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작은 이야기
제 어린 시절은 지금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습니다.
수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반려견(당시에는 애완견이라 했지요)을 키우는 가정도 매우 드물었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고등학교 시절 친한 친구의 꿈이 수의사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수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던 시절에 그 친구는 외삼촌이 수의사였고 그 모습을 보며 수의사의 꿈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수의사가 어떤 직업인지 잘 몰라 호기심에 친구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물어보았습니다.
지금은 반려동물과 관련된 다양한 직업이 존재하지만 그 당시에는 동물과 함께 일하는 직업이 드물었습니다. 그래서 동물과 교감하고 아픈 동물을 치료해줄 수 있는 수의사라는 직업이 굉장히 멋져 보였습니다. 그 친구와 만나기만 하면 자연스레 수의사는 어떤 일을 하는지, 수의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의 꿈도 수의사가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당시 제 안에는 이미 동물과 함께하는 직업에 대한 꿈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수의대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수의학 교육과정은 6년제입니다. 학부 시절에는 수의학 전반적인 내용과 여러 과목을 배우고 대학원에 입학하면 내과나 외과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저는 외과에 흥미가 많았기 때문에 수의대학 졸업 후, 외과를 선택하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의료 분야는 사람이건 동물이건 매번 새로운 케이스를 접하게 됩니다.
같은 질환에 같은 수술을 하더라도 반려견의 상태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발생합니다. 수술 전, 반려견의 상태를 세심하게 평가해야 하고 수술 계획을 꼼꼼하게 세워놓았더라도 막상 수술에 들어가면 수많은 변수가 튀어나와 빠른 판단력과 대응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외과의 특징을 힘들어하는 동기들도 있었지만 저는 천직이었던 건지 이러한 부분이 매력으로 느껴졌습니다. 지금까지도 수술을 할 때마다 새롭게 도전하는 마음으로 설렘과 긴장감을 느낍니다. 내가 공부한 만큼, 내가 준비한 만큼 좋은 결과로 돌아오기 때문에 내가 오늘도 한 아이와 보호자의 행복을 지켜주었다는 뿌듯함이 가장 큰 원동력이 됩니다.
외과라고 하면 정해진 수술법에 따라 기계적인 수술을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치료하는 것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의료 부분에 종사하시는 분들이라면 공감하실 것 같은데, 생체는 기계와 다르게 이상이 생기면 간단한 문제로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계는 고장의 원인이 단일한 경우가 많아 해결도 쉽고, 추가적인 문제가 잘 발생하지 않지요. 이론은 많은 케이스를 분류하고 정의해놓은 것이기 때문에 기계적인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임상에서는 많은 변수가 있지요. 그 변수는 질환의 복합적인 요소, 그리고 반려견의 요소(순응도), 그리고 보호자의 요소입니다.
첫 번째로 질환의 복합적인 요소란 질환의 원인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의 영향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경우에는 치료에 임할 때 약물 선택도 더 신중하고 복잡해집니다. 하나의 치료에 집중하다 보면 다른 질환이 악화돨 수도 있기 때문에 모든 경우의 수를 예상하여야 합니다. 하나의 질환을 치료한 후 그로 파생된 부작용들도 발생할 수 있고요.
두 번째로는 검사한 데이터가 이론대로 모두 맞아떨어지지가 않아 혼란을 야기하는 경우입니다. 사람의 의료도 그러하듯 수의학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모두를 알고 있지 못한 거죠. 그래서 지금도 의학의 새로운 분야를 밝혀내기 위해 많은 분들이 노력하고 있지요.
세 번째는 반려견의 순응도입니다. 사람은 이 치료가 어떤 치료이며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를 설명하면 납득하고 치료에 협조합니다. 하지만 반려견은 사람과 언어적이 소통이 불가능합니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지키기 어려워 치료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 의료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합니다. 수치적인 검사 결과가 아니라 반려견의 심리적, 행동적 요소까지 고려하여 그에 맞는 치료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같은 진단의 치료라 하더라도 반려견마다 치료법이 달라지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보호자의 요소가 있습니다. 아픈 건 반려견이지만 치료를 하는데 절대적인 역할은 보호자에게 있습니다. 약을 먹여야 하는 것도, 식단 조절을 해야 하는 것도, 운동을 제한하거나 혹은 적극적인 운동을 지도하거나, 치료계획에 맞게 내원하여 검사와 치료를 받게 하는 건 보호자의 물리적인 요소가 중요합니다. 보호자의 물리적인 요소란 보호자의 시간과 노력 여부, 경제적 여건을 의미하며 이를 반영하여 치료 계획을 세우다 보면 이론과 멀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 보면 외과의란, 수술실 안보다 밖에서 더 많이 공부하고 고민하는 직업인 것 같습니다.
저도 감히 요즘 세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요즘 세대가 반려견을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현대에는 과거와는 다르게 가족 구성원 수가 줄어들고 1인 가구, 자녀를 낳지 않는 가정 등 가족의 규모가 축소되고 있습니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되었고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피로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모두 다 함께 보다는 나의 행복과 나의 일상을 중요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지요.
그러나 사람은 감정을 가진 존재입니다. 즉, 감정을 나눌 대상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사람이건 동물이건 말이죠.
사람과 감정을 나눌 때는 관계를 유지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 감정이 소모됩니다. 때로는 나의 의도는 그러하지 않았는데 사소한 오해로 상처 받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합니다. 나의 애정을 그대로 받아주고 돌려줄 수 있는 존재, 나와 감정을 공유할 수 있으면서도 나에게 상처 주지 않는 존재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네발 달린 친구들이 그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습니다.
밖에서 각박한 현실에 시달리고 스스로의 존재감에 의문을 품게 될 때, 무한한 신뢰로 나를 바라보는 반려동물과 눈을 마주치면 삶의 이유를 되찾는 기분이 듭니다. 절대적인 사랑을 베풀어주는 이 생명체들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아직은 반려동물과 보호자의 관계에서 보호자의 즐거움이 조금 더 우세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과 그들의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은 빠르게 높아지고 있습니다. 반려동물이 단지 귀여운 존재로 남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도 정신적, 육체적으로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를 바라는 보호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반려동물의 안전과 건강에 대한 관심은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제게 수의사로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언제인지 물어봅니다.
어려운 수술에 성공한 순간, 걷지 못하던 아이가 재활에 성공한 순간 등등 드라마틱한 상황을 예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저는 진료하는 매 순간 보람을 느낍니다. 아이와 보호자가 행복한 일상을 보낼 수 있는 데에 작지만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에 늘 가슴 벅찬 뿌듯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수의사란 사람과 반려견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는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