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건은 나의 몇 퍼센트를 이루고 있을까?

재수

by 제이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수능공부에 몰입했다. 그때즘 되니까 집중력이 조금 회복되었다. 그렇다고 아주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대학을 멀리 가야 집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노력은 했다. 내신은 말 그대로 바닥이었기 때문에 수능공부에 올인했다. EBS 교재가 그대로 연계된다길래 외우다시피 몇 회독을 했다. 생각할 필요 없이 반복만 했다. 모의고사에 EBS 지문이 그대로 나오면서 점수가 수직상승했다.


실제 수능날에는 어렵고 생소한 지문이 나왔다. 붙은 곳이 없어 재수를 해야 했다. 형편이 안되어서 집에서 독학했고, 수학만 달에 50만 원짜리 과외를 받았다. 마지막 3달은 재수학원을 다녔다. 나는 내가 부모님을 잘 설득해서 보내준 건 줄 알았다. 최근에 삼촌이 설득해 주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내 말을 들어줬던 건 아니었다.


처음 간 재수학원은 너무 비쌌다. 한 달에 300만 원 정도 하는 기숙학원에서 첫 수업을 들은 날,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EBS로 공부하다가 전년도 수능을 망했는데 또 EBS로 수업을 하고 있었다. 들어보려 했지만 지문 가지고 나온다 안 나온다 점쟁이 같이 수업하길래 관두고 싶다고 전화했다. 내 생각을 전달했지만 씨알도 안 먹혔다. 그때는 내가 보내달라고 한 학원 안 바꿔주는 게 납득이 안 됐는데, 삼촌말을 듣고 보니 내가 가고 싶다 해서 보내준 게 아니었어서 그랬던 거구나 싶다.


엄마는 또 학원비를 들먹이며 못 꺼내준다고 했고, 나는 돈 때문에 그러냐며 화냈다. 일주일 동안 전화로 매일 싸웠다. 소화가 안 돼서 계속 토했다. 돈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에 절망적이었고, 이 학원에서 거지 같은 수업을 듣고 수능을 망한 다음 엄마에게 들을 말이 무서웠다.


결국 수업이 없는 자습형 기숙학원으로 옮겼다. 거기서 받은 수능성적은 괜찮았지만 정시는 원서 쓰는 것도 중요했다. 한 시간 단위로 수 십만 원 하는 입시상담을 받을 수가 없었고, 어디 물어볼 곳도 없어서 전년도 최초합 성적만 보고 국립대를 썼다. 다 떨어져서 군외 집 근처 전문대학에 입학금을 냈다.


입학금을 내고 며칠뒤 국립대에서 추가합격 통보를 받았지만 철회했다. 그대로 집 근처 전문대학교 입학했다. 행복하진 않았지만 해왔던 선택 중에 후회하는 게 거의 없는데 이거 하나는 후회된다. 더 이상 엄마랑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돈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그랬다.


내가 재수할 때 쓴 돈은 2천만 원 정도다. 우리 가족에겐 너무 큰돈이라고 생각했다. 남동생이 성인이 되고 나서 2000만 원짜리 중고차를 턱 사주는 걸 보기 전까지는.


이때까지는 엄마에게 계속 자식에 대한 사랑을 기대했었다. 엄마가 나랑 동생은 똑같이 자식처럼 대하지만 단지 내가 동생에게 가야 할 돈과 교육을 다 뺏어서 동생을 아픈 손가락 취급하는 줄 알았다.


상담하고 공부하면서 알게 된 건 엄마는 나를 또 다른 자신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를 분리하지 못해서 내가 자기 뜻대로 안 될 때마다 화를 냈다. 내가 하는 말은 말이 아니었고, 내 역할은 자식이 아니라 엄마의 친구고 애인이고 엄마였다. 징그럽지만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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