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 가해
처음에는 학폭 사실을 숨겼다. 부모님은 나 말고도 감당해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했었다. 가족 간 애착이 잘 형성되어 있었다면 믿고 의지하며 털어놓을 수 있겠지만, 그런 관계는 못되었다. 숨길 수 있는데 까지 숨겼다.
학교에서 먼저 드러났고 선생님 중 하나가 가해자들과 상담 후 나에게 말을 전해주었다. 이것도 옳은 대처는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그 선생님은 가해자들을 일대일로 불러 나에 대해 물었고, 그렇게 했을 때 나를 진심으로 싫다고 한 학생은 없었다고 말했다. 악의가 있어 그러는 건 아니라고. 그리고 앞으로 그러지 않기로 했다고. 상처 주지 않으려고 노력은 했지만 가해자 변호에 가까운 말을 들었다. 그 후에도 교무부장에게 불려 갔다. 가해자가 성적도 좋고 그렇다 보니 어쩌고. 벗어진 머리나 쳐다보며 네. 네. 하다가 돌아왔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얘들끼리의 갈등은 거진 왕따나 폭력으로 귀결이 됐다. 요즘은 다를까? 얘들도 선생도 갈등을 푸는 방법을 모르는 채로 폐쇄적인 학교 건물과 시스템 속에 있어서 작은 갈등도 곧 잘 커졌다. 뾰족한 수가 없이 길어지면 피로감만 쌓인다.
집에서 겪은 일은 잊히지 않는다. 가족은 계속 대면할 수밖에 없어서 그런가. 거실에 있던 컴퓨터로 싸이월드를 보다가 내 가족을 욕하기 위한 다이어리를 읽었고, 못 참고 울어서 가족에게 들켰다. 그 이후로 엄마들끼리 얘길 했었고... 어른들도 대응할 줄 모르는 건 똑같아서 후에도 달라진 건 없었다. 다만 표면적인 폭력은 좀 사그라들었다.
처음 사실을 털어놨을 때 엄마가 잘 지내보라고 했던 말. 학교에서도 울었던 적이 없었고, 혼자라도 점심은 꼭 먹었고, 성적도 좋았는데. 그러니까 나는 누가 괴롭혀도 겉으로나마 괴롭혀지고 싶지 않았는데.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가족도 남이구나 깨달은 순간이었다.
내가 잘못한 게 없어 떳떳하게 굴었지만, 여전히 폭력의 원인이 설명되지 않는 게 괴로웠다. 내가 이렇게 괴로운 데는 이유가 있어야 할 것 아니야? 이 모든 일의 원인을 찾고 싶었지만 그런 건 없었다. 학교에서는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 시간 견디고 집에 오면 그만이니까.
근데 애써 엄마에게 털어놓았더니 잘 지내보라니. 내가 집에서도 괴로운 이유는 나에게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원인을 찾아야 어디 탓할 구석이 생겼고, 설명이 안 되는 것보다는 나았다. 진작 말할걸 괜히 숨겨서 내가 일을 키웠다고 생각했다. 말이 안 되지만 그때는 그랬다.
내 반응을 보고 엄마는 실언했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 이미 쏟아진 말은 돌이킬 수 없다. 사과를 들은 것도 아니다. 죄책감에 짓눌렸다. 어렸을 때부터 힘든 결혼생활을 하나하나 나에게 털어놓았던 엄마의 가스라이팅이 한몫했다.
엄마 아빠가 화를 냈다. 말했듯이 가해자 부모를 만났고, 나를 감싸주려 했고, 편들어주었지만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내 얘길 처음 들었을 때는 전부 뒤집어엎을 듯이 화를 냈지만, 막상 그 '엄마들끼리의 대화'는 믹스커피처럼 미지근했다. 자기를 욕하는 딸의 친구의 엄마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는 엄마도 몰랐을 거다. 그 장면을 보고서는 내가 처한 상황이 어떻게 해서도 해결되지 않으리라 체념이 되었다.
더 이상 누구를 피로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견디든 맞서든 혼자 해야 했다. 현실적으로도 그랬다. 내가 어떻던지 집은 어렵고 아빠는 아팠다. 엄마는 갖은 스트레스와 고부갈등, 일, 돈에 치여 지쳤고 상황이 매우 안 좋았다. 이후로 더 이상 가족들에게 기대거나 솔직하게 말하는 일은 없어졌다.
그래도 가족을 사랑하긴 한다. 좋아하진 않지만.
최근에 하게 된 생각이다.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일치하지 않을 때. 애증 말고 설명할만한 단어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