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내가 피터지게 싸워왔던 이유
결혼 12년차,
우리는 오지게도 부딪혀 왔다.
연애할 때는 부딪힐 일이 전혀 없었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도 한 번을 싸워본 적이 없던 우리였다.
마치 퍼즐처럼
내가 결혼준비를 주도하면
뒤에서 따라오는
딱 맞는 짝이라 생각했다.
결혼을 하고서 우리는 많이 부딪혔다.
커다란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게 무엇이었는지 기억도 안날 정도의
사소한 문제로 우리는 싸웠다.
피터지게 싸웠다는 말도 해당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를 물고 뜯어야 피터지는 싸움이 될텐데
싸움의 결도 우리는 많이 달랐다.
같이 으르렁대며 공격하는 것이 아닌,
나는 추격하며 물어 뜯어대고
남편은 입을 닫고 동굴로 들어가버리는 형태였다.
그렇기에 싸웠다는 표현이 적절한지도 잘 모르겠다.
처음 싸움이 시작되었을 때가
임신 당시였던 것 같다.
시부모님께 차갑게 대하는 남편을
이미 연애시절 본 적이 있는데
그 행동을 내게 고스란히 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딱히 무언가를 하진 않았지만
행동에서 무심하고 차갑고 냉정한 느낌이 들었다.
그럴 때면 난 너희 엄마가 아니라는 말로
남편을 물어 뜯었다.
그리고 남편은 영문도 모른채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기분이 나빠져 다시금 동굴로 향하곤 했다.
아이를 출산하고 나는 하루가 멀다하고
남편에게 폭발적으로 분노했다.
공정함이 중요한 내게
육아는 늘 공정하지 않다고 느껴졌다.
물론 어떻게 계산적으로 5:5 정확히 공정함을 나눌 수 있겠는가.
각자가 맡은 영역이 다르고, 속도가 다를진데
지금 생각해보면 공정하지 않다는 느낌 자체에 대한 빡침이 아니라
그것을 당연시하는 남편의 태도에 화가 났던 것 같다.
가족으로서 당연히 내가 조금 더 할 수 있지,
내 새끼 건사하는 일인데 기꺼이 내가 더 희생할 수 있지 싶었다.
하지만 남편이 내가 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고
협력하려는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
그 태도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저 "회사 일때문에 너한테 많은 짐을 지게 한 것 같아 미안해."
라는 작은 성의를 보이길 바랐다.
이것은 인정을 바라는 것과는 달랐다.
주말 아침, 내가 육아에 지친 몸으로 일어나
아침 식사를 차리며 하루를 시작할 때,
얼마나 힘들까 하는 맘으로
함께 협력하길 바랐다.
내가 밥을 차리는 동안,
내가 빨래를 하는 동안,
내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당연히 누워 폰을 만지작거리는 그 태도에 화가 났다.
니가 집안일을 하는 것은 당연한거야.
라는 그 태도가 나를 미치게 했다.
나였다면 혼자서 밥 차리는 와이프에게 미안해서라도
벌떡 일어나 눈에 보이는 집안일을 했을텐데 화가 났다.
밥을 다 먹으면 미안해서라도 설거지는 내가 하겠다고
쉬고 있으라고 했을텐데
당연하게 먼저 밥을 먹고 방에 들어가
누워서 폰을 보고 있는 남편에게 화가 났다.
내가 식모로 이 집에 들어왔나,
시터로 이 집에 들어왔나,
저 당연한 듯한 태도는 뭐지?
속에서 부글부글 끓었다.
아가씨 때였으면, 신혼 초였으면 참지 않았겠지.
소리 높여 싸우고,
동굴로 숨으면 멱살 잡고 끄집어내 싸워댔겠지.
끝까지 몰아붙이고 물어 뜯으려 했겠지.
하지만 내겐 아이가 있었다.
매일을 전쟁같은 부부싸움 속에서 자랐던 나는
아이에게만큼은 부부싸움의 공포를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매일 속은 타들어갔지만
입술을 깨물며,
허벅지를 찔러가며
분노를 애써 억눌렀다.
그러자 남편의 행동은 더 기고만장해지는 것 같았다.
내가 어떻게 참고 있는데
참아낼수록 남편은 아주 당연하게 침대로 향했다.
집안일을 하는 내게 눈 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아이 앞에서 싸우긴 죽기보다 싫고,
그렇다고 가만 두자니
저 기고만장한 태도가 하늘을 찔렀다.
점점 기세등등해졌다.
그러니 속으로 이를 갈 수 밖에.
두고보자.
아이가 출가하면 두고보자.
가만 두지 않겠다.
그때돼서 집안일 하나 못하는,
다 늙어서 일도 못하게 된 너를,
내가 어떻게 할지 두고보자
라며 이를 갈았다.
내가 지금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너한테 순응하고 사는게 아니다.
아이를 위해 발톱을 숨기고 있을 뿐이지,
아이가 성장하고나면 제대로 한 번 뒷통수 맞아봐라.
하며 이를 갈았다.
그렇게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아이는 11살이 되었고,
우리 부부도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 들었다.
그렇게 이를 갈 던 나는 한 풀 꺾여
그래 이게 인생이지하며
인생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20대 젊은 엄마가 패기넘치게 했던 그 복수극은
그저 상상으로 끝이 났다.
나이가 드니 내가 유해진건지,
아니면 포기한건지,
상황에 익숙해진건지,
우리가 성장한건지,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우리는 한 풀 꺾였다.
며칠 전, 아이가 친구들과 파자마파티를 하느라
남편과 단 둘이 고기를 먹으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술을 마시며 남편은 얘기했다.
"넌 내가 죽어도 아이랑 개의치 않고 잘 살아 나갈거 같아."
일부 동의한다.
슬퍼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분명 슬프겠지만 남편이 없어도 나는 아이를 잘 키워 나갈 것임을 안다.
남편에게 그리 의지하지 않았으니까.
이미 남편이 없어도 혼자서 척척 아이를 키워내 왔으니까.
남편의 그 말에 솔직한 심정으로는
약간의 괘씸함도 올라오고(그러게 그렇게 혼자 하게 만들더니 하는)
또 한 편으로는 미안한 감정도 올라왔다.
남편의 태도에 지칠대로 지쳐
나 역시 남편에게 그 어떤 기대도 없었다.
니가 안하면 혼자 한다라는 생각으로
매번 남편을 빼놓고 아이를 데리고 다녔다.
놀이공원을 가도 당연하게 남편에게 묻지 않았다.
뉴질랜드를 갈 때도 당연히 남편은 빼고 가는 거라 생각했다.
엄마 생신을 위해 해외여행을 간다고 할 때도 남편이 가던지 말던지 상관이 없었다.
이미 나 역시 감정적으로 남편에게 돌아서 있었다.
자연스레 그를 배제하고서 생각했다.
그러니 혼자여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사별을 하든 이혼을 하든
어차피 지금도 경제적 활동을 제외하고는
나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느낌인데
남편이 사라진다는 것이 내게 큰 타격이 올 리가 없었다.
감정적으로는 당연히 슬프겠지만
현실적으로 달라질건 크게 없었다.
맞벌이를 하면서도 아이 케어는 거의 혼자 했다 생각했기 때문에
남편이 부재해도 나는 여전히 일을 하고, 육아를 할 수 있다 생각했다.
나는 남편을 정서적으로 먼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함께 육아를 하는 것 같지만
각자의 역할을 할 뿐 의지할 대상이 아니라 어렴풋이 느끼면서.
그리고 그건 남편 역시 마찬가지였으리라.
둘 다 정서적으로 멀어져 있었던 것 같다.
최근 우리는 이사를 왔다.
이사를 온 집에서 남편은 내게 이상한 질문들을 자주 했다.
"너 세탁기 건드렸어? (아니) 이거 미세하게 약간 틀어져 있는거 같은데? "(그 날 건조기 AS기사가 와서 약간 건드린게 맞았다.)
"냉장고 양 쪽 문 닫히는 속도가 좀 다르지 않아? (몰라) 이사 전에 안 그랬지 않아? (몰라) 불편하지 않아? (별로)"
이러한 질문들이 이어졌고,
나는 남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사실 남편이 이런 것을 지적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것들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다.
불편함도 들지 않았다.
이상함이 자각이 되어야 불편함이 느껴질테니 말이다.
오히려 남편의 이야기 이후 냉장고의 문이 불편하게 자각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세탁기는 남편이 지적했음에도
무엇이 어떻게 틀어졌다는건지 전혀 자각조차 안된다 지금까지도.
남편은 초초초예민한 사람이었다.
그 예민함은 물리적인 것에 향해 있었다.
생각해보면 이사 전에도 티비를 잘 보다가
"저거 불량같다."라며 AS센터에 접수를 한다.
불량이라는 말을 듣고도 인지를 못한 나는
AS기사가 와서 불량이 맞다고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때론 조명 등이 미세하게 어두워졌다고 말하곤 했다.
그것 역시 내겐 인지조차 되지 않았다.
티비의 색감이 약간 어두워졌다거나,
내 폰의 스피커에서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난다거나, 자신의 폰과 음질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했다.
스테인레스 식판을 아이가 먹다가 숟가락으로 긁으면
소스라치게 소름끼쳐하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아이가 식탁 의자를 발로 통통 차면서 밥을 먹을 때면
발을 가만히 두라고 지적하곤 했다.
내게는 거슬릴 것 하나 없는,
전혀 자각조차 안되는 것들을
남편은 예민하게 받아들였다.
사실 연애 때는 남편을 무던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지금도 주변에서는 남편을 무던한 사람이라 칭한다.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한 사람이라고.
살아보니 아니었다.
남편은 초초초초예민보스로
물에 한 방울의 술이 섞여 있어도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남편은 내게 자주 지적을 하곤 했다.
"왜 물건을 함부로 다루냐?
또 물건 부러뜨렀냐?
기계 좀 조심히 다뤄라.
그렇게 막 대하니까 금방 고장나지 않냐?"
그런 남편의 잔소리가 끔찍했다.
처음엔 "시오마시 납셨네"라고 되받아쳤지만
날이 갈수록 심해지니 이제는 나 역시 눈치를 보게 됐다.
무엇하나 고장내면 눈치가 보였고,
무엇하나 잘못 건드려 미세하게 틀어지면 눈치가 보였다.
내가 그런 쪽으로 정말 둔한 편이긴 하다.
어릴 때부터 마이너스의 손이라며 부모님께 많이 혼이 났다.
그땐 그저 어른들로부터 칠칠치 못하다, 덜렁댄다는 이야기를 들어왔으니
그냥 나는 좀 덜렁대는 아이다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남편과 지내보며 느꼈다.
단순히 덜렁대는 사람이 아니라,
머릿 속에서 인지하는 구조가 다르구나 하고.
어릴 때부터 수도 없이 들어왔다.
조심해라, 그만해라, 다친다, 하지마라.
그리고 매번 일을 그르치고는 뒤지게 혼나곤 했다.
니가 하는게 뭐 그렇지! 하면서.
학창시절 그렇게 끝난 줄 알았던 잔소리는
결혼해서도 남편으로부터 이어지기 시작했다.
시어머님은 임신해있던 내게
"차라리 내가 임신하는게 낫겠다.
저렇게 동작이 크고 덜렁대고 다녀서야
잘못될까봐 니가 움직일 때마다 너무 무섭다."
라고 하셨다.
내 인지 구조에서는 그런 것들이 눈에 애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라고 조심하기 싫어서 안하겠냐고,
조심하고 싶은데 무얼 어떻게 조심해야 할지
디테일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지조차 않는다.
자각조차 되지 않는다.
나야말로 답답했다.
도대체 뭘 조심하라는거야?
세탁기가 미세하게 틀어진걸,
냉장고 문의 닫히는 속도가 달라진걸,
전등이 미세하게 어두워진걸,
폰의 음질이 찢어지는 듯하게 들리는 걸,
스테인레스 식판 소리가 찢어지듯 들리는 걸,
발로 식탁을 차고 있다는 걸,
스스로가 인지가 되어야 조심을 하는데 말이다.
내겐 전혀 불편감을 주지 않는 것들이다.
인지가 안되니 불편할 리가 없지.
그러니 나는 덜렁대서, 칠칠맞아서, 조심성 없어서
그런 행동을 하는게 아니라
애초에 뇌 구조 자체가 그런 것들에 초점맞춰 있지가 않다.
그런 것에는 매우 둔감하다.
그렇다면 나는 둔감한 사람인가?
또 그렇지 않다.
나는 관계적으로, 정서적으로 매우 예민하다.
관계 안에서의 미묘한 변화도 잘 캐취하고
말하지 않은 비언어적 메세지도 기가 막히게 판별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 공기만으로도 관계의 흐름을 읽고
말 한마디 없이도 그 사람의 기분을 금세 읽어낸다.
상담사라 그렇냐고?
상담을 하며 더 강화되었기도 하지만,
사실 상담 이전부터 매우 높은 수준의 관계적, 정서적 예민함을 가지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신경질 적이었던 엄마의 눈치를 봐야 혼나지 않을 수 있었다.
매일같은 부모님의 부부싸움을 감지해야 피할 수 있었다.
내가 무얼할 때 부모님이 기뻐하는지,
무얼할 때 싫어하는지,
어떻게 해야 사랑받을 수 있는지,
그 미묘한 것들을 캐취해야만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
물론 기질적인 부분도 있었겠지만
눈치는 살기 위한 생존 전략이었다.
그래서 나는 관계를 잘 하기도 했고,
또 한 편으로는 관계에서 피곤하기도 했다.
나의 강점이자 약점이기도 했다.
그러니 나는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이 미묘한 공기를 매번 캐치해냈다.
하지만 남편은 감정적으로, 관계적으로 무던한 사람이었다.
무던하다고 해야할지, 무관심하다 해야할지 어쨋든.
내가 2시간이고 3시간이고 집안일을 하고 있어도
남편은 돕지 않고 침대에 누워 폰을 만졌다.
그때 속으로 생각했다.
나 였으면 절대 저러고 못 있는다.
어떻게든 내가 도울 거리는 없는지 발딱 일어나서
시키지 않은 일도 나서서 할테지.
그게 인지상정이지.
그게 협력이지.
그게 공정함이지.
저 태도는 내가 집안일을 하는 걸 당연시하고 무시하는 태도 아니겠냐.
아이 앞에서 싸우기 싫어 부글부글 끓어 올라도 참았지만,
속으로는 그 태도에 빡이 쳤다.
그런데 내가 남편의 예민함이 인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자각한 순간부터
아 어쩌면 남편 역시 나의 예민한 부분이 자각되지 않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폰이 찢어지는 소리가 나도 인지 자체가 안되니
불편해하는 남편을 두고도 빼액빼액 음악을 틀어뒀다.
운전할 때 극도로 예민해지는 남편을 태우고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엉덩이를 쿵쿵대고 급브레이크를 밟아댔다.
세탁기 위치 변화, 냉장고 문의 변화를 얘기하는 남편에게
더럽게 예민하게 군다며 꼽을 줬다.
물건을 조심히 쓰라는 남편에게
잔소리한다며 대화를 차단했다.
무엇이 거슬리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인지조차 되지 않으니
행동을 수정할 수가 없었다.
아니 문제의식 조차 없었다.
남편 역시 마찬가지였으리라.
내가 집안일을 한다는 사실을 보고도
자신이 나서야 한다는 것이 자각 자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지 예상조차 안됐을 것이다.
시키는건 또 잘 하는 사람이었다.
다만 자신의 속도를 중요시 하는 사람이라
독촉한다며, 통제받는다며 극혐하며
수동적 공격성을 드러냈지만(무시하는 태도로)
서로가 예민한 부분이 다르니
어쩌면 서로 무엇이 문제인지 자각 조차 되지 않았을 수 있겠다 싶었다.
나는 그가 무엇이 불편한지 몰랐다.
그는 내가 무엇이 불편한지 몰랐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서로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몰랐다.
무엇을 조심해줘야 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사람은 사람을 볼 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를 가장 먼저 본다고 한다.
나는 두꺼운 다리가 콤플렉스라
여자들을 볼 때 다리가 먼저 보이곤 했다.
나는 치아가 마치 교정한 사람처럼 고르게 나있다.
그러니 타인의 치아가 삐뚤빼뚤 부정교합이거나
입이 튀어나왔다거나 하는 부분을 전혀 알지 못한다.
내게 거슬리는 부분이 아니라 관심도 없고
아예 눈에 드러오지도 않는다.
그래서 내가 만났던 전 남친들 중엔 심각한 부정교합도, 입툭튀도 있었다.
오히려 주변에서 넌 왜 저렇게 생긴 사람을 만나니? 물을 정도로;
내게 예민한 부분이 아니라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처럼 나와 남편은 각자가 예민한 부분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대방이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알지 못한 채.
그러니 상대를 위한 행동을 하지 못했다.
나는 남편에게 육아는 나 혼자 다 떠안고 있다고 매일 소리쳤다.
남편은 내게 집에 물건이 남아나질 않는다고 매일 잔소리했다.
서로에게 캐치되는 부분이 완전히 달랐다.
남편과 나는 서로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남편의 청각적, 시각적 예민함을 인지한 순간
많은 것이 이해됐다.
왜 아이를 그토록 과잉보호하는지까지도.
남편은 아이에게 조금만 위험해보이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한다.
남편에게는 그러한 물리적인 부분들이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들어오니
위험한 부분도 훨씬 잘 보일게다.
그러니 물건도 항상 조심해서 다루고,
폰 하나도 5~6년을 사용한다.
그런 남편에게 나는 답답함을 느낀다.
도대체 뭐가 위험하다는 건데?
나는 아이에게 더 도전해보라 말한다.
인라인스케이트도, 두발자전거도 다 내가 가르쳤다.
그리고 그걸 하지 않는 남편에게
아빠로서 하는게 뭐냐, 모든 걸 엄마에게 떠맡겨놓는다.
라고 질책했다.
나는 남편에게 아이와 대화를 나누라고 종용한다.
관계적으로 예민하기 때문에
아이와 아빠와의 관계 역시 예민하게 바라본다.
뉴질랜드에 다녀와 감기에 걸린 내가
2주간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은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 딸이 얘기했다.
"엄마가 말을 안하니까 집이 너무 조용해."
나는 항상 아이에게 유대감을 주려고 노력했다.
정서적으로 풍성한 관계 안에서
끈끈한 애착을 경험할 수 있도록.
유치원 졸업식, 학교 입학식, 매년 아이의 생일 날,
나는 아이에게 손수 쓴 장문의 편지를 몰래 아이 가방에 넣어둔다.
크리스마스 선물도 밤새도록 내가 준비하고,
포장하고, 편지를 준비한다.
혹여나 차갑게 얘기를 한 것 같으면
뒤돌아서 후회하고 곧바로 쫓아가 마음을 살핀다.
아이의 친구 사이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감정 변화도
민감하게 캐치해 아이를 살핀다.
일부러 하는 것들이 아니라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히 일어나는 나의 감정 반응들이다.
그리고 그것에 따라오지 못하는 남편을 보면
나에게 육아를 고스란히 맡겨두고
한 발 빠져 있는 것처럼 느껴져 화가 나곤 했다.
나는 이렇게 편지를 쓰는데
아빠라는 사람은 편지 안쓰고 뭐하는데?
아이한테 왜 저렇게 말을 안붙이는데?
아이에게 왜 저렇게 차갑게 말을 하는데?
퇴근해 오면 왜 안방에 가서 문을 닫아놓고 폰만 보고 있는데?
왜 아이 얼굴은 봐주지 않는데?
내게 그렇게 하는 것까진 이해해도
아이에게 그런 행동들이 나가면
나는 퍽 서운해지곤 했다.
하지만 남편은 관계에 예민하지 않으니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한다는 생각에 미치지 않았다.
그리고 나 역시 관계적으로 과한 부분이 있음을 인정한다.
결혼을 준비하던 때였다.
우리는 간소화 결혼식을 원했고,
예물과 예단 모든 것을 생략하자고 이야기가 됐다.
그리고 남편은 시어머님께 "생략해도 되지?" 허락을 구했고
어머님은 쿨하게 오케이를 외치셨다고 한다.
그 얘길 들은 나는 여간 찝찝한게 아니었다.
그 상황을 직접 보지 않았음에도
어머님께서 오케이한 것이 오케이가 아닐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남편은 "우리 엄마 그런 사람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후 어머님과 식사할 기회가 있었고,
그때 조심스레 물었다.
"어머님 결혼 간소화하는거 허락하셨다고 하시던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어머님의 답변은 전혀 달랐다.
"솔직히 아들 장가보내는데 다 해주고 싶지."
그때 남편에게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냐 물었고,
남편은 "아니면 아닌거고, 기면 긴거지 왜 그런걸 솔직하게 말하지 않냐, 이해할 수가 없네"라며 답답해 했다.
남편은 타인이 이야기하는 숨은 의도를 전혀 몰랐다.
겉으로 하는 이야기가 다 인 사람이었다.
그렇게 관계에서 둔감하니 스스로는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고,
그냥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인간관계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허나 관계 예민도가 높은 나는
시댁의 이면의 숨은 메세지를 아주 잘 캐치해냈고,
그러한 부분에서 우리는 결혼 생활을 하며 자주 싸웠다.
남편에게는 아예 인지조차 되지 않는 것을
문제라고 고치라고 이야기하니
남편은 당췌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남편은 내게 고치라고 하지만
뭘 고쳐야 할지 감조차 안온다.
그게 뭔지라도 내 눈에 보여야
고치든 말든 할텐데
내 눈에 아예 들어오질 않는다.
나의 초점은 관계와 정서에,
남편의 초점은 물리적 환경에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매우 달랐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처럼.
이과에서 온 남자, 문과에서 온 여자였다.
남자와 여자 성별의 차이때문이 아니라
살아온 환경의 차이로.
결핍의 차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