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살아야 돼요 (2)

-나는 활보다

by 오드리

"너무 세게 헤집지 말고 살살 긁어내세요."

스잔나의 지시는 짧고 명확했다. 오드리는 자신의 오른쪽 검지 손가락에 온신경을 집중했다. 말로만 듣던 '수지 배변'을 실행하는 중이었다. 찰스는 스스로 배변을 못하기 때문에 그 방법을 써야 했다. 오드리는 장갑을 낀 손에 윤활제를 바를 때부터 바짝 긴장했다. 신기한 것은 일회용 비닐장갑을 통해 전해지는 감각이 맨손보다 더 생생하고 강렬하다는 점이었다. 검지를 항문에 찔러 넣을 때의 조임과 달리 변이 저장된 직장은 신축성 있는 고무 주머니 같았다. 그 안에 있는 변을 검지로 하나씩 몰아서 항문으로 밀어내야 했다. 그 과정에서 항문에 상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힘 조절이 중요하다. 오드리는 처음이라 의욕이 앞섰는데 그걸 간파한 스잔나가 거칠게 하지 말라고 바로 지적을 한 것이었다.


대변은 그렇게 하루에 한 번 해결하면 끝이지만 소변은 두 시간에 한 번씩 배출해야 했다. 미리 찰스의 음경에 비닐봉지를 묶어 놓고 아랫배를 톡톡 두드리거나 가볍게 마사지하여 방광을 자극한 다음 반사적으로 나오는 소변을 받아냈다. 방광을 자극하는 그 과정은 생각보다 섬세하고 정확한 손길을 요했다. 소변이 나올 때까지 몇 분 혹은 몇십 분 동안 같은 동작을 반복해야 하는 지루함이 힘겨웠다. 축 늘어져 있던 음경에서 소변이 쫄쫄 흘러나오면 오드리는 등산하다 옹달샘을 만난 듯 반가웠다. 다음 문제는 방광을 다 비웠는지 알 수 없다는 점에 있었다. 잔뇨가 남아 있으면 요로 감염 위험이 있기 때문에 또다시 그 과정을 반복해 최후의 한 방울까지 짜내야 했다. 오드리 근무 시간 동안 최소 세 번은 해야 돼서 어찌 보면 대변보다 소변이 더 골치 아팠다.


항문과 요도는 한번 염증이 생기면 찰스 같은 경우 치료도 어렵고 오래가기 때문에 매 순간 긴장을 풀 수 없었다. 그런 압박감 때문인지 남의 남자 아랫도리를 그의 부인과 코앞에서 들여다보는 데서 오는 민망함이나 심리적 거부감 같은 건 애초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두 여자가 자신의 항문과 음경에 골몰하는 동안 찰스는 눈을 감고 있었다. 딸한테도 꺼려했던 중요부위를 처음 보는 여자한테 까보여야 하는 그 심정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스잔나는 원래 간호사인 데다 이십 년 간병 경력도 있기 때문에 매사에 노련하고 능숙했다. 변을 보고 나면 소독약 묻힌 거즈를 핀셋으로 집어 항문 주위를 세심하게 닦아준다. 그때 쓰기 좋게 거즈를 접는 방식까지 스잔나는 자기 방식대로 할 것을 요구했다. 왼쪽 먼저 접든 오른쪽 먼저 접든 모양이 좀 흐트러지든 별상관없을 것 같은데 스잔나는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런 잔소리를 지속적으로 듣다 보면 오드리가 받들어 모셔야 하는 이용인은 찰스가 아니라 항문인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식사와 배변 외에 중요한 업무는 욕창 예방을 위해 두 시간마다 찰스의 체위를 바꿔주는 일이었다. 그것도 베개의 높이, 팔의 위치, 다리의 각도 등 정해진 매뉴얼이 있어서 신경을 써야 했다. 찰스가 자고 있을 때는 침대 옆 의자에 앉아 대기했다. 찰스는 편하게 폰도 보고 책도 가져와서 읽으라고 했다. 찰스가 깨어있을 때는 얘기를 많이 주고받았다. 말벗도 활보의 중요한 업무다. 소설 쓰는 오드리는 다양한 인간군상에 대한 호기심을 기본으로 탑재하고 있었다. 형식적으로 응대하면 오드리 자신이 힘들고 지루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진심으로 상대에 대한 관심을 갖고 접근했다.

찰스는 오랜 와상 생활로 세상과 단절된 상태였으므로 더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명랑하되 지나친 쾌활함은 자제하고, 환자에게 거슬릴 만한 주제는 알아서 거르고, 무엇보다 연민이나 동정의 시선을 보내지 않도록 주의했다. 찰스가 예전에 팝송이나 영화를 좋아했다는 정보를 알아낸 뒤로는 주로 그런 주제로 얘기를 나누었다. 스잔나와는 일상적인 대화만 몇 마디 하다가 오드리와 '비틀스'나 '로마의 휴일'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찰스는 잠깐이지만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안나 때처럼 이용인 스스로 입을 열게 하고 그걸 원 없이 들어주는 것 그것이 오드리의 남다른 능력이었다.


오드리가 오전 열 시부터 오후 여섯 시까지 찰스를 돌보는 동안 스잔나는 운동이든 취미든 자신의 시간을 가질 예정이었다. 업무 인수인계는 일주일 정도로 잡았다. 그랬는데 이주가 지나고 삼주에서 한 달 차로 넘어가는 데도 스잔나는 외출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저 거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거나 뜨개질을 하는 게 다였다. 그런데 딱히 드라마에 빠진 것 같지도 않고 뜨개질 모양도 진전이 없었다. 그건 그냥 거실에 있기 위한 구실일 뿐 안방과 주방을 오가는 오드리를 감시하는 게 스잔나의 새로운 업무 같았다.

스잔나도 처음에는 오드리한테 호의적이었다. 자기가 몇 살 더 많으니까 언니처럼 편하게 대하라고도 했고, 자기 대신 일을 시켜 미안하다고도 했고, 평생 이 사람 수발들려고 간호를 배운 것 같다는 식의 농담도 했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스잔나의 표정이 차가워져 갔다. 오드리는 자신이 빨리 일에 적응하지 못해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업무와 상관없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


그 계기 중 하나가 커피 사건이다. 찰스는 오전에 마시는 커피 한잔이 유일한 낙이자 사치였다. 스잔나도 커피를 좋아해서 최고급 커피머신까지 구비해 놓고 커피를 즐겼다. 그런 찰스가 앞으로는 커피를 마시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스잔나는 이유가 뭐냐고 찰스를 추궁했다. "커피를 마시면 소변을 더 자주 봐야 하잖아. 옆에 있는 사람들 고생시키면서까지 마실 필요는 없다고 봐." 스잔나는 버럭 화를 냈다. "그냥 마셔. 뭐 얼마나 고생한다고 그래." 그러면서 오드리를 쓱 쳐다보는 게 아닌가.

별생각 없던 오드리도 이게 뭔가 오해의 순간임을 직감했다. 오드리가 온 지 며칠 만에 그런 말이 나왔으니 그럴 법도 했다. 그전에도 찰스가 여러 번 그런 의사를 내비쳤다는 건 그 순간 스잔나의 기억에서 삭제되었던 것이다.


이제 세 사람 사이의 공기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안방에 찰스와 둘만 있을 때도 오드리는 스잔나를 신경 써야 했다. 한 번은 찰스와 웃으며 얘기를 나누다가 주방에 볼일이 있어 밖으로 나왔는데 거실 소파에 앉아 안방을 노려보는 스잔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오드리가 다시 방으로 들어갈 때까지 스잔나는 내연녀 취급하는 듯한 그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스잔나의 무례함은 점점 노골적으로 변해갔다. 아침에 출근해 오드리가 인사를 하는데도 문만 열어주고 바로 등을 돌렸다. 식판에 음식을 담을 때도 많이 담았네 적게 담았네 트집을 잡았고, 물을 준비할 때도 물이 차네 뜨겁네 간섭을 하였다. 설거지하는 방식이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수세미를 낚아채며 "도대체 머리가 얼마나 나쁜 거야? 이 정도 말했으면 알아들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하며 인신공격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스잔나는 효과가 없어 이미 자신도 포기한 찰스의 손가락 마사지를 지시하며 폰이나 보고 있으라고 사람 쓰는 거 아니잖아요, 했다.


그런 어느 날 드디어 찰스가 입을 열었다.

"오드리님 미안합니다. 다른 이용인을 찾아보세요. 나는 아직 더 살아야 돼요. 막내가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갔어요. 내가 살아있어야 매달 장해연금이 나와요. 내 목숨은 내 것이 아니에요. 집사람 손에 달려있어요. 저는 오드리님이 참 편하고 좋지만 집사람이 불편해하면 더는 함께 할 수 없어요. 정말 미안합니다......."

모처럼 스잔나가 은행 업무로 잠깐 외출한 날이었다.

"나는 집사람이 낮에 외출도 하고 취미생활도 했으면 했어요. 지난 이십 년간 갇혀 살아온 사람한테는 그게 쉽지 않다는 것도 모르고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집에서라도 오드리님이랑 친하게 지냈으면 했어요. 서로 친구가 되어 같이 밥도 먹고 수다도 떨면서 힘이 되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찰스는 숨을 몰아쉬었다. 한 번에 그렇게 말을 많이 한 적이 거의 없었다.

"집사람이 오드리님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할 줄은 몰랐어요. 그게 믿어지지가 않아요. 원래 저런 사람이 아니거든요. 얼마나 착하고 다정한 사람인데요. 나 때문에 그렇게 변한 거 같아요. 미안합니다......."


결국 오드리의 싸한 예감이 맞았다. 스잔나는 남편이 이십 년간 간병한 자기는 제쳐두고 활보와 웃고 떠드는 꼴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오드리가 찰스 옆에 벗고 누워있는 것보다 명랑한 대화가 그녀한테는 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배신이었던 것이다. 딸들의 의견에 따르기는 했어도 스잔나는 처음부터 다른 여자 손에 남편을 맡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의 몸이 부서져 가루가 되는 한이 있어도 활보의 도움은 받기 싫었던 것이다. 그게 집착이든 강박이든 사랑이든 이름은 중요하지 않았다. 찰스는 그런 아내의 마음을 읽고 현명한 결론을 내려준 것이다.


오드리는 다음날로 그만두었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냐고, 활보 잘못도 아닌데 지들 부부 문제로 자르는 게 말이 되냐고, 펄쩍 뛰던 담당자는 똥 밟은 셈 치라고 오드리를 위로했다. 똥 얘기를 듣자 오드리는 웃음이 났다. 그놈의 똥만 잘 해결하면 될 줄 알았는데. 스잔나도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며 울더라고 했다. 남자 간병인을 구하기로 했대, 그 말을 끝으로 담당자는 전화를 끊었다. 남자가 들어가면 아무 문제가 없을까. 오드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떤 누구도 연리지처럼 엮여 있는 저 부부 사이에서 무사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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