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지나감 그리고 죽음

사색의 공간

by 동남아 사랑꾼


오픈 전의 유엔묘지는 고요하다.

저 멀리 대로변에서는 출근길 사람들을 태운 차들이 현실의 소리를 남기며 달리고, 이곳에서는 묘지 단장을 위해 몸을 풀고 장비를 챙기는 현장 직원들의 소근거림이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그렇게 서로 다른 세계의 소리가 겹쳐지며 유엔묘지의 아침이 열린다.


나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출근해 혼자 이곳을 걷는 시간이 좋다. 등 뒤로 아침 햇살을 지고 걸으면 내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다. 모딜리아니의 그림 속 인물처럼, 내 키의 세 배쯤은 되어 보이는 그 그림자는 아랫배가 나온 지금의 모습도, 늙어가는 기색도 교묘히 숨겨준다. 마치 젊은 시절의 내가 나와 나란히 산책을 하는 것 같아 괜히 마음이 놓인다.



요 며칠 부산의 날씨는 오락가락이다. 꽃봉오리를 부끄럽게 드러내던 홍매화는 피기를 주춤한다. 하지만 오늘처럼 포근한 날씨가 며칠만 이어진다면, 첫 홍매화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또 기다려야 한다. 조급해하지 않으려 한다.

세상사도 자연의 이치도 다 때가 있다는 것을, 선인들의 말이 아니더라도 60여 년의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계절의 변화 앞에서 서툴고 기다림 앞에서 성급하다. 그보다 더 서툰 것은, 여전히 이별이다.


추운 날씨에도 향긋한 향을 뿜어내던 만리향의 하얀 꽃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그러나 이제 그 향기는 심 빠진 콜라처럼 옅어졌다. 남은 꽃을 따 코에 가까이 대고 킁킁 맡아보지만, 제때의 그 향은 돌아오지 않는다. 아쉬움에 미련을 놓지 못하는 내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지금 이 순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라”는 톨스토이의 말도, 나는 아직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넓고 넓은 잔디는 영혼들을 위한 공간이다. ‘잔디 출입 금지’라는 팻말을 볼 때마다, 참배객들과 산책 나온 이웃들을 위해 일부 공간은 열어두고 싶었다. 그래서 몇 개의 의자를 놓고, 입구에는 ‘출입 금지’ 대신 ‘사색의 공간’이라는 팻말을 세웠다. 그냥 잔디에 들어가도 된다는 말보다 훨씬 좋은 이름이다. 센스 있는 직원 덕분에, 그렇게 사색의 공간이 생겼다.



그 의자에 앉아 바라보니, 한 영국 참전용사의 묘비가 눈에 들어온다. 묘비에 꽂힌 국기와 국화 한 송이가, 방금 지나쳐온 가즈오카 향나무 사이로 보인다.

1952년 1월 16일. 오늘로부터 75년 전, 19세의 꽃다운 청춘이 전사한 날이다.


그의 죽음을 떠올리며, 나는 포근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고요한 하루를 시작하는 이 시간이 얼마나 큰 특혜인지 새삼 깨닫는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흘러가는 나의 아침은, 누군가의 희생 위에 놓여 있다.


기다림은 지나가고, 지나감은 결국 죽음에 닿는다.

그러나 그 죽음 위에서, 우리는 또 하루를 산다.

사색의 공간 의자에 앉아, 나는 그 사실을 조용히 되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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