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한시였다. 연속 근무 열여덟 시간 째였다. 늦저녁에 몰렸던 환자들이 대부분 정리되어 가던 때. 눈꺼풀이 너무도 무거워져 하루의 다섯 번째 커피를 마시려던 참이었다. 대낮부터 함께 고생한 선배는 잠시 눈을 붙이러 방에 들어갔으니 응급실에 홀로 남아 있었다. 칠십 대 남성 한 분이 배가 아프다며 실려왔다. 그 옆에는 등이 한참 굽은 아내분이 동행하였고, 남편의 오랜 투병기를 함께해서인지 지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본원의 의무기록을 살펴보니 골수형성이상증후군으로 오랜 기간 치료받았던 분으로, 기대여명이 오래 남지 않았던 환자였다. 그는 내게 너무나도 선명한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배가 너무 아프다고, 숨이 너무 차다고, 힘들다고, 힘들어서 죽겠다고. 죽겠다는 그 마지막 한 마디가 거슬렸다. 하루에도 수십 번 듣는 얘기지만 그때만큼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체온을 재보니 미열이 있었다. 암 환자의 몸이 뜨겁다는 보고를 들으니 잠이 조금 깨는 것 같았다. 채혈을 하고 수액 공급을 시작할때즘 환자의 혈압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패혈증 의심하에 일차 소생술이 시작되었다. 충분한 수액을 공급하고, 열을 떨어뜨리고, 더한 응급 상황을 대비해 동맥관을 잡고, 적절한 항생제를 투여했다. 그 사이 저편 처치실에는 술에 취해 넘어지거나 폭행에 연루되어 얼굴이 찢어진 환자들이 하나둘씩 들어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들의 태도는 거만했다. 무고한 자신의 살갗에서 피 흘리는 모습이 보이지 않느나며, 의료진을 향해 큰 소리로 욕을 내뱉고 있었다. 밤마다 예외 없이 일어나는 일이라 개의치 않았다. 생명이 꺼져가는 이들은 조용했고, 그것이 오래 지속될 이들은 큰 소리를 내었다. 그것이 불편한 사실이었다.
환자의 혈압이 계속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젠 호흡속도마저 너무 빨랐다. 일차 혈액검사도 좋지 않았으며, 의학적 기준에 따라 환자를 재우고 기도삽관을 시행하였다. 승압제 요구량이 점차 늘고 있었지만 혈압이 잡히지 않았다. 팔에 흐르는 여린 정맥들로는 감당이 안될 양이었다. 독한 승압제를 안전히 투여하기 위해 그 자리에서 굵은 경정맥을 확보하는 시술을 했다. 시행한 추가 혈액검사는 악화되기만 할 뿐이었다. 보호자에게 상황을 수차례 설명하고 면담을 하였다. 보호자는 더 이상의 연명치료를 원치 않았다. 이제 보호자의 옆에는 인공호흡기를 입에 머금은 남편이 자고 있었다. 환자의 고통은 줄었고, 보호자의 고통이 시작되었다.
밤이 깊어 새벽 네 시가 되었다. 밀린 일이 많았다. 술 취한 환자들의 얼굴을 봉합하고 있었다. 반쯤 봉합했을 때 중앙연락망으로부터 스테이션에 한 통의 전화가 왔다. 한 육십 대 남성이 심정지로 신고되어 십분 뒤에 본원에 도착할 예정이라 했다. 봉합하던 실을 내려놓고 소생실로 향했다. 실을 내려놓자 만취한 이는 환자를 내팽개치고 어딜 가느냐 소리를 질렀다. 선배와 교수님도 미리 연락을 받고 내려와 있었다. 힘을 모아 소생술을 시행했지만, 여러 정황상 환자는 이미 사망한 채로 내원한 것이라 생각되었다. 교수님은 조금만 더 해보자 했다. 소생 시작 삼십여분이 넘었을 때 소생실 입구에 서 있던 아내분에게 정황을 알렸다.
보호자분.. 이미 돌아가셔서 오신 것 같습니다.. 최선을 다해보겠지만, 조금 더 해보겠지만, 아마 돌아오시기 힘들 것 같습니다.
평생 약 한 번 먹어보지 않았던 남편이라며, 몸 관리하러 이른 새벽 운동을 나갔다 저리 된 것이라며 아내분은 내 말이 시작되기도 전에 오열하기 시작했다. 그 비명은 너무도 커서 만취하여 봉합을 기다리는 저편에 있는 이들의 입마저 단번에 봉합시켰다. 그녀는 남편을 지금 만나게 해 달라며 소생실로 들어가려 했다. 아직 처치가 진행 중이므로 그녀를 들여보낼 수 없었다. 그녀의 몸을 붙잡는 내가 한없이 무력하게 느껴졌다. 조금 뒤 난 환자의 임종 선언을 하였다. 그리고 아내분에게 그 사실을 분명하게 전했다. 아침 여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그녀는 미숙한 손동작으로 휴대폰을 한참 만지더니 가족들에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오래도록 오열했다.
소생실 일이 마무리될 무렵, 이른 밤에 내원했던 암 환자의 심정지가 발생했다고 보고가 왔다. 선배가 미리 그 환자 곁을 지키고 있었다. 보호자는 가슴압박을 원하지 않았다. 더 이상의 연명치료를 거부했다. 우리는 그가 편히 가시도록 더 이상의 힘을 가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임종을 맞이했다.
여섯 시간 전 그와 첫인사를 나누던 때가 생각났다. 나 자신을 그에게 소개했을 때 그는 내게 잘 부탁한다고 말하였다. 그의 언어는 너무나도 또렸했다. 그의 죽음은 그와 맺었던 모든 관계를 매듭지었다. 지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관계도 영원하지 못함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지상에서 쌓은 부와 잃은 것들은 정지되었다. 그를 성실히 보살피던 아내는 육체의 쉼을 얻게 되었지만 마음의 쉼을 얻으려면 시간이 한참은 더 필요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와 맺었던 여섯 시간의 관계성은 그 유효기간이 짧았다. 누군가의 칠십 년 인생 가장 끝자락에 내가 관여되었다는 사실은 감사하였지만 그보다 더 쓰리게 다가왔다.
밀린 봉합을 다시 시작했다. 만취하여 이성과 절제를 망각한 이들의 얼굴을 한 땀 한 땀 꼬매기 시작했다. 그들의 무례함을 덮어두고 보지 않기로 했다. 술에서 깨면 이어가게 될 그들의 삶을 보기로 했다. 선택하여 연을 맺은 처자식, 사회 안에서 맺은 직장 동료들, 허한 마음을 달래려 밤마다 찾게 될 술친구들까지. 고인과 달리 만취한 이들에게는 유효한 관계들이 있었다. 그 관계들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피가 철철 흐르는 살갗이 아물어야 했다. 난 그 일에 기꺼이 동참하기로 했다.
날이 밝았다. 난 결국 준비해 둔 다섯 번째 커피를 마시지 못했다. 카페인 없이 밤을 넉넉하게 지새워서 다행이라 생각되었다. 내게 필요한 것이었지만 멀리하고 싶었던 것이었으니. 보관했다가 다음 날 출근하면 첫 음료로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두 시신을 뒤로하고 퇴근하였다. 집으로 돌아와 여느 때보다 깊이 잠들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