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우리 엄마 강금순》과 영화 <굿바이, 레닌>
영화 <굿바이 레닌>은 1978년 동독의 어느 별장에서의 영상,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독일의 풍경으로 시작된다. 서독으로 망명한 아버지로 인해 심한 우울증에 걸린 엄마 한나. 아들 알렉스는 엄마를 안으며 말한다. “엄마, 제발 돌아와요.” 퇴원 이후 한나는 공산당에 충성하는 열혈 사회 활동가로 변한다. 10년 후, 급격히 변하는 세계 정세 속에서 폭력과 탄압을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했던 알렉스는 경찰에 연행되고, 궁에 초대받아 이동 중이던 한나가 그 장면을 목격하고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진다. 독일은 통일되고, 이후 한나가 깨어나면서 가족의 거짓말이 시작된다.
약간의 흥분도 위험하다는 엄마에게 순식간에 자본주의의 물결로 물든 독일의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던 가족들은 엄마의 방을 이전의 동독으로 재현시켜낸다. 절판된 동독 제품의 유리병을 찾기 위해 수소문하고, 영화감독이 꿈인 설치기사 동료 데니스 덕분에 거짓 뉴스 방송을 끝없이 만들어낸다. (특히 코카콜라 장면은 이 연극이 만들어 낸 폭소의 정점을 찍는다!)
알렉스는 엄마를 위한 연극을 꾸미면서 통일 이후 몰락한 세상에 힘들어하는 엄마의 동료들을 만난다. 예기치 못한 비밀들이 터져 나오고, 알렉스는 자신이 그동안 바라봤던 ‘엄마’ 한나를 과거의 시간 속에서 재해석하기 시작한다. 가족들이 자신을 위해 다 꾸민 연극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알렉스를 바라보던 한나의 시선은 정확하게 설명될 수 없어도 그 장면을 보는 누구나 감동하게 된다.
도서출판 도토리숲의 평화책 시리즈 세 번째 신간 《우리 엄마 강금순》은 일제 시대 하시마 섬(군함도)에서 강제 노역을 하고 있던 남편을 따라 자녀들과 함께 배를 타고 넘어가 일생을 보내며 인생의 끝무렵부터는 재일 동포들의 삶을 이야기하셨던 강금순 여사의 일대기를 다룬 그림책이다. 책이 출간되었던 8월 초, 원폭 피해자들을 기억하는 행사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던 배동록 선생님을 만나 뵙게 되었다. 팟캐스트를 녹음하면서도, 다음날 진행된 출판기념회 자리에서도 선생님은 지난 시절, 억울하게 고통받았던 동포들의 삶을 눈물과 호소로 담아내셨다.
엄마 강금순 여사도 처음에는 많이 망설이셨다고 한다. 하지만 아들 배동록 선생님의 제안으로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용기를 얻었고, 그 용기가 지금의 배동록 선생님을 멈출 수 없게 만든 것이다. 그는 ‘전쟁은 절대 하면 안 되는 것이고, 조국은 통일되어야 하며, 우리는 하나다’라는 말을 어느 자리에서든 반복했다. 찰나의 순간, 그를 보면 체력이 떨어져 분명 힘겨워보였는데, 어느 순간 다시 되살아나 이야기를 풀어가던 배동록 선생님. 그의 명함에 선명히 그려져 있던 색동 무늬와 ‘역사의 증언자’라는 소개글이 어쩌면 그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지도 모른다.
진보는 계속되는데 나는 쓸모가 없구나.
침대에 누워 (사실은 거짓) 뉴스를 보고 있던 한나가 알렉스에게 내뱉은 말이다. 엄마가 충성하며 국가를 지켜내려 했던 이유가 후반부에 결정적인 비밀이 밝혀지면서 알게 되는데, 알렉스는 그 사실을 알고 힘들어한다. 엄마에게 국가에 대한 신념보다는 결국 자녀인 딸 아리안과 아들 알렉스가 먼저였다는 사실이었기에.
엄마의 조국을 죽음의 그 순간까지 실현시키고 싶었던 아들 알렉스, 엄마가 죽는 순간까지 바라셨던 조국 통일과 평화를 몸으로 실천하고 계시는 배동록 선생님. 그저 내 곁에서 일상을 같이 하는 존재를 넘어 새로운 세상으로 안내하는 사람들이 바로 ‘엄마’이지 않을까. 나를 세상에 낳은 ‘엄마’라는 위대한 존재는 나 개인의 역사를 떠나 시대를 새로 읽게 하는 또 다른 역사를 낳고 있다. 비단 영화라는 허구를 넘어 실제 우리의 삶 속에서도.
* 땡땡책협동조합 팟캐스트 11,12화에서 책 《우리 엄마 강금순》과
배동록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3830
All Night, All Right
땡땡책협동조합 친구출판사의 책들과 다른 문화예술 장르의 만남.
여러분의 깊은 밤은, 언제나 옳으니까요.
글쓴이. 루카
녹색이 그리는 평화와 공존과 사랑을 원하는, 그저 조용히 땅으로 돌아가고픈 사람.
돌잡이 때 연필과 돈을 같이 집었다는데 글 써서 먹고사는 날은 오긴 할런지.
책
《우리 엄마 강금순》(2017)
도토리숲 펴냄 | 글쓴이 강이경 | 그린이 김금숙 | 사진 이재갑
영화
<굿바이, 레닌> (2003)
감독 볼프강 베커 | 주연 알렉스 브륄, 카트린 사스 | 러닝타임 120분
* 굿다운로드 사이트에서 영화를 다운로드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