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아 엄마에게 놀이터란
오늘은 놀이터에서 세 시간을 보냈다. 놀이터에 우리보다 늦게 왔던 아이가 먼저 가고 옆에서 놀던 큰 아이들이 킥보드를 타러 떠나고 마지막 팀이 돌아가고 난 후에야 꽃과 사자는 집에 오는 것에 동의했다.
뒤늦게 동참한 남편과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오는 기분은 꽤나 행복했다. 어제부터 Daylight saving time이 시작되어 햇살도 충분했고 아이들은 트레일러에 앉아서 간식을 맛있게 먹었다. 저녁 식사 전이었지만 에너지 소비를 생각하면 걱정할 거리는 아니었다.
여러 아이들과 어울려서 놀다 오는 날엔 꽃과 사자에게 묘한 흥분이 감돈다. 조용한 곳에서 둘만 편안하게 노는 시간도 좋지만 때로는 아이들로 북적이는 곳에 있다 오는 즐거움도 있을 것이다.
고지대인 콜로라도의 강렬한 햇살을 식혀주는 맑고 차가운 공기 속에 꽃과 사자가 실컷 노는 모습을 보는 건 분명 엄마로서도 뿌듯한 일이다.
특히 세 돌을 얼마 남기지 않은 사자의 발달은 사뭇 놀라웠다. 그야말로 어린 사자처럼 모든 놀이 기구에 가뿐하게 올라갔고 다른 아이들을 지켜보다가 숨바꼭질이나 아이스크림 놀이에 살짝 끼기도 했다.
사자는 놀이터의 모든 흐름을 잘 따라갔다. 내가 일일이 따라다니지 않아도 필요할 땐 알아서 나를 찾으니 그 부분만 도와주면 되었다.
평범한 아이와 함께 공공장소에 간다는 건 이런 거구나.. 햇수로 4년째 둘째와 동거하고 있으면서도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큰 이유 없이 짜증을 내지도 않고 나이에 맞게 기구에서 놀 수 있고 문장 구사력은 아직 약하지만 그건 어려서일 뿐 뜬금없는 말이나 알 수 없는 말을 하지도 않는 아들.
그 평범한 아들과 공공장소에 가는 건 첫째 꽃에 비하면 너무나도 쉬웠다.
꽃이 사자 나이였을 때는 형편이 정말 달랐다.
누군가와 플레이 데이트를 해도 꽃의 신체 능력에 맞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어서 나는 한 번 제대로 앉아 있지를 못 하고 아이만 쫓아다녔다.
모래 놀이를 하면 다른 아이 얼굴에 뿌려서 미안한 상황이 되었고 아니면 자기 입에 집어넣어 괴로워하기도 했다.
다른 아이들이 이곳저곳 탐험하고 있을 때 꽃은 본인에게 제일 편한 그네만 실컷 타고 있었다.
같이 노는 법을 배우는 것도 꽃에겐 쉽지 않았다. 남이 놀고 있는 걸 뺏지 않도록 가르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고 짜증 내지 않고 차례를 기다리는 연습도 한참 해야 했다.
지금도 학교에서 보내주는 꽃의 IEP 목표에 보면 다른 아이들과 주고받는 놀이가 주된 내용일 정도로 장애아로서 또래와 소통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본인은 같이 놀고 싶어서 손을 내밀어도 조절을 하지 못 해 때리는 것처럼 될 때도 있었고 다른 아이들의 소꿉놀이에 참여하고 싶어도 방해하는 듯한 모습으로 나타날 때가 있다.
그 산을 어느 정도 넘었나 싶었더니 이젠 나이가 들어서 언어적으로 너무 큰 격차가 나버렸다.
꽃은 발화에 눈부신 발전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 자연스러운 대화는 되지 않는다. 두 세 단어를 연결해서 말할 수 있는 문장이 많지 않거니와 무엇보다 때와 장소에 맞게 말하는 연습이 한참 필요하다.
다른 아이가 놀고 있는 쪽으로 가서 꽃은 갑자기 Mine!이라고 소리친다. 꽃이 평범했다면 꽃이 하고 싶은 말은 I’m going to play on this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면 상대방 아이는 뭐지? 하는 눈으로 쳐다본다. 자기는 거기에 별로 관심도 없는데 꽃이 자기 것이라고 외치니 어이가 없겠지.
옆에서 사자가 듣고 있다가 It’s for everyone이라고 말해도 꽃은 한번 더 Mine 이라며 본인은 즐겁게 또 열심히 논다.
그런 경우 “이건 네 것이 아니라 모두가 쓸 수 있는 거야.” 보다 조금 더 구체적인 피드백을 줘야겠다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 이벤트가 오늘 있었다.
(꽃과 동갑인) 한 여자 아이가 난코스를 올라가고 있으니 꽃도 따라 하고 싶었던지 그 옆에 올라섰다. 내가 그걸 봤을 땐 누가 먼저인지 알기 어려웠는 데다 꽃이 내게 말해줄 수도 없기에 나는 십까지 숫자를 세기로 했고 꽃이 내려오자 그 여자 아이가 올라갔다.
그러자 다른 키 큰 애가 자기도 한다며 줄을 섰고 사자도 나의 지시를 따라 줄을 섰는데 꽃이 몸을 들이대었다.
앞에서 올라가는 중이었기 때문에 꽃이 정말 새치기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내가 바로 제지를 했는데도 키 큰 애는 No cutting in!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소리를 지를 것 까지야.. 꽃이 작고 만만하니 유난히 더 그러는 것 같아서 순간적으로 기분이 나빴지만 줄을 서야 하는 건 내 아이였기에 꽃한테 차례대로 하자고 말할 뿐이었다.
그때 옆에 있던 한 엄마가 나섰다.
“아직 어려서 끼어드는 게 뭔지 모를 수도 있잖아. 그렇게 소리치지 말고 이번엔 내 차례고 다음엔 네 차례야 라고 말해주는 게 어떻겠니?”
그러고는 내게 꽃과 사자의 나이를 물어봤다. 사자는 어련히 두 돌인 줄 알았겠지만 꽃의 나이를 듣고 그냥 음 하는 걸 보니 그렇게 나이를 물어봄으로써 꽃의 장애를 확신하는 눈치였다.
아이들 일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 남편도 그 일이 인상적이었는지 집에 와서 No cutting in!이라고 흉내를 냈다.
나도 그 여자 아이가 얄밉긴 했지만 거기에 집중하기보다 그 엄마가 말한 방식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새치기하지 말라고 하는 대신 상황을 설명해 주는 방식 말이다.
예를 들어 꽃이 Mine!이라고 외칠 때 나는 부질없이 그 개념을 고치려고 했던 것 같다.
다른 아이는 잘 놀고 있는데 혼자 그렇게 소리치는 게 당황스럽기도 했고 그건 두 돌 정도에 보이는 행동이라 속상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건 네 것이 아니고 모두가 쓸 수 있는 거라고 가르쳤던 것이다.
장애아라서 안 좋은 소리 들을까 하지 말라는 뜻만 내비쳤지 막상 아이가 그럼 무슨 말을 하고 행동을 해야 하는지 방향 제시는 잘 못 해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꽃은 그저 “내가 이걸 할 거야”라는 표현을 어떻게 하는지 모를 뿐일지도 모른다. I’m going to는 아직 어려우니 It’s my turn이라고 하는 게 어떻겠냐고 가이드를 해줘야겠다.
육아는 어렵다. 장애아를 키우는 건 더욱 어렵고 그중에서 장애아와 놀이터 같은 공공장소에 간다는 건 장애아 자체보다 장애아 엄마에게 심리적으로 부담스러운 일이다. 미국에 산다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다.
내 아이의 외모만 보고도 달라지는 분위기를 느낄 때가 있다. 아이 주도로 놀 수 있도록 담담하게 지켜보려고 해도 혹시나 돌발 행동을 하거나 예의 없게 보일까 봐 필요 이상으로 내가 개입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최대한 데리고 다닌다.
꽃을 봤다 하면 활짝 웃으며 몇 번이고 인사하는 아이들도 있고 같은 반이었으면서 모르는 척하는 아이도 있다. 꽃이 하지 말란 말을 제대로 못 해서 그냥 Stop!이라고 하는데도 못 들은 건지 계속 로프를 흔들어대는 아이들도 있다.
누가 좋다 나쁘다를 말하기보다는 그런 다양한 군상 속에서 장애아인 꽃과 그 동생인 사자가 스스로 느끼고 배울 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무엇보다 장애아라도, 또 그 장애아의 엄마라 남보다는 조금 더 힘든 점이 있더라도 아이들은 밖에서 뛰어놀아야 하기에 오늘도 우리는 열심히 놀이터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