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파도 편지 27 : 새 단장

2025. 9. 15.

by 김경윤

1.

터미널 공사가 드디어 끝났습니다. 10년이 다 되어 가니 한 번은 대보수가 필요했지요. 열흘 남짓 시원한 터미널을 떠나서 날씨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 선착장에서 근무했는데, 야외 근무 생활도 이제 끝났습니다. 첫 근무를 하며 컴퓨터를 설치하고 발권을 해봤는데, 정상적으로 작동합니다. 이제 새로 단장한 터미널에서 새 마음으로 근무하면 됩니다. 아직은 신나냄새를 지워야 하기에 자주 통풍을 시켜야 하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러 밖으로 자주 나가야 되지만, 그도 일주일 정도면 끝날 것 같습니다.


2.

새 단장이 좋은 일이라면, 그로 인해 안 좋은 일도 있었습니다. 터미널 안에 위치한 가파도 고양이 도서관이 더 이상 터미널에서는 운영불가합니다. 마을회에서 카페를 운영하는데, 도서관까지 운영하면 복잡하다고 도서관을 들이지 않겠다고 결정했답니다. 1년 넘게 고생해서 책을 마련하고, 내 사비를 들여가며 꾸몄던 도서관이 갈 곳을 잃었습니다. 1년 노력이 나무아비타불이 되었습니다. 나에게는 한 마디 상의도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말다툼도 있었습니다. 기분도 무척 상했더랬습니다. 하지만 마을회에서 운영하는 터미널이니 나는 영원한 을입니다. 게다가 주민 취급도 받지 못하는 섬에서 목소리를 높여봐야 나만 손해입니다. 터미널에서 임시로 집으로 이동한 책들을 어찌할까 대략 난감입니다. 주변에 이 책을 받아서 도서관을 운영할 공간(가게)이 있는지 알아봐야겠습니다. (기도 부탁드립니다.)


3.

다음 주면 고양시로 올라가 인문학 강의를 합니다. 매월 1회씩 하는 고전 읽기 강좌가 벌써 7번째입니다. 이번에는 겁도 없이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강의합니다. 청년시절에 읽어보고, 몇 년 전에 고병권이 쓴 12권의 <북클럽 자본>을 읽었는데, 이번에 다시 고병권이 쓴 12권의 책을 처음부터 읽고 있습니다. 하루에 한 권씩 읽으면 올라가기 전까지 다 읽을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12권을 다 쓰고 나서 한 권짜리 합본이 나왔는데 가격이 123,000원입니다. 벽돌책 중에 벽돌책입니다.)

다시 읽다 보니, 예전에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이 선명하게 이해되고, 감지 못한 내용도 잡히네요. 역시 좋은 책은 여러 번 읽어야 하나 봅니다. 고병권의 섬세하고 치밀한 해설이 <자본론> 읽기에 큰 도움이 됩니다. 이 모든 내용을 2시간 안에 전달할 수는 없으니, 나는 나 나름대로 강의전략을 짜고 PPT자료를 준비했습니다. 강의를 들으시는 분들이 미리 볼 수 있도록 네이버 밴드자료실에 올렸습니다.


4.

가파도는 거의 매일 비가 내립니다. 비가 내리면 기온이 떨어진다는데, 이곳은 습기를 머금은 바람에 오히려 후텁지근합니다. 10월이 되면 시원해지려나요. 날씨가 꺾이기만을 기다립니다. 새로 단장한 터미널이 아직 낯설지만, 다시 내 색깔과 냄새로 익숙한 공간으로 꾸며야겠지요. 책이 없어 참으로 허전하지만, 세 들어 사는 을의 입장이라 일단 마음을 접습니다. 더 즐거운 일을 모색해 봐야겠습니다. (어제는 너무 화가 나서 그냥 전업작가로 살아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답니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기로 해놓고도 이리 마음이 가볍습니다. 그래도 오늘도 안녕이라 말하며 살고 있습니다.

KakaoTalk_20250915_112856746_01.jpg
KakaoTalk_20250915_112856746_02.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가파도 편지 26 : 선착장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