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8장. 아버지의 낡은 레시피에 나만의 소스를 더할 때

- 청년의 중용 읽기

by 김경윤

무릇 효(孝)라는 것은,

선조들의 뜻을 잘 계승하고, 선조들의 사업을 잘 이어 나가는 것이다.

(Now filial piety is seen in the skillful carrying out of the wishes of our forefathers, and the skillful carrying forward of their undertakings.)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켜온 작은 식당에 가본 적 있으신가요?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낡은 간판,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들어서면, 변함없는 맛으로 손님을 맞는 노부부의 따뜻한 미소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 곁을 든든하게 지키는 젊은 아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곁에서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비법 레시피를 전수받습니다. 육수를 내는 시간, 양념을 섞는 순서, 손님을 대하는 정성스러운 마음까지. 아버지의 철학, 즉 가게의 ‘뜻(志)’을 배우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계승’입니다.

하지만 아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전통 레시피라는 뼈대는 그대로 지키면서, 요즘 젊은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새로운 메뉴를 개발합니다. 낡고 비효율적이던 주방 시스템을 개선하고, SNS를 통해 가게를 알려 더 많은 손님들이 찾아오게 만듭니다. 아버지의 ‘사업(事)’을 시대에 맞게 더욱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혁신’입니다.

『중용』은 바로 이 ‘계승’과 ‘혁신’의 아름다운 조화야말로 ‘진정한 ‘효(孝)’라고 말합니다. 효라는 것은 단순히 부모님께 순종하고, 옛것을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부모님과 선조들이 소중하게 지켜온 좋은 가치와 정신을 이어받되, 그것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시대의 변화에 맞게 더욱 발전시켜 나가는 창조적인 행위입니다.

무조건적인 계승은 시대에 뒤처진 ‘고집’이 되기 쉽습니다. “아버지는 안 그랬는데…”라며 새로운 시도를 막는다면, 식당은 결국 변화하는 손님들의 입맛을 따라가지 못하고 문을 닫게 될 것입니다.

근본 없는 혁신은 뿌리 없는 ‘바람’과 같습니다. 아버지의 비법 레시피를 무시하고 유행하는 메뉴만 좇는다면, 식당은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을 잃고 다른 가게들과의 차별점을 보여주지 못할 것입니다.

이 지혜는 비단 식당 운영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 회사의 2대 경영자는 창업주의 경영 철학(志)을 계승하여 회사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기술과 시장 변화에 발맞춰 회사를 성장시켜야(事) 합니다. 한 나라의 리더는 선조들이 피땀으로 지켜온 민주주의의 가치(志)를 이어받아,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직면한 새로운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야(事) 합니다.

그리고 이 지혜는 우리 각자의 삶에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우리 부모님은 어떤 삶을 살아오셨을까요? 그분들이 그토록 소중하게 여겼던 가치는 무엇이었을까요(志)? 그 좋은 정신을 이어받아, 나는 나의 삶 속에서, 나의 시대 속에서 어떻게 그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할 수 있을까요(事)?

아버지의 낡은 레시피는 그 자체로 소중한 유산입니다. 하지만 그 위에 나만의 비밀 소스를 더하여 더 깊고 풍부한 맛을 만들어낼 때, 우리는 비로소 과거와 미래를 잇는 진정한 의미의 ‘효’를 실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부모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이자, 나 자신을 성장시키는 가장 확실한 길이 될 것입니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7화17장. 착하게 사는 것이 결국 가장 큰 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