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과 저급, 그 경계를 허물다

현대디자인사 #9. 키치와 포스트모더니즘

by 공일공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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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예술일까, 아니면 그냥 싸구려일까?”

반짝이는 색, 과장된 형태, 한눈에 의미가 읽히는 이미지. 우리는 이런 것들을 쉽게 ‘촌스럽다’, ‘유치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판단은 정말 개인의 취향일까, 아니면 오랫동안 학습된 기준일까.

키치(Kitsch)는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질문을 더 멀리 밀어붙인다. “누가 고급과 저급의 기준을 정했는가?”

이 두 흐름은 예술과 디자인이 ‘잘 만든 것’과 ‘못 만든 것’을 구분하던 방식을 근본부터 흔들었다.




키치는 왜 늘 ‘낮게’ 평가받았을까


키치는 원래 대량생산된 장식품, 기념품, 통속적인 이미지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감상보다는 소비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들. 쉽게 소비되고, 즉각적으로 감정을 전달하며, 깊은 해석을 요구하지 않는 대상들.


그래서 키치는 오랫동안 ‘진지하지 않은 예술’, ‘생각 없는 취향’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고급 예술은 고요해야 하고, 복잡해야 하며, 쉽게 이해되면 안 된다는 믿음 속에서 키치는 자연스럽게 밀려났다. 하지만 이 판단은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였다. 누가 기준을 만들고, 누가 그 기준을 유지해왔는가의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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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은 기준을 의심하는 태도였다


모더니즘이 “더 나은 형태”를 찾던 시대였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렇게 질문한다.


왜 그 형태가 더 낫다고 여겨졌을까. 왜 어떤 취향은 세련되고, 어떤 취향은 저급하다고 불렸을까.


포스트모더니즘은 하나의 정답, 하나의 미적 기준을 믿지 않는다. 대신 여러 맥락과 여러 취향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고 본다. 이때 키치는 배제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다시 호출된 언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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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d65cfd2036b5.jpg Hygge & Home – Memphis Design

→ 멤피스 그룹은 키치적 요소를 의도적으로 고급 디자인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원색, 장난감 같은 형태, 비논리적 조합은 ‘세련됨’이라는 기준 자체를 흔드는 전략이었다.




키치는 ‘실수’가 아니라 ‘선택’이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키치는 더 이상 무심코 소비되는 취향이 아니다. 촌스러움을 모르고 쓰는 것이 아니라, 알고 쓰는 선택이 된다. 과장된 색을 쓰는 이유, 너무 익숙한 이미지를 다시 꺼내는 이유, 장난처럼 보이는 형태를 굳이 선택하는 이유.


이 모든 것은 ‘세련됨’이라는 규칙을 일부러 벗어나는 행위다. 그리고 그 벗어남 자체가 메시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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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에서 키치는 더 이상 저급한 취향이 아니라 디자인의 하나의 전략적 언어가 된다.




고급과 저급의 경계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말한다. 고급과 저급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시대와 맥락이 만들어낸 구분이라고.


오늘날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밈(meme), 캐릭터, 레트로 감성, B급 유머와 과장된 비주얼은 한때는 분명 ‘저급한 것’으로 분류되던 요소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장 빠르게 사람들과 연결되는 언어가 되었다. 가볍지만 즉각적이고, 유머러스하지만 기억에 남는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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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bd0eaf22145.png Woowahan Newsroom




디자인은 언제나 ‘누구의 언어인가’를 묻는다


키치와 포스트모더니즘이 남긴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게 예술인가 아닌가”가 아니다.


“이 디자인은 누구의 언어인가?”


전문가만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인가, 아니면 모두가 바로 반응할 수 있는 언어인가. 높은 취향을 유지하기 위한 디자인인가, 아니면 지금의 현실과 솔직하게 맞닿은 디자인인가.


이 질문은 오늘날의 브랜드 디자인, 그래픽, 콘텐츠 전반에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취향을 의심하는 태도


키치와 포스트모더니즘이 남긴 유산은 특정한 스타일이나 시각 효과가 아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어온 ‘좋은 디자인’의 기준을 한 번 더 의심해보는 태도다.


디자인은 언제나 선택의 결과물이고, 그 선택 뒤에는 보이지 않는 기준과 취향의 권력이 숨어 있다. 디자이너들이 디자인을 할 때 늘 한 번 더 묻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건 고급스러운가, 저급한가가 아니라 지금 이 맥락에서, 어떤 언어가 더 솔직한가.


경계를 허무는 순간, 디자인은 다시 현재형이 된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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