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우리, 노동자로 살아가다》와 연극 <작전명 C가 왔다>
어느 허름한 지하 창고. 정장을 입은 두 남자가 쌓인 상자들 사이로 들어선다. 의심의 눈초리로 투덜거리는 상사에게 굽신거리며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비서. 다시 나서려는 그들의 길을 막아서며 ‘그렇게 자신이 없냐’며 자존심을 긁어버리는 미모의 여성 C, 그녀가 자신있게 말한다.
“저를, 한번 믿어보시죠.”
연극 <작전명 C가 왔다>의 오프닝 씬은 셋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하필이면 왜 ‘C’인가? 바로 창조컨설팅을 비유한 것이다. 유성기업 등 전국의 100여개의 사업장에 노조파괴를 진행했다가 2012년 10월에 설립이 취소되고 악랄한 편법들이 공개되면서 한때 시끌하게 만들었던 그 업체다. 4단계에 걸쳐 벌어지는 노조파괴, 하지만 기존 시나리오와 어긋나는 변수들이 등장하면서 C의 편법은 점점 악랄해지고, (유성기업을 패러디한) 무정기업은 거침없이 올라가는 작업료에 점점 독이 오르고,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각자 감정의 끝을 향해 달려간다. 결국 이 상황에서의 승리자는 누구였을까?
모두가 한 줌의 먼지처럼 사라진 후, 홀로 남은 어용노조 위원장의 독백은 마음을 울린다. ‘족구도 하고, 소주도 같이 마시고, 그렇게 매일을 함께 했던 내 옆의 사람들’에게 등 돌린 사람이 되어 버린, 돈 많이 주고 위원장 시켜준다는 말에 넙죽 어용노조를 맡은 자신을 한탄하는 목소리는 연극이 끝난 후에도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것은 연극이 아닌데, 지극히 연극적이다. 이런 연극이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었을 때, 우리는 뭘 하고 있었던가.
연극 <작전명 C가 왔다>가 다룬 창조컨설팅의 노조파괴 전략을 더욱 자세히 알고 싶다면 책 《우리, 노동자로 살아가다》를 추천한다. 땡땡책협동조합의 소책자 프로젝트로 제작된 이 책은 2014년 당시 노조파괴에 맞서 고공에서, 지상에서 싸워온 충북 중심의 노동자들과 연대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창조컨설팅의 노조파괴 5단계 전략, 기업과 정부가 연결된 노조파괴, 그 파괴에 맞서 싸웠던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이게 나라냐?’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게 만든다.
이 책의 표지는 이윤엽 작가의 올빼미 판화 이미지를 담고 있다. ‘잠 좀 자자’에서 시작된, 심야노동 철폐와 2교대제 요구로 싸웠던 유성기업 노조원들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기본적인 노동조건조차 요구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노동조합을 지켜내기 위해 처절히 싸워야 했던 그들의 투쟁은,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업장이 현재 진행형을 그리고 있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던 날, 광화문 광고탑에서 고공농성 중이던 투쟁사업장 동지들이 27일만에 땅을 밟았다. 나는 새 대통령이 청와대와 가까운 광화문 그 곳으로 내려와 농성자들을 반겨줄 것이라 예측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나의 아름다운 환상으로 끝났다. 그날의 미완이 지금처럼 노동개혁이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는 현실의 서막이였던 건 아니였을까?
땡땡의 조합원(이하 땡땡이)인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이 청주에서 올라와 굴뚝에서의 크리스마스를 준비한다는 소식에 땡땡이들이 모여 행동독서회를 진행했다. ‘행동독서회’는 땡땡이들이 연대 현장으로 찾아가 각자 준비한 책을 읽는 일종의 퍼포먼스이자 현장 독서회다. 행동독서회 이후 열렸던 문화제에서, 땡땡이들이 각자 가져온 책을 소개하고 낭독하는 시간이 있었다. 《우리, 노동자로 살아가다》를 챙겨갔던 나는 해정 땡땡이가 정리한 금속노조 유성지회 이정훈 지회장과의 인터뷰 마지막 두 문단을 읽었다. 그는 2014년 6월, 여름의 시작에 옥천 광고탑에 올라 259일이라는 시간을 버텨냈다. 25미터, 한 평 반의 공간에서 내려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진행된 인터뷰의 마지막은 바로 동 시간대 구미에서 고공농성 중인 ‘그’를 걱정하는 내용이였다.
그는 인터뷰 내내 구미에서 고공농성 중인 스타케미칼 차광호 동지를 아직 만나지 못한 것이 가장 마음이 쓰인다고 말했다. 차광호 씨는 스타케미칼의 지난해 1월 폐업 당시 권고사직을 거부해 졸지에 해고자가 된 이래, 지난 5월 27일 ‘스타케미칼 불법 매각 중단, 공장 재가동’을 요구하며 공장 내 45미터 높이의 굴뚝에 오른 상태였다.
오늘도 노동자들은 이정훈처럼, 차광호처럼, 하늘로, 하늘로 오른다. 지상에선 숨 쉴 수 없기에 철탑에 오르고, 크레인에 오르고, 굴뚝에 오른다. 그리고 외친다. 노동자로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벼랑 끝에 내몰린 그 외침에 우린 뭐라 답할 수 있을까?
(인터뷰 “나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중에서)
바로 ‘그’, 차광호 동지는 408일의 시간을 버텨내고 굴뚝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지금, 동료인 두 동지가 다시 굴뚝에 올랐고 목동 농성장을 지키며 연대자를 환영해주는 사람도 바로 차광호 동지다. 그날 문화제에서도 차광호 동지는 제일 많이 웃고 박수치던 사람이였다. 그런 그가 나의 목소리로 이름이 불려졌을 때, 고개를 숙이던 그 모습에 목이 너무 메어왔다. 그는 왜, 우리는 왜. 이렇게 왜......
문화제 시작 전, 연대자들끼리 밥을 먹고 있는데 지나가던 주민이 농성을 왜 하는지에 대해서 물어왔다. 그분이 던진 말 중 한 마디가 훅, 하고 들어왔다. “나라면 저럴 시간에 다른 데 가서 열심히 일을 하겠다” 문화제 내내 생각나던 그 말에 하고 싶은 말이 공교롭게도 문화제 중간 연대 뮤지션들의 노래에서 흘러나왔다.
당신이 미운 것은 상관 없어요
나도 당신과 상관이 있어요
랄라라 라랄랄라라 매번 또 그렇게
랄라라 라랄랄라라 매번 또 서럽게
- 노래 <매번 괜히 물어요(오재환, 람 부름)> 가사 중에서.
올해 들어 유난히 우리와 다시 만날 수 없는 세상으로 떠나간 사람들이 많다. 죽음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는 아파하고, 후회하고, 괴로워한다. 그 고통은 살아남은 자들을 반성하고 움직이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살아남은 자들에게 숙명은 바로 ‘행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연기력이 좋은 배우들이 각자의 캐릭터를 잘 소화했고 소품과 동선을 극적으로 활용한 무대로 만듦새도 참 괜찮은 연극 <작전명 C가 왔다>는,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잡고)’가 연극 <노란봉투>에 이어 두 번째로 주최한 연극 프로젝트였다. ‘손잡고’는 노동자들의 손해배상, 가압류가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행동하는 시민모임으로, 이 단체의 기획에 극단 몽씨어터가 제작, 연우무대가 공간후원로 힘을 보태서 이 연극이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OO(땡땡)’을 채워가는 과정 역시 행동을 통해 가능하며, 그것이 땡땡책협동조합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책을 읽고, 책을 쓰고, 책을 건네는 작업은 출판인들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상에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책을 매개로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작업으로써, 행동하는 땡땡이들은 내일도 연대가 필요한 당신의 벗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All Night, All Right
땡땡책협동조합 친구출판사의 책들과 다른 문화예술 장르의 만남.
여러분의 깊은 밤은, 언제나 옳으니까요.
글쓴이. 루카
화이트컬러 사무노동자였던 아빠와 교육 노동자였던 엄마가 일상의 순간에서
항상 강조했던 것은 바로 노동과 농사의 신성함이였다. 그 앞에서 멈출 수는 없었다.
책 《우리, 노동자로 살아가다》 (2014)
땡땡책협동조합 펴냄 및 엮음
(* 구매에 대한 문의는 00books@hanmail.net으로 보내주세요.)
연극 <작전명 C가 왔다> (2017)
작 이양구 ∥ 각색/연출 이동선 ∥ 제작 몽씨어터 ∥ 주최 손잡고 ∥ 출연 구선화 이승훈 최영도 성열석 양윤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