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왜 미래형 인재를 브리콜뢰르라 부르는가?
4C 역량의 집약체, 자원을 조립하는 지능
미래 교육의 핵심 키워드로 꼽히는 4C 역량, 즉 비판적 사고 (Critical Thinking), 창의성 (Creativity), 의사소통 (Communication), 협업 (Collaboration)은 사실 하나의 지점으로 수렴됩니다. 그것은 바로 내 손에 쥐어진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조합하여 문제를 해결하느냐는 조립의 능력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아이디어와 기술이 있어도 이를 현실의 맥락에 맞게 엮어내지 못한다면 인공지능 시대의 파도를 넘기 어렵습니다. 브리콜뢰르는 이 4C 역량을 머릿속 이론이 아닌 손끝의 실천으로 증명하는 사람입니다.
유발 하라리 (Yuval Noah Harari)는 그의 저서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21 Lessons for the 21st Century)에서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로 변화에 대한 적응력 (Adaptability)을 꼽았습니다. 그는 과거에는 한 번 배운 기술로 평생을 살 수 있었지만, 이제는 몇 년마다 자신을 완전히 새롭게 재발명해야 한다고 경고합니다. 이러한 끊임없는 재발명 (Reinvention)의 과정은 전형적인 브리콜라주의 문법을 따릅니다. 내가 가진 과거의 경험과 새로운 기술이라는 파편들을 모아 현재라는 무대 위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조립해내는 능력이 곧 생존의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인공지능은 우리가 다루어야 할 가장 거대하고 유연한 디지털 잡동사니 (Digital Junk) 상자와 같습니다. 인공지능을 단순히 명령을 수행하는 기계로만 본다면 우리는 그 도구의 노예가 될 뿐입니다. 하지만 이를 내가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지식의 조각으로 인식하는 브리콜뢰르는 인공지능을 통해 자신의 상상력을 무한히 확장합니다.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방대한 데이터를 재료 삼아 누구도 생각지 못한 해결책을 조립해내는 사람만이 미래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가 될 수 있습니다.
창의성이란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마법이 아니라, 관련 없어 보이는 요소들을 연결 (Connecting the dots)하는 능력입니다. 비판적 사고 역시 수많은 데이터 중 진짜 쓸모 있는 잡동사니를 골라내는 안목에 다름 아닙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재료와 나의 재료를 합치는 협업과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의사소통은 모두 브리콜뢰르가 매일 수행하는 일상의 작업들입니다. 결국 미래형 인재란 복잡한 이론을 암기하는 아이가 아니라, 혼돈 속에서도 유연하게 재료를 맞추는 브리콜뢰르를 의미합니다.
부모들은 흔히 아이에게 완벽한 전문 도구를 쥐여주려 노력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도구의 사양보다 그 도구를 다른 것과 연결하는 응용력입니다. 인공지능 시대의 지식은 파편화되어 떠돌고 있습니다. 이 파편들을 모아 자신만의 서사를 만드는 브리콜뢰르적 지능이 없다면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졌어도 길을 잃기 쉽습니다. 우리는 아이를 정답만 맞히는 엔지니어로 키울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파편을 자신의 재료로 삼는 야생의 브리콜뢰르로 길러내야 합니다.
4C 역량의 실체는 브리콜라주라는 거대한 그릇 안에 담겨 있습니다. 이 역량들이 서로 시너지를 내며 작동할 때 아이는 비로소 인공지능을 부리는 주권자로 우뚝 설 수 있습니다. 단순히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아니라 삶의 모든 순간에서 재료를 조립하고 가치를 창조하는 아이, 그것이 바로 우리가 브리콜뢰르라는 이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평생 한 우물만 파는 전문가의 시대는 끝났다
과거에는 하나의 전공과 하나의 직함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 미덕이었습니다. 하지만 수명이 비약적으로 늘어나고 기술이 급변하는 시대에 이러한 전문성은 오히려 위험한 덫이 될 수 있습니다. 린다 그래튼 (Lynda Gratton)은 그녀의 저서 100세 인생 (The 100-Year Life)에서 교육-일-은퇴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3단계 삶의 방식이 붕괴되고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그녀는 앞으로의 인류가 여러 정체성을 조립하며 살아가는 멀티 스테이지 (Multi-stage)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이러한 멀티 스테이지 인생관은 브리콜뢰르의 삶의 방식과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이제 아이들은 평생에 걸쳐 대여섯 개의 직업을 가질 것이며, 수십 가지의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한 우물만 깊게 파는 전문가는 그 우물이 마르는 순간 생존을 위협받지만, 여러 재료를 다룰 줄 아는 브리콜뢰르는 우물이 마르면 옆의 나무와 돌을 이용해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납니다. 직업의 경계가 무너지는 슬래셔 (Slasher)나 여러 개의 정체성을 가진 멀티 페르소나 (Multi-persona) 트렌드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습니다.
현대 사회의 직업 트렌드를 살펴보면 이미 수많은 N잡러들이 브리콜뢰르적 삶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요리사이며 작가이고 동시에 유튜버인 사람, 혹은 코딩을 하는 예술가처럼 서로 다른 영역의 재료들을 자신의 삶 속에 조립해내는 사람들이 새로운 부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의 직함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자신이 가진 다양한 재료들을 시대의 요구에 맞춰 끊임없이 재구성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는 이처럼 총체적 인간 (Total Human)을 요구하는 시대입니다.
부모는 아이의 관심사가 바뀔 때마다 끈기가 없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아이가 수집하는 그 다양한 관심사들이 훗날 어떤 놀라운 조합으로 탄생할지를 기대해야 합니다. 오늘 배운 피아노와 내일 배운 과학 실험, 그리고 틈틈이 익힌 영상 편집 기술이 브리콜라주라는 용광로 속에서 녹아들어 세상에 없던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아이를 하나의 전공에 가두는 것은 아이의 미래를 한정된 설계도 안에 가두는 것과 같습니다.
지식의 유효 기간이 극도로 짧아진 세상에서 유일하게 영원한 자산은 무엇이든 조립할 수 있다는 자신감입니다. 린다 그래튼이 강조한 무형 자산 (Intangible Assets)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변화에 대응하는 유연성과 새로운 기술을 기꺼이 자신의 잡동사니 상자에 넣는 개방성입니다. 브리콜뢰르는 자신의 정체성을 고정된 조각상으로 보지 않고, 언제든 해체하고 다시 조립할 수 있는 블록 조형물로 인식합니다. 이러한 유연함이 아이를 100년의 긴 여정 동안 지치지 않게 할 생존 동력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아이를 전문가라는 좁은 칸막이에서 해방시켜야 합니다. 다양한 재료를 만지고 실험하며 자신만의 슬래시 (/)를 늘려가는 과정을 응원해야 합니다. 여러 직업과 취향을 조립하며 살아가는 브리콜뢰르적 삶은 불안정한 방랑이 아니라, 가장 지혜로운 생존 전략입니다. 하나의 전공이나 직함이 아닌, 다양한 재료를 다루는 총체적 인간으로 성장할 때 우리 아이는 비로소 미래 사회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 브리콜뢰르 만들기
Step 1. [활동] 미래 나의 슬래시(/) 명함 만들기
수집하기: 아이가 현재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그리고 관심 있는 분야를 생각나는 대로 모두 적어봅니다. 예로 강아지, 우주, 요리, 게임, 그림 그리기 등을 나열합니다.
관찰하기: 적어놓은 관심사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서로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두세 가지를 연결해 봅니다.
나만의 기준세우기: 연결된 관심사들이 결합했을 때 어떤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아이만의 논리로 기준을 세웁니다.
활동하기: 연결된 관심사들을 바탕으로 미래의 직업 명함을 만듭니다. 직업 이름 사이에 슬래시(/)를 넣어 멀티 정체성을 표현합니다. 예로 동물 언어 번역가 / 화성 도시 설계자 / 로봇 요리사 등을 기입합니다.
코칭가이드: 명함에 적힌 직업들이 실제 존재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재료들이 시너지를 내며 결합되는 상상의 과정 그 자체를 높게 평가하며 칭찬해 주세요.
Step 2. [AI활용] 가상 직업 브리콜라주
도입: 미래에는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융합 직업들이 생겨날 것임을 아이에게 설명하며 흥미를 유발합니다.
인공지능에 질문하기: 인공지능에게 20년 뒤 기술과 예술, 혹은 전혀 다른 분야가 결합해 생겨날 법한 기상천외한 융합 직업 10개를 제안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결과 분석하기: 인공지능이 제안한 메타버스 정원사나 드론 교통사고 조정사 등의 직업을 함께 읽으며 어떤 재료들이 섞였는지 분석합니다.
결과 덧붙이기: 제안된 직업 중 하나를 골라, 그 일을 하기 위해 지금 아이가 가진 잡동사니 중 무엇을 더 발전시키면 좋을지 구체적인 전략을 짭니다.
교육적 마무리: 미래의 직업은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재료들을 조립해서 만들어가는 것임을 확인하며 활동을 마칩니다.
참고문헌
Gratton, Lynda, and Andrew Scott. The 100-Year Life: Living and Working in an Age of Longevity. Bloomsbury Information, 2016.
Harari, Yuval Noah. 21 Lessons for the 21st Century. Spiegel & Grau, 2018.
National Education Association. An Educator's Guide to the "Four Cs": Preparing 21st Century Students for a Global Society. NEA, 2012.
Partnership for 21st Century Skills. Framework for 21st Century Learning. Partnership for 21st Century Learning, 2007.
Trilling, Bernie, and Charles Fadel. 21st Century Skills: Learning for Life in Our Times. Jossey-Bass,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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