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 헷갈리면 판 꼬인다

계약서 조항 해석의 기본은

by 지세훈 변호사

오늘도 졸린 눈을 비비며 매치-3 게임을 한다. 화면 가득 펼쳐진 보석들을 보며 손가락을 움직인다. 같은 색 세 개만 맞추면 되는데, 사람의 눈은 쉽게 착각한다. 분명 파란색이라 생각했는데 초록색을 건드리기도 하고, 초록이라고 믿고 옮겼는데 손가락이 노란색을 향할 때도 있다. 그 순간 판이 꼬인다. 맞출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기회만 허비한다. 나는 계약서를 볼 때도 똑같은 감각을 떠올린다. 조항은 한 줄 문장으로 단순해 보이지만, 목적없이 멍하니 읽으면 헷갈릴 때가 많다. 단어 하나, 조사 하나, 문장부호 하나가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계약서를 해석하는 일은 보석 색깔을 제대로 구분하는 일과 같다. 착각하는 순간, 사건은 꼬이고 분쟁은 시작된다.


계약서를 두고 분쟁이 벌어지는 이유는 단순하다. 당사자들은 각자 자신에게 유리한 색깔로 보석을 본다. 같은 문장을 읽고도 전혀 다른 의미를 주장한다. 한쪽은 “이 조항은 의무를 강제하는 문구다”라 하고, 다른 쪽은 “선택적 권한을 의미할 뿐이다”라고 맞선다. 재판부는 결국 그 문장을 펼쳐놓고 해석해야 한다. 그때 중요한 기준은 ‘문언 자체의 의미’, 그리고 ‘계약 전체의 맥락’이다. 법원은 늘 이렇게 말한다. 계약의 해석은 당사자가 사용한 문언의 통상적 의미에 충실해야 하고, 문언만으로 의미가 분명하지 않을 때는 계약 체결의 경위, 목적, 거래 관행 등을 고려해야 한다. 결국 색깔을 구분하는 기준은 사전에 정해져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얼마나 냉정하게 적용할 수 있느냐다.


나는 상담 자리에서 자주 마주한다. 의뢰인은 계약서 조항을 펼쳐 보이며 말한다. “변호사님, 이거 보세요. 여기에 이렇게 적혀 있잖아요.” 그러나 내가 읽어보면 다른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많다. 마치 초록이라고 생각해서 건드렸던 보석이 파란빛을 띠는 것처럼, 조항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내가 “이 조항은 그렇게 단정하기 어렵습니다”라고 말하면, 의뢰인의 표정은 어두워진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계약서 조항은 언제나 양면성을 가진다. 한쪽에서 보면 득이 되는 것 같지만, 반대쪽에서 보면 위험을 안고 있다. 중요한 건 헷갈리지 않는 눈을 기르는 것이다.


실제 사건을 다루어 보면 조항 해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개연성”이다. 문구가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가 당사자의 거래 관계 속에서 개연성이 있는가, 전체 계약 구조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가가 판단 기준이 된다. 예를 들어, “을은 계약 체결일로부터 3개월 후 잔금 전액을 지급한다”라는 문장이 있다고 하자. 여기서 누군가는 3개월이 되는 날 잔금 지급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누군가는 3개월 후 다시 잔금지급일을 정해야 한다고 맞선다. 같은 문장인데도 결과는 천양지차다. 결국 재판부는 계약의 목적, 거래 관행, 다른 조항들과의 연계를 보며 “색깔”을 정한다. 게임에서 색을 혼동하면 판이 꼬이듯, 계약서 해석에서도 착각하면 분쟁은 더욱 깊어진다.


예를 하나 더 들어 보자. 한 기업이 공급계약을 맺으며 “을은 공급가액을 납품 완료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지급한다”라는 문장을 넣었다. 납품 완료일의 기준을 두고 다툼이 생긴다. 갑은 “검수를 완료한 날이 납품 완료일이다”라고 주장했고, 을은 “공급자가 물건을 반입한 날이다”라고 맞선다. 결국 양측은 같은 조항을 두고 몇 억 원대의 소송을 벌인다. 단어 하나, 기준 시점 하나가 수억 원을 가른다. 이러한 사건에서 법원은 아마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검수 완료’를 기준으로 볼 것이다. 그 이유는 계약 전체 구조 속에서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당사자들은 각각 자기에게 유리한 색으로 보석을 보겠지만, 법원은 객관적인 빛으로 색을 판별한 셈이다.


계약서 조항의 해석이 어려운 이유는, 언어가 본래 가진 모호성 때문이다. 같은 말을 해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뉘앙스가 다르다. 판은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세밀한 구분이 필요하다. 계약서도 그렇다. “할 수 있다”라는 문구가 허용을 의미할 때도 있고, 의무를 완화한 경우일 때도 있다. “해야 한다”라는 문구가 절대적 강제를 의미할 수도 있지만, 특정 상황에서는 단순한 당위 표현에 불과할 수도 있다. 결국 법원은 언어의 색깔을 판별해야 하고, 변호사는 그 색깔을 미리 가려내어 분쟁을 막아야 한다.


내가 서면을 쓸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도 바로 이 점이다. 계약서를 해석하며 억지로 내 의뢰인에게 유리한 색만 강조하다 보면, 재판부는 곧장 눈치를 챈다. 판은 꼬인다. 오히려 객관적으로 색깔을 정확히 구분해 보여줄 때, 재판부는 신뢰한다. 그래서 나는 색이 모호한 보석들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서면을 구성한다. “이 조항은 이렇게도 보이지만, 계약 전체와 거래 관행을 종합하면 결국 이 색깔에 가깝습니다.” 이렇게 설명해야 설득력이 생긴다. 억지로 파랑을 초록이라고 우기면 아무도 믿지 않는다. 판은 움직이지 않는다.


계약서를 검토하면서 종종 드는 생각이 있다. 사람들은 왜 조항 하나를 두고도 서로 전혀 다른 색을 본다고 믿을까. 그것은 이해관계 때문이다. 매치-3에서도 플레이어는 점수를 높이려는 욕심 때문에 눈에 띄는 조합만 보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더 큰 콤보는 보이지 않는 구석에 숨어 있다. 계약서 해석도 같다. 자신에게 유리한 해석만 보려는 순간, 더 큰 그림은 사라진다. 변호사의 역할은 바로 그 보이지 않는 조합을 찾아내는 일이다. 판을 전체적으로 보고, 어떤 줄이 가장 자연스럽게 이어지는지를 말해주는 일이다.


결국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계약서 조항 해석의 기본은 보석 색깔을 구분하는 일이다. 멀리서 보면 다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면 전혀 다르다. 그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면 판은 꼬인다. 소송은 길어진다. 결국 큰 손해로 돌아온다. 그래서 계약서 검토에 비용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작은 돈을 아끼려다 큰 돈을 잃는 순간은 언제나 색깔을 헷갈린 자리에서 시작된다.


오늘도 나는 계약서를 펼친다. 문장을 읽고, 단어를 뜯어보고, 조사와 문장부호를 하나하나 살핀다. 매치-3의 보석처럼, 이 조항이 어떤 색깔인지 구분하려 애쓴다. 틀린 색을 같은 줄에 끼워 넣으면 판은 꼬이고, 결국 게임은 끝난다. 계약서도 다르지 않다. 조항의 색을 제대로 구분할 때만 사건은 움직이고, 분쟁은 줄어든다. 보석 세 개를 맞추듯, 계약서 조항도 올바르게 해석해야 한다. 그것이 기본이다. 그리고 그 기본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분쟁을 막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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