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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살청춘 지혜 Jun 06. 2022

To be or not to be

상무지구에서 살아남기


아티스트웨이 8주차: 의지를 되찾는다.

단계를 밟는다는 것은 자신이 갖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해 불평하기보다  
자신이 가진 것을 도구 삼아 일해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일이 일을 낳는다는 것'이다.
작은 행동들이 쌓이면 더 큰 창조적인 삶을 누릴 수있다.
단계를 밟자! 지금 그대로의 삶에서 당신이 무엇을 할 수있는지 생각해보고 '바로 그것을 해보자'.

-아티스트웨이 247~248p-


“일하다 출출할 때 드셔~잉! 내가 줄 서서 1시간 반 지둘렸다가 받아왔지~”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은 깡마른 몸에 홀쭉한 볼, 하얗게 센 머리에 바람 들 새라 핫핑크 벙거지 털모자를 쓴 80대 어머님이 한의원 대기실에서 족히 2킬로는 넘어 보이는 큼지막하고 먹음직한 노란 바나나를 희미하게 떨리는 매듭 굵은 손으로 들고 서 계십니다.


“에구~ 어머님 드시지, 몸도 안 좋으신 분이 무겁게 이걸 들고 오셨어요? 근데 왜 1시간 반이나 기다리셨어요?” 하고 묻자, 묵직한 바나나를 건네시고는 등에 메고 있던 가방에서 전단을 꺼내 대기실 프런트 위에 잘 보이도록 활짝 펼치십니다. “요 앞 마트에서 설이라고 시간별로 행사를 한단디, 오메~ 다 990원이여. 여 봐잉~오후 2시엔 삼겹살 한 근이 990원! 4시에는 파 한 단에 990원! 내일 오전엔 고등어 한 손이 990원이네. 그랴서 사람들이 음~청 나 잉~. 줄이, 줄이 기~다란거시...” 긴 줄을 재현하려는 듯 큰 눈을 더 크게 뜨시고 양팔을 쫙 벌리며 당신의 이야기를 신이 나서 풀어놓으십니다. 990원 바나나보다도 한 시간 반 그 긴 줄을 기다려 사신 것을 한의원 간식하라고 일부러 주고 가시는 당신의 마음에 깊이 감사합니다.


저는 고만고만한 네 명의 딸들을 키우며 작은 한의원을 경영하고 있는 임상 23년 차 엄마 한의사입니다. 강산이 두 번 바뀌고도 남을 시간 동안 환자를 진료해 오며 치료가 만족스럽게 끝났을 때도 보람 있지만, 이렇게 타인이라는 거리를 넘어 인간적인 따스함을 내가 만든 사업장 안에서 마음 가까이 느꼈을 때 행복해집니다. 직원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지요. 그러나 사업장의 존폐를 생각해야 하는 입장이 되면 인간적인 정(情)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이 그동안 참 힘들었습니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question!” 셰익스피어 <햄릿>의 수 세기에 걸친 고뇌는 여전히 앞으로도 계속되겠지만, 저만의 살아남기 해법을 찾아다녔던 지난 10년을 공유할까 합니다.


제 사업장이 있는 곳은 일명 ‘소리 없는 총성이 난무하는 전쟁터’입니다. 이 지역을 잘 모르는 분에게는 조금 부풀려 ‘지방의 강남’이라고 소개합니다. 광역시 시청을 비롯해 각 분야의 관공서와 언론사들, 고층 건물마다 알알이 박힌 크고 작은 병.의원들, 각종 쇼핑 단지와 유흥주점이 밀집되어 있으면서 8차선 큰 대로를 중심으로 건너편에는 주택 단지가 또한 대단위로 인접해있습니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서 사업을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도전해 보고 싶은 지역입니다. 동시에 동종 업종의 경쟁에 밀려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한 달이 멀다 하고 개업과 폐업을 반복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제 사업장 100m 인근 한의원만 살펴봐도 근 10년간 기존에 있던 7곳이 사라지고, 2곳의 프렌차이즈 특화 한의원이 새롭게 생겼습니다.


12년 전 처음 이곳에 자리 잡았을 때만 해도 저는 매우 호기로웠습니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고, 주변 가게도 문을 닫아 버릴 정도로 상권이 없는 곳에서 처음 열었던 한의원을 나름 고군분투하며 잘 경영했었다는 자신감과 피부 전문한의원에서 1년간 부원장을 하며 최신 피부 비만 치료와 정보를 총알로 장전했다는 든든함이 있었습니다. 창밖에 넘쳐나는 인파를 향해 준비된 총알을 나는 쏘기만 하면 된다고 자신만만했지요.


그러나 소위 ‘개업 빨’이라는 3개월의 기간이 지나고 나자, 베이킹파우더로 한껏 부풀었던 공갈빵 반죽이 푹 꺼지듯, 밀려든 바닷물이 한순간에 썰물로 쑥 빠져 맨바닥을 드러내듯 갑작스럽게 한산해진 사업장에 당황해하며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습니다. ‘큰돈을 투자해서 개업했는데 이러다 망하면 어떻게 하지?’ ‘직원들 월급은 줄 수 있을까?’ ‘앞으로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무료로 경락을 해주는 곳이나 의료기 체험장이 생기면 그곳으로 우르르 몰려가고, 새로운 시술이나 레이저 기계가 들어와 이벤트를 한다고 하면 양방으로 쏠려가는, 저로서는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와 너무나 다양하게 변하는 주변 환경에 막연한 두려움으로 조바심을 냈던 시기. 


내원 환자 수가 줄고 매출이 떨어지면 모두가 다 내 실력이 부족해서인듯해서, 자책하며 거리로 나가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던 소리 없는 몸부림의 시간들... 망했다는 말을 듣는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 창밖으로 지나가는 많은 사람을 바라보며 ‘저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내 한의원으로 들어오게 할까?’ 멱살이라도 잡아 끌어당기고 싶었던 마음들... 어떻게 하면 상무지구에서 살아남을까? 했던 궁리들... 그리고 좌절들...


처음에는 큰 병원이나 사업장처럼은 아닐지라도 벤치마킹하듯 따라도 해 보았습니다. 현수막 홍보도 해 보고, 아파트 거울 광고도 하고, 시기 시기에 맞는 이벤트도 해 보고, 관공서나 학교에서 건강 강의를 요청하면 기꺼이 참여해 홍보와 봉사활동도 하며, 좌충우돌 시간과 돈을 날리며 밖에서부터 무언가를 얻으려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 지역에서 필요하고 작은 사업장인 나에게도 맞는 틈새 경영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아가기 시작했던 듯싶습니다. 안으로부터의 혁명!


“환자의 필요를 최우선으로 여긴다.” 

가장 먼저 한 일이 사업장이 지향하는 핵심가치와 비전을 직원들과 함께 만들어 공유했습니다. 이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각자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고 실천해 보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갖고, 잘 실천한 직원은 상을 주며 격려해주었지요. 그리고 경영과 진료를 모두 담당하고 있는 제가 먼저 한 것은 매출의 숫자와 내원 환자 숫자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일이었습니다. 대신 충실하고 질적인 진료와 제가 더 잘 할 수 있는 특화된 분야의 개발을 위해, 동료 원장님들과 임상 스터디를 만들어 다양한 의료적 분야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만들어진 수요 임상 스터디는 8년째 지금까지 매주 이어지고 있습니다. 긴 코로나 난국 상황에서도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준비해온 마음의 근력 덕분인 듯합니다.


저마다 반짝이는 전문성을 자랑하는 큰 사업장이 몰린 중심지 속에서 내 작은 공간은 이제 상무지구 사랑방 같습니다. 어르신들끼리 만날 약속 장소를 한의원 치료실로 잡으시기도 하고, 자녀들도 부모님과 연락이 안 되면 한의원에 계시는지, 요즘 크게 불편한 곳은 없으신지 전화해 묻습니다. 딸, 아들, 사위 가족분 모두의 주치의가 되기도 하지만, 가끔은 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상담자가 되기도 합니다. 대학 입학 수능 시험을 치르고, 입학 전까지 한의원 카운터를 도우며 아르바이트하고 있는 둘째가 어느 날, “엄마! 환자분들이 엄마를 바라보는 눈에 하트가 뿅 뿅 이야.”라며 부럽다는 듯 말합니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거라, “단골로 오시는 환자분들은 아무래도 그렇겠지? 엄마, 밖에서는 이정도야~.” 장난스럽게 대꾸해 주었지만, 자연스럽게 입꼬리가 올라가고 가슴이 활짝 펴집니다. 


상무지구에 버무려져 살아남기 12년째. 이제는 ‘To be or not to be‘ 보다는 코로나로 변화하는 상황에 맞는 ’How to be’ 가능성의 문을 활짝 열어 봅니다. 이 글의 2탄은 아마도 '코로나에서 살아남기'가 되겠지요?


여러분도 자신의 삶에서 스스로 만들어본 여러분만의 살아남기 전략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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