람과 함께 극장 앞에 있던 약국으로 나를 데려갔다. 약사는 따뜻한 물과 약을 가져다주면서 일시적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울고 있는 어른을 달랬다. 약국을 들락거리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그렇게 꼬박 1시간가량 누워있었다. 그 이후로 친구는 영화 보자는 말을 절대 꺼내지 않았다.


물론 가장 어려운 것은 사람 관계이다. 예민한 성격 때문에 사회생활에서나 가족 간의 갈등에서 상처를 입는 쪽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나의 예민함은 항상 긴장해 있고 불안하다. 시간이 지나 갈등이 사라졌다 해도 상처가 아물기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럴 때는 무딘 성격을 가진 이들이 정말 부럽다. 간혹 뉴스에서 상처받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아파 때로는 눈물도 흘린다. 고통 속에 있는 타인에 대한 공감이 나의 생활까지 좌지우지한다. 이러니 삶 자체가 아슬아슬할 때가 많다. 유리멘탈 같은 정신과 예민함은 때때로 나를 세상 일부와 단절시키기도 한다.


그렇지만 어떤 때는 사람과 세상을 보는 시각이 정확해서 나 자신도 놀란다. 또한, 살아가면서 형식이 아닌 본질로 사람과 사람이 연결된다는 확신도 있다. 예민한 사람은 각자의 방법으로 자신의 예민함과 살아간다. 어쩜 상처를 쉽게 받는 사람의 특징이 아니라 섬세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순수한 눈을 가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예민함이 부정적이거나 열등함은 결코 아닐 것이다. 이제는 ‘너무 예민하세요.’라는 말에 의기소침해지기보다는 적극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겠다.


바야흐로 뾰족한 나의 예민함을 끌어안고 다시 세상 속으로 나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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