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2년차에 경험한 일곱번째 이야기
‘행실이 나쁜 남자를 욕하여 이르는 말. 잡스럽고 자질구레한 것을 이르는 말’
평생 처음으로 ‘잡놈’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봤다. 왜 그는 내 머리속에 ‘잡놈’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을까?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24년 3월 중순경이었다. 멘토인 박선생님 소개로 만나게 되었다. 그의 얼굴은 퉁퉁 부어서, 마치 눈을 감고 있는 듯했다. 앞니도 여러 개 빠져 있어서, 담배 연기가 술술 새어 나왔다. 6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였다. 그다지 좋은 인상은 아니었지만, 억센 부산 사투리가 섞여 나오는 그의 말투는 수더분해 보였다. 연신 담배를 피우면서 자기를 소개하는 얼굴에는, 잔잔한 웃음기가 떠나지 않았다.
“처음에 집이 있는 부산에서 비닐하우스 짓는 일을 시작했지요. 제법 일감이 많았는데, 농촌 면적이 줄어들면서 일이 많이 줄었어요. 지금은 횡성군뿐 아니라 강릉까지 주로 강원도에서 일을 많이 하고 있지요.”
술 담배에 쩌들어 있는 듯한 그의 외모와 다르게, 시원시원한 말투로 대화를 했다. 불량스러운 첫인상이 될 뻔했는데, 이야기를 하면서 좀 나아졌다. 하지만 그와의 만남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누군가 삶의 모습이 얼굴에 그대로 투영된다고 이야기했던 말이 생각나는 만남의 연속이었다.
“어제 술을 많이 마셔서, 오늘 오후에나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물 탱크 사러 갔다 올께요.
이렇게 말하고는 사라지기 일쑤였다. 다음 날도 나타나지 않아 전화를 걸면, 신호만 가고 받지 않는 일도 많았다. 작업하러 온다고 해놓고 오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나중에 와서는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는 둥, 다른 곳에 급한 일이 생겨서 그랬다는 둥 횡설수설했다. 대부분 거짓말인 것으로 나타난 변명들이었다.
자연스럽게 하우스 짓는 작업은 지연되었고, 때로는 부실하게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곤 했다. 하우스 두 동이니까 2주면 충분히 지을 수 있다던 하우스는, 한달이 지나도 완공이 되지 않았다. 육묘를 하고 있던 토마토의 어린 모가 다 자라서, 빨리 정식작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이야기한 지도 여러 날 지났다. 하우스 설치가 안되어 있어서, 정식작업을 진행할 수가 없었다. 겨우 겨우 토마토를 심을 수 있었는데, 이미 모종이 너무 자라서 노화모가 된 뒤였다. 그렇게 귀농한 뒤 내 밭에서 진행한 첫번째 농사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지금 하우스 짓고 있는 업자를 소개시켜 주세요. 나도 50평짜리 비닐하우스 두 동을 지어야 하거든요.”
나와 밭을 접하고 있던 이웃집 함선생님이 부탁을 해왔다.
“만나게 해드릴 수는 있는데, 이 업자를 추천하지는 않아요. 값싸게 지어준다는 장점이 있지만, 성실하지는 않아요. 직접 만나 보시고 계약할 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나는 그를 신뢰하기 어려웠기에, 이웃집에 추천하기 어려웠다. 사실 함선생님도 까다로운 편이어서, 그와 작업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생길 가능성이 농후해 보였다. 그러나 그를 만나본 함선생님은 계약을 진행하였다. 제작 비용이 낮을 뿐 아니라, 이것 저것 함선생님이 부탁한 것들을 추가로 해주기로 한 모양이었다.
나의 비닐하우스 구축 작업이 지연되는 동안, 이웃집 함선생님의 하우스 작업도 역시 지지부진했다. 비닐하우스 철봉으로 뼈대를 세우는 작업을 겨우 마무리했지만, 비닐을 씌우는 작업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화가 많이 난 함선생님이 항의를 하고 난 뒤에야, 겨우 비닐이 씌워졌다.
문제는 그 다음 작업에서 발생하였다. 하우스 안에 토마토의 지주줄을 걸기 위한 중방을 설치해야 하는데, 그것도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에 밭에 도착하니까, 어디선가 고성이 오가는 소리가 들렸다.
“작물을 재배하는 데는 문제없도록 지어준다고 해놓고는 왜 작업을 안하는 겁니까? 이렇게 작업하면 돈을 줄 수가 없어요.”
“애초에 한두달 뒤에 완공이 되어도 된다고 해서 시작했는데, 왜 이렇게 서두르는 거예요?”
함선생님과 그의 목소리였다. 작업진척 속도가 너무 느려서 화가 치밀은 함선생님이 폭발하고 만 것이다. 그도 변명은커녕 너무 재촉만 한다고 화를 냈다. 두 사람사이의 싸움은 그 뒤로도 몇 차례 이어졌다. 이렇게 싸움이 있은 뒤부터 그는 함선생님의 작업을 전혀 하지 않았다. 기존에 가져다 놓았던 자재들도 모두 거둬가 버렸다. 물론 함선생님도 작업 진행속도에 맞춰 주기로 했던 돈을 지불하지 않았다.
“작업하기로 했다가 못 오는 일이 생기면 미리 전화를 해주세요. 내가 기다리는 일이 없도록.”
“이제 중요한 작업은 거의 끝났으니까, 빨리 마무리해주세요. 구축비용을 바로 드릴 수 있으니까요.”
한달이 지나도 완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토마토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온도나 습도에 민감한 시기였다. 하우스 측창(側窓)이나 천정창(天頂窓)의 자동 개폐시스템이나 물과 액비를 관주할 수 있는 시스템 등이 여전히 미흡한 상태였다. 개폐시스템이 불안해서 작동이 멈추는 경우가 많았다. 5톤짜리 물탱크에 물을 받아서 관주를 해주어야 하는데, 물탱크와 주관의 연결부위에서 물이 줄줄 새어 나왔다. 토마토 재배에 집중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때로는 좋은 말로 기분을 좋게 해주기도 하고, 때로는 화를 내면서 그가 성실하게 마무리 공사를 하도록 유도하였다.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고, 작업도 열심히 하지 않는 그였기에,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매일 매일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참았다. 그를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때로는 그를 미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조금씩 작업이 진행되었다. 토마토가 자라고 있는 상태에서 작업이 이루어지면서, 십 수그루의 토마토 나무가 잘라져 나가기도 했다. 그가 데리고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부주의하게 작업하면서 생긴 일이다. 그렇게 잘려져 나간 토마토는 크지도 않을 뿐 아니라 죽기까지 했다.
나는 그에게 불평을 하기는 했지만, 크게 나무라지 않았다. 빨리 작업을 끝내고 더 이상 그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 달여가 지났을 때야 겨우 하우스 작업이 마무리되었다. 아니 2~3가지의 미진한 부분이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는 하우스가 완공되었다. 나는 하우스가 완공된 것보다는 더 이상 그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더 기뻤다.
내 평생 처음으로 ‘잡놈’이라고 생각한 그였다. 작업이 끝난 뒤에, 그런 종류의 사람과 어떻게 관계를 만들어갈 것인지에 대한 관점에서 고민을 해보았다. 나는 참고 참고 또 참는 방식으로 그와의 관계를 이어갔다. 반면, 이웃집 함선생님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순간에 한바탕 싸우고는 그와의 관계를 끊어버렸다.
관계 형성을 위한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람마다 다른 기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나 함선생님은 그 기질에 맞게 대응한 것이다. 함선생님은 그가 잘못한 것을 지적하면서, 그에게 화풀이를 하고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었다. 나는 화를 꾹꾹 누르면서 그와의 관계를 이어 나갔다. 나의 스트레스 강도는 함선생님에 비해 컸을 것이다. 그만큼 정신건강에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작업 결과도 달랐다. 함선생님 하우스는 여전히 중간에 작업이 중단된 채로 놓여 있다. 반면 나는 하우스를 거의 완공할 수 있었다. 함선생님보다는 내가 실용적인 결과를 얻었다고 볼 수 있다.
평생 처음 만나본 ‘잡놈’에 대한 경험도 색달랐지만, 함선생님과 나의 대응 방식의 차이가 가져온 결과도 재미있었다. 대처 방식의 차이로, 서로 다른 인생 스토리를 쓰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