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ssica Kim Aug 26. 2020

밀크쉐이크가 넘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늘어나는 미스테이크 

두 가지 일을 병행한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처음엔 새로운 일자리가 생겼다는 사실에 엄청 들떴다. 모든 일이 그저 신나고 재미있었다.  

사람들도 다 너무 좋게만 보였다. 그래서 잠깐 내가 천국에 와있나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곳은 직장이지, 놀이터가 아니었다.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는 장소이지, 친분을 쌓으려고 가는 장소가 아니었다.


천진난만한 5살 아이처럼 아무 생각 없이 무턱대고 이 일을 시작해버렸다.

매주 스케줄이 달라졌지만 초반에 나는 격일로 일주일에 3번, 주말을 제외하고 일을 하게 되었다.

사장 토니는 내게 5분 일찍 오라고 누누이 말을 했다.


하지만 아침에 아이들을 유치원에 허겁지겁 데려다주고 카페에 가면 그 5분이란 시간이 짧아도 너무 짧다.

아이들의 입장에선 평소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등원하는 것이니, 잠에서 덜 깬 나머지 칭얼거림은 더욱 심하다.  무조건 No!! 만 외치며 그렇게 울고불고 실랑이하다 보면 늦기십상이다. 


시간이 촉박해 혼자 용을 쓰고 있는데 아빠 데미안은 옆에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왜 애들 머리 안 빗겼어? 왜 옷 안 입혔어?" 약 올리기라도 하려는 듯 옆에서 깐족거린다. 

그럴 때면 나도 신경이 '바짝 곤두선 고슴도치의 털처럼' 날카로워진다. 쉽게 짜증이 나고, 시간에 대한 강박이 생기고 스트레스 지수가 확 올라가버린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손이 열개라도 부족한 워킹맘이 된 기분이다. 저들 부모는 따로 있는데... 그들은 혼자서만 이리도 정신없이 바쁜 나를 본체만체한다.

아 아니다. 다 내가 자초한 일이니, 할 말이 없다.


그렇게 나는 엄청난 노력 끝에 카페에 겨우 정시에 도착을 하곤 했다. 

아슬아슬하게 늦지 않게 도착했지만 사장의 입장에서 나는 5분 전에 도착한 것이 아니니, '매일 늦는 직원'으로 찍혀버렸다. (물론 5분 전에 도착한 적도 많았지만 나쁜 점만 기억에 오래 남는다는 사실^^) -5점 감점.

늦었기에 화가 났는지 싸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처음부터 주눅 들어 하루를 시작한다. 


도착한 주방에는 이미 많은 스태프들이 먼저 와서 일을 하고 있다.

아침은 주로 테이크아웃 카페답게 손님들이 출근길에 들러 아침식사 거리나 모닝커피를 포장해가지고 가기 때문에 엄청 북적거린다.

나는 출근 전부터 여러 가지 뒤치다꺼리한다고 정신이 없었는 데다, 곧바로 낯선 장소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낯선 일을 하려고 하니 머리에 과부하가 걸린 것 같다. 그것은 곧 행동으로 나타났다.


첫 과제는 초코 밀크셰이크 만들기다. 나는 긴장한 탓인지 믹서기에다가 원래 레시피보다 우유를 많이 넣었다. 

믹서기를 작동시키자마자 내용물이 분수처럼 힘차게 솟아올랐고, 그것들은 곧 뚜껑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와 파티를 열었다.

주방이 엉망이 되었다.... ㅡㅡ X 됐다;;;; 게다가 초콜릿 시럽을 깜빡했다. 

나는 밀크쉐이크 대신 미스테이크(실수)를 만들었다. 

이것은 아마 앞으로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복선이 아니었나 싶다.

여기서 또 감점. -10점


시작부터 꼬이니 곧 자신감을 잃었다. 그 실수에 자꾸 연연하게 되고 미련이 남는다.

아 바보같이 왜 그랬지.. 스스로 자책하다 보니 다른 임무가 주어졌는데도 내 마음은 과거에 머무는 중이다.

전혀 집중을 할 수가 없다. 


같이 일하는 호주인 Florence가 내게 샌드위치를 은박지로 싸 달라고 했다.

나는 여기서 쓸데없이 생각을 한번 더 했다. '보통 샌드위치 싸기 전에 데우던데, 데우고 싸란 말이겠지?'

제멋대로 해석하고선 데운 샌드위치를 포장해 손님에게 건넸다.

손님이 즉각 컴플레인을 건다. "샌드위치 데워달라고 한 적 없는데요?" 

하... 다시 만들어야 한다. 플로렌스가 화났다. 

또 감점 -20점. (신용을 한번 잃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점수가 배로 차감된다.)


난생처음으로 베지마이트 토스트를 만들게 되었다.

토스트기에 빵 두장을 바삭하게 굽고 난 뒤, 내게 초콜릿 잼 같은 까만색 진득한 고체의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전해졌다.

Vegemite라고 쓰여있다. 누텔라와 비슷하게 생겼다. 색깔이 좀 더 진하긴 하지만 나는 뭐 초콜릿처럼 단 것이겠지 생각했다. 

빵 위에 버터를 바르고 그 위에 그것을 바르라고 했다.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나는 인심 좋게 그 까만 것을 빵 위에 떡칠을 해놨다. 카페 매니저 사브리나가 그것을 보고 곧 튀어나올 것 같은 눈을 크게 뜨고 사무라 치게 놀랐다.

"That's too much!! It is really salty" -너무 많아!!! 이거 짜단 말이야. 

그녀는 황급히 그 까만 것들을 칼로 발라냈다. 그래도 여전히 까맣다.


도대체 뭐길래.... 나는 뒤에서 몰래 티스푼으로 그것을 퍼서 입에 넣었다. 맛을 보기 위해.

미간이 심하게 쭈그러든다. 


"아쒸!!!!!!!!!!!!! 퉤퉤퉤투테ㅜ퉤투테퉤테ㅜ테ㅜㅌ "


바로 입에서 욕이 나오고, 혀를 빼서 깨끗하게 씻어버리고 싶은 맛이다.



나무위키에서 베지마이트에 대한 더욱 자세한 정보를 퍼왔다.

호주 특산품(?) 스프레드. 호주 된장. 다른 의미로 악마의 잼 주로 호주와 뉴질랜드, 호주산 식품을 수입하는 나라에서 먹는 음식이다. 크래커에 발라먹는 스프레드의 일종으로, 1922년 호주의 식품학자 시릴 P.칼리스터 박사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에 수출할 목적으로 허브즙에 소금이스트 추출물을 혼합해서 처음 만들었다.

한 마디로 설명하면 MSG맛 잼인데 질감은 굴소스, 색은 국간장과 흡사하다. 굴소스와 국간장을 섞은 듯한 쓴 맛과 짠 맛이 공존하는 잼, 달리 말하면 춘장맛 잼이 정확한 표현일 듯. 외형이 검은색이라 이걸 누텔라 같은 초코 스프레드인줄 알고 듬뿍 발라서 입에 물었다가 참변을 당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나처럼 참변 당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닌 것 같아 조금 위안은 된다.

갑자기 손님에게 너무 미안해진다. 연세가 지긋한 인상 좋은 백인 아저씨는 그것을 받아 들고선 신이 나서 카페를 나섰다. 손님 하나 잃은 것 같다..... 미안 토니.. -40점 감점


내 머리와 마음속엔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들이 한데 뒤엉켜 용암처럼 부글부글 들끓는다.  그 중에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과 분노심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 같다.  아침에 실패한 밀크쉐이크처럼 이 감정들이 넘쳐 폭발할까 걱정이다. 

또 괜히 투잡을 뛰겠다고 나서서,  부족한 시간(=믹서기)에 반해 주어진 업무(=우유)가 많으니 그것들도 결국 넘쳐흘러 여기저기 튄 mistake 실수 (=Milkshake)들로 사방을 더럽힐까 걱정이다.

나도 모르겠다. 내가 왜 이러는 것인지. 

지금 당장 나가서 소주 한 병 벌컥벌컥 원샷 하고 싶은 심정이다.

 

작가의 이전글 마음에 따라 달리 보이는 세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