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 (인터넷판 6.20일자)
속도를 줄이고, 볼륨을 낮추고 살기로 했습니다. 아침마다 한 시간 넘게 보고 들었던 시사뉴스를 끊었습니다. 다양한 재미를 선사하던 유튜브 방송도 끊었습니다.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세상에 좀 더 집중하기 위해서. 하이데거의 표현대로 우리는 ‘세계-내-존재’이기에 세상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만, 그저 소문과 소음 속으로 ‘던져진’ 존재가 아니라, 삶의 본질 속으로 더 깊게 다가가기 위해서 일상의 나를 천천히 관찰하기를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기 전, 이불 속에서 나의 몸을 하나하나 느껴봅니다. 손가락과 발가락, 손목과 발목, 무릎과 허리, 어깨와 목을 천천히 움직이며 내 신체가 내는 소리와 신체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감지합니다. 평생을 나와 함께 했던 살들과 힘줄과 뼈와 장기들의 움직임을 감지하기 위해 주위를 기울입니다. 어제와 다른 내가 있습니다. 이것들을 천천히 움직이며 ‘자, 오늘도 살아보자’ 외칩니다.
일어나 이불에 떨어졌을 각질들을 청소기로 없애고, 구겨진 것들을 바로 펴서 접습니다. 그리고 다시 청소기를 돌려 밤새 가라앉은 먼지들을 제거합니다. 화장실로 가서 거울을 쳐다봅니다. 매일 보는 얼굴이지만 또 보게 됩니다. 볼일을 보고,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물기를 제거합니다. 밤을 새고 늦게 잠든 날이면, 집안이 고요합니다. 막내는 학교에 갔고, 아내는 운동을 나갔고, 항상 늦게 잠든 맏이는 아직 잠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냉장고 문을 열어 먹을 반찬을 챙겨 식탁에 올려놓고, 국이나 찌개가 있다면 먹을 만치 덜어서 레인지에 돌립니다. 밥솥에서 밥을 먹을 만치 덜어 식탁을 차립니다. 조촐한 밥상이지만 모자란 것은 없습니다. 첫술에 밥을 떠서 입안에 넣고 천천히 씹어봅니다. 반찬 한 개를 집어 입안에 넣습니다. 김치는 아삭하고, 우엉은 짭짤하고, 계란조림은 고소합니다. 국 안에 있는 콩나물을 씹으며 그 소리를 들어봅니다. 어묵을 좋아해서 콩나물 국에도 어묵을 넣습니다. 커다랗게 자른 어묵을 씹으며 그 달콤하고 물컹한 느낌을 즐깁니다. 밥을 반쯤 먹은 후에 국에 맙니다. 밥알에 스며든 국물은 밥에 풍미를 더합니다. 예전보다 밥먹는 속도를 줄였더니 밥이 훨씬 맛있습니다.
밥을 먹은 후에는 설거지를 합니다. 전날의 설거지감이 쌓여있는 날은 왠지 모르게 힘이 솟습니다. 가족 구성원의 일원으로 할 일이 생긴 것만 같습니다. 설거지를 하며 물의 온도와 세기를 느껴봅니다. 세제가 만들어내는 거품도 흥겹습니다. 그릇들이 점점 자기 색깔을 찾아갑니다. 헹굴 때 뽀드득 소리를 들으면 상쾌해집니다. 깨끗이 닦인 그릇들을 크기에 맞춰, 종류에 맞춰 정리하면 저절로 흥겨워집니다. 이렇게 아침이 천천히 고요히 지나갑니다.
집에서 나와 편의점에서 마시는 커피의 색깔과 온도를 느끼고 풍미를 맛보는 것도 작은 즐거움입니다. 비오는 날이면 빗소리를 듣고, 화창한 날이면 하늘을 쳐다봅니다. 바람이 불면 바람부는 쪽으로 얼굴을 돌려 바람을 맞습니다. 천천히 숨을 들이켜 바람의 온도와 습도, 농도를 느껴봅니다. 텃밭에 나가는 날이면, 작물들을 천천히 쳐다봅니다. 풀들을 뽑으면 흙냄새가 훅 풍겨옵니다. 풀을 따라 올라온 흙들을 털어 다시 대지로 보내며 가만히 흙을 만져봅니다. 가문 날이면 물을 주며 물줄기가 고이고 흘려가는 것을 바라봅니다. 책을 읽으며 마음을 움직이는 구절에 연필로 줄을 긋거나 표식을 남깁니다. 연필심이 닳아가면서 내는 소리를 조용히 듣습니다. 소리를 낮추고 그 구절을 다시 읽어봅니다. 내 소리가 내 귀에 울립니다. 천천히 고요히 나를 느끼고 나를 살아갑니다. 나와 내 주변이 더 분명해집니다. 누구와 함께 무엇을 사랑할지 선명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