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9.16.
1.
편지를 보낸 지 하루 만에 다시 편지를 씁니다. 편지를 보내고 나서 여기저기서 걱정의 소리를 들었기에, 다 잘 됐다고, 오히려 더 좋게 되었다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터미널에 조그맣게 자라잡있던 고양이도서관이 무사히 이전할 곳을 찾았습니다. 무사히 정도가 아니라, 이제 근사한 공간으로 이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판다고, 터미널 근처 여기저기 가게(카페)에 도서관이 들어갈 수 있는지 문의를 했는데, 가장 큰 가게에서 이층을 써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연인 즉, 가게 주인장의 아내가 필리핀(?) 여인이고, 가끔 터미널에 들러 영어로 된 도서를 빌려가서, 혹시나 도서관할 자리가 있을지 물어봤더니 가게 2층을 카페로 공사하고 있는데, 주인한테 말하면 될 것도 같다는 팁을 줬습니다. 다음날 달려가 물었더니, 두말하지 않고 2층을 쓰라시네요. 오늘 아침에 주인이 이끄는 대로 2층을 올라가 봤는데, 근사한 공간이었습니다. 발코니도 있고, 복층으로 테이블도 있고, 에어컨도 빵빵하고, 화장실도 큼직하고, 무엇보다 채광이 너무 좋았습니다. 전화위복입니다. 9월에 공사하고, 10월에 다시 도서관(?)을 엽니다. '고양이 북카페' 정도의 이름이지 않을까 싶네요. 이상 보고 끝.
2.
들뜬 기분을 가라앉히려고 시집을 읽습니다. 황규관 시인이 며칠 전에 보내온 시집 <뒤로 걷는 길>(창비시선 521)을 주말에 읽을라고 쟁여주었다가 읽기 시작했는데, 잠시 몇 편 읽고 말라고 생각했는데, 한 번 잡은 시집을 놓을 수 없습니다. 시들이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규관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황규관 시인은 친한 후배입니다.)
"규관아, 시가 너무 좋더라. 너 원래 시를 이렇게 잘 썼냐?"
"나 시 잘 써요.^^"
"나는 이번에 읽은 시들이 너무 좋아서 말로 전해줘야 할 것 같아서."
"많이 팔리지 않았대요."
"시집으로 먹고살기는 힘들지. 어쨌든 시가 좋아서. 읽다 멈추다를 여러 번 했다."
"고맙네요. 고양이 도서관은?"
"너도 내 글 읽었니? 다 잘 됐다. 오히려 더 좋은 카페 장소로 옮길 수 있게 되었어."
"다행이네요. 원래 가파도에 오래 머무실 생각은 아니었죠?"
"그러게 말이다. 살다 보니 그렇게 됐다."
"좋아요?"
"번잡하지 않아서 좋다. 어쨌든 시가 너무 좋더라."
"고마워요. (시가 좋다는 이야기를 벌써 몇 번째 하는 거야.) 바쁘실 것 같은데 끊어요."
"그래 잘 지내라."
시가 좋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한 것 같아요. 어쨌든 통화 사이에 이런 저린 이야기가 있었지만 생략했어요. 오랜만에 하는 통화도 남자들끼리를 정말 용건만 간단히입니다. 3분이 지나지 않습니다.
3.
시 한 편 옮겨 적습니다. <뒤로 걷는 길>에 있는 시들이 다 좋지만, 내가 뽑은 것은 '포고문-동학 4'입니다.
사람을 죽이지 말며
물건을 버리지 말며
발에 붙은 흙덩이를 미워하지 말며
흐르는 물을 막지 말며
구부러진 길을 함부로 펴지 말며
꽃잎에 앉은 나비를 쫒지 말며
어린아이의 눈빛 앞에서 탄식하지 말며
거친 손을 멸시하지 말며
노래를 혼자 부르지 말며
죽이 이를 망각하지 말며
하늘을 잡다하게 가리지 말며
땅에다 포탄을 떨어뜨리지 말며
울음과 웃음을,
바람과 풀을 갈라놓지 말며
땀 젖은 몸을 피하지 말며
어둠을 철거하지 말며
지는 해를 영영 보내지 말며
뛰는 가슴을 부끄러워 말며
호미 대신 기계를 숭배하지 말며
기도하는 허리는 부러뜨리지 말며
사람 아닌 것들도 죽이지 말며
모시고
살리고
가꾸고
절하고
꿈꾸고
4.
우리 규관이 책 좀 사주세요. 시집이 너무 좋아요. 시를 팔아 빚은 갚지 못하겠지만, 막걸리라도 한 잔 마실 수 있게.
뒤로 걷는 길 | 창비시선 521 | 황규관 | 알라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