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하게 보이는 규칙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들
매치-3 게임의 룰은 너무나도 간단하다. 같은 색 보석 세 개를 맞추면 터진다. 하지만 실제 게임 속에서는 그 룰만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움직임이 계속 등장한다. 보석 하나를 건드렸을 뿐인데 예측하지 못한 연쇄가 일어나기도 하고, 반대로 아무리 그럴듯해 보이는 수라도 전혀 이어지지 않는 순간도 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인데도 왜 그렇게 움직였는지 설명할 수 없는 장면들. 정해진 규칙이 분명 존재함에도, 그 규칙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흐름이 판 속에 있다. 게임을 오래 하면 이 ‘설명되지 않는 순간’을 읽는 감각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한다.
소송을 진행하면도 비슷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민법에서 손해배상의 원칙을 규정하는 조항들은 사실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다. 통상손해, 특별손해, 예견가능성, 인과관계. 글자만 놓고 보면 그저 네모 반듯한 규칙처럼 보이고, 마치 “같은 색 세 개를 맞추면 보석이 터진다”는 설명처럼 단순하고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실제 소송에서는 이 조항만으로 사건의 흐름을 예측하기가 참 어렵다. 분명 요건에 맞춰 주장했고, 이론적으로는 흠잡을 구석 없이 정리해 두었는데, 막상 재판이 흘러가는 과정에서는 또 다른 변수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상대의 진술 태도, 제출 시점의 미묘한 차이, 증거 하나가 장면을 통째로 바꿔버리는 흐름. 규칙은 단순하지만, 판은 단순하지 않다.
특히 시간이라는 요소는 게임보다 훨씬 잔혹하게 작용한다. 게임에서는 몇 턴 뒤의 움직임만 예측하면 되지만, 소송은 몇 달, 길게는 몇 년 뒤에 판이 뒤집힌다. 오늘 제출한 서면이 한참 뒤에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될 때가 있다. 처음에는 결정적인 문장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다음 기일에서는 그저 수많은 문장 중 하나로 희미해지기도 한다. 상대방이 한 번 새로운 자료를 들고 나오면, 처음에는 분명했던 사실관계가 전혀 다른 색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 순간부터는 모든 주장을 다시 짚어야 한다. 분명 다 정리하고 넘어간 사실관계인데 인사이동으로 인해 변경된 재판부의 질문 한 줄로 기존 진술의 의미가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게임에서는 보기 힘든, ‘시간이 만든 뒤틀림’이 소송에는 존재한다.
그리고 그 변화는 반드시 논리적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사람의 말에는 감정이 실리기 마련이고, 사건 당사자에게 시간이 흐르면 감정이 달라진다. 기록이 쌓이고, 기억이 흔들리고, 새롭게 떠올린 사실이 기존의 진술과 미묘하게 충돌한다. 어떤 진술은 시간이 지나면 무게를 잃고, 어떤 진술은 반대로 시간이 지나야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 마치 처음에는 아무 의미 없어 보였던 구석의 보석 하나가, 몇 턴 뒤 거대한 연쇄로 이어지는 것처럼. 그때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음에도, 지금의 전체 판 속에서는 다른 해석으로 흘러가는 순간이 있다. 소송이라는 것이 결국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예측을 포기할 수는 없다. 변호사가 해야 할 일은 ‘설명할 수 없는 흐름’을 억지로 설명하는 게 아니라, 그 흐름이 어떻게 흘러갈지 가능한 한 넓은 시야로 미리 대비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 대비는 오로지 규칙만 외운 플레이로는 불가능하다. 매치-3 게임에서 규칙만 알면 쉽게 깨질 것 같지만, 막상 손에 쥐면 전혀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다. 그래서 오래 하는 사람일수록 규칙보다 흐름을 먼저 본다. 어떤 패턴이 반복되는지, 어떤 보석이 언제 살아나는지, 어디가 병목인지. 법정도 같다. 민법은 분명 명확하게 규정을 해 놓았지만, 그 조항들은 어디까지나 ‘기초 규칙’일 뿐이고, 실제 승부는 그 규칙 사이의 틈, 예외, 맥락, 정황, 그리고 시간의 흐름이 만든 패턴 속에서 갈라진다.
무엇보다 사건이 진행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기록 자체보다 ‘기록이 놓인 자리’가 중요해진다. 게임판에서 특정 보석의 위치가 모든 것을 결정하듯, 소송에서도 증거가 어느 시점에 제출되었는지, 어떤 문장 옆에 붙어 있는지, 어떤 질문 직후에 설명되었는지가 흐름을 완전히 바꿔버린다. 같은 진술이라도 자리만 달라지면 의미는 전혀 바뀐다. 마치 같은 보석 세 개라도 위치에 따라 연쇄가 일어날 수도, 판을 망칠 수도 있는 것처럼. 그래서 전략이라는 것은 결국 배치의 문제다. 단어 하나를 어디에 놓아야 하는지, 어떤 자료를 무엇 다음에 설명해야 하는지, 어떻게 누적시켜야 하는지. 게임이든 소송이든 ‘배치’가 곧 ‘결과’를 만든다.
그리고 또 하나. 게임에서는 아무리 잘해도 ‘운’이라는 요소가 분명히 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보석이 연달아 터지면서 판이 갑자기 열리기도 하고, 반대로 완벽한 수라고 생각했는데 끝내 꽉 막혀버리기도 한다. 소송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사건에서는 재판부가 핵심 쟁점을 날카롭게 잡아주어 흐름이 매끄럽게 이어지고, 어떤 사건에서는 같은 쟁점이 몇 달째 제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동일한 사실관계임에도 전혀 다른 결론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것을 단순히 운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모든 것을 내 의지로 통제할 수 없다는 점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결국 필요한 건, 운이 오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운이 왔을 때 그 턴을 제대로 써먹을 준비다.
결국 이 모든 이야기는 하나의 사실로 귀결된다. 규칙만으로는 승부가 나지 않는다. 흐름을 읽는 사람만이 끝까지 간다. 매치-3에서 규칙만 믿고 플레이하면 어느 순간 반드시 막힌다. 소송도 같다. 글자만 붙잡고 있으면 결국 큰 흐름을 놓치게 되고, 판 전체에서 벌어지는 움직임을 이해하려면, 기록 밖에 있는 공기와 시간, 맥락을 감각적으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이건 법조문 속에는 적혀 있지 않지만, 소송의 현실 속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민법책을 다시 펼쳐놓고 그 위에 흐름을 덧그린다. 민법의 조항들을 가장 앞에 두되, 그 단순함에 갇히지 않으려 노력한다. 게임처럼 예기치 않은 움직임이 튀어나오는 순간을 가정해 보고, 예상 밖의 연쇄가 일어날 가능성을 머릿속에서 수십 번 돌려본다. 그리고 기록의 흐름을 다시 읽어본다. 그 흐름 속에서 조문이 설명하지 못하는 순간들을 잡아내기 위해. 결국 승부는 그 지점에서 갈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