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구포역에서 내일의 나를 보았다

IMF 시대를 지나온 직장인의 기록

by 세바들

“위기는 반복돼요. 위기에 또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잊지 말아야 해요. 끊임없이 의심하고 사고하는 것,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그리고 항상 깬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 영화 '국가부도의 날' 마지막 대사의 일부분이다.


1997년 11월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TV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긴박했던 국가부도의 날 뉴스거리는 상상을 초월하였다. 대통령 담화에 이어 경제부총리가 바뀌고 다시 임명되는 등 온갖 부산을 떨고 있었다. 그렇게 계절은 엄동으로 바뀌고 학교는 겨울 방학으로 접어들었다. 그해 겨울은 방학 기간이었지만 거리는 텅 비었다. 그렇게 어느덧 날씨가 하절기로 바뀌고 있었지만 역시 거리를 오가는 사람은 적었고 출근길 거리에 자동차도 확연히 줄었다.


우린 어느 때나 다름없이 거리를 헤매야 했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많을 일 중에서 특히 건물이 새로 생기는 경우와 환경의 변화에 가장 민첩하게 움직여야 하는 직업적 특성이 고려된 업무이기도 하였다. 사회기반사업으로 전기, 가스, 수도, 통신의 적극적인 대응이 따라야 현대인 삶의 질을 높이기 때문이다.


여러 곳을 돌아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구포역 부근이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냄새인가? 아주 고약한 인분 냄새와 더 독한 찌릿한 냄새가 진동하였다. 아직 여름철 무더위가 시작되지 않았는데도 그늘진 건물 아래에는 많은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아니 대낮인데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잠들어 있는 사내들, 남루한 복장에 딸랑 신문지 한 장으로 자리를 잡고는 쭈그린 자세로 꾸벅꾸벅 조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공중전화부스 옆 그늘진 곳에도 삼삼오오 모여 대낮 술판이 벌어져 목소리가 크다. 허공을 향해 삿대질하며 세상을 한탄하고 있음이었다.


그랬다. 조금 전 여기를 오면서 스친 전통시장에서는 아기를 업은 젊은 아주머니를 보았다. 아주머니는 아기가 앉아야 할 유모차에 대파를 비롯한 다른 채소를 가득 싣고는 어두운 표정과 익숙하지 않은 행동들은 매우 어설프게 보였다. 아마 얼마 전에는 가족의 저녁 식사 준비를 위해 시장을 보는 처지에서 오늘은 채소를 팔고자 처음으로 나온 것 같았다. 어디로 가야하고 어디에서 자리를 펼쳐야 할지, 막막한 듯 머뭇거리다 다른 곳으로 이동해 가는 그 처연함에서 가족의 아픔이 상상되기도 하였다. 체면도 아픔도 묻혀버린 재래시장은 어느 곳보다 번잡하였다면 여기 구포역 주변은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잠시 작업을 멈추고 전봇대에 등을 기댄 채 한참 동안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이게 언제까지 이런 모습이 지속될 것인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작금의 현실이 우울하게 하였다. 나도 가장이지만 저들도 처자식을 둔 가장이었음을 상기해 보자 처지가 안타까웠다.


며칠 후 회사 내 플라자 쪽에서 괴성과 물건을 던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막내 사원이 현장을 목격하고 다급하게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한다. 당시에는 어지간하면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조용히 처리하려는 경향이 있었던 트라 잠시 내가 갔다 올게 하며 그곳으로 향했다. 커피자판기에서 커피 두 잔을 뽑아 양손에 들고 태연스럽게 다가갔다. 작은 체구의 남자는 매우 위협적으로 여직원에 욕설과 무리한 행동을 가하려 하고 있었다. 다가서자 그 남자는 매섭게 나를 노려보았지만 태연한 척 다가서며 내가 책임자라고 했다. 우린 한참을 대치하며 눈치를 보는 동안 남자는 진정 기미를 보였다. 커피를 내밀자 싫다고 하였지만, 재차 몇 번을 권하며 다가갔다. 다가서면서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커피를 받겠다고 내민 손에는 작은 잭나이프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 눈빛으로 인사하며 구석진 자리로 이동하였고 시간이 지나며 그의 사정을 듣게 되었다.


그는 자영업자로 제법 큰 식당을 했다고 한다. 무리하게 투자한 부분도 있었지만, IMF로 빌린 돈을 못 갚고 결국 파산했는데, 문제는 이 일로 아내가 가출했었다고 하였다.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가끔 아들에게는 전화가 왔었단다. 어디에서 전화했었는지 알고 싶어 전화국을 방문하여 통화내용을 의뢰하였으나 직원은 전화번호 명의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통화내용 발급이 불가하다고 하자 남자는 홧김에 술을 먹게 되었고, 또 참지 못하고 난동을 피우게 되었다며 미안하다고 하였다. 남자는 커피를 다 마시고는 종이컵을 내려다보며 흐느껴 울기 시작하였다. 그 남자의 속사정을 다 알 수는 없었지만 조금은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었다. 첫 직장에서 실패하고 식당을 차렸으나 또 실패하였고 두 번째 식당도 IMF 영향으로 졸지에 가정 파괴범이 되었다고 탄식하는 그 남자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쨌거나 참으로 많은 변화가 한꺼번에 닥치자 세상의 남자들은 냉정을 잃어갔다. 술로서 자신을 변명하려 했었다. 절망을 몸부림치고 있을 때, 현실을 직시하고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고자 몸소 저잣거리를 나서 채소를 팔아야 했든 젊은 아낙과는 비교가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부동산이 폭락하였다는 뉴스는 이제 세간의 관심거리가 되지 못한 지 오래다. 어느 중소기업 사장의 자살 이야기, 정리 해고된 사원들의 이야기가 연일 방송되었다. 시청자는 자신의 모습과 대비하며 희망을 내려놓고 있었고, 우울한 날의 연속이었다. 차츰 시간이 흐르면서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다. 경제 위기는 보통 사람들인 젊은 직장인에서부터 중년 사업가에까지 많은 교훈을 남겼다. 다시는 잊지 말자는 다짐이 많았고, 타인의 아픔을 나의 교훈으로 삼으려는 책들도 출간되었다. 이렇게 경제 위기를 잘 극복해 냈지만 많은 기업이 문을 닫았고 헐값에 우수한 기업이 외국 자본가에 넘어갔다는 소식은 지속되었다. 참으로 많은 직장인은 일터를 떠나야 했다.


오래전 일이여도 너무 싶게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최근에 더 강하게 느낀다. 벌써 이십 년의 세월이 훌쩍 흘렀다. 젊은 직장인은 이게 뭔 이야기인가 하고 의구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서두에서 “위기는 반복돼요. 위기에 또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잊지 말아야 해요”라는 영화 ‘국가부도의 날’ 마지막 대사를 되새겨 보는 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지금 매우 조용한 시간이 많아졌다고 느낀다면, 한편으로 안정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거나 불만스럽게 짜증 나는 시간이 많아졌다면, 현재 내 위치가 정상적인지 뒤돌아보는 긴장감이 필요할 때라는 생각이 앞선다. 내가 원치 않아도 불행의 씨앗을 누구나 하나씩 품고 있을 것이다. 소소한 일이라도 그냥 넘기지 말아야 한다. 내가 있는 곳이 최전선임을 아는 자각 수준을 높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오늘 하루도 9시까지 출근하기 위해 심각한 교통 전쟁을 치르며 도착한 나의 지정석이 왜 소중한지 그때는 잘 모른다. 퇴사하고 나면 알게 되는 게 있다. 직장인이 직장을 잃는 건 사회적 고립을 뜻하기 때문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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