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겨운 글
“여기에서 죽고 싶어. 난 이렇게 네 가슴에 안겨서 끝내고 싶어.”
우연히 펼쳐든 책에서 무척이나 공감이 되는 문장을 발견했습니다. 내 인생 마지막 숨결을 내뱉는 순간을 정할 수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머릿속이 새하얘질 때까지 사랑을 나누고, 입맞춤을 하고, 힘껏 껴안고, 머리카락, 얼굴, 눈, 코, 입, 목, 어깨, 등, 팔, 가슴, 허리, 다리, 열 손가락과 열 발가락 모두를 어루만지고 쓰다듬다 땅거미처럼 어스름히 몰려오는 잠을 이기지 못해 눈을 감는 그 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그거 알아?”
“사람은 원래 둥근 모양이었대. 머리가 두 개, 손과 발이 네 개였대. 한 몸에 두 사람이 함께였대. 한 몸으로 이어진 두 사람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신들이 질투한 나머지 둘을 하나로 갈라놓았대.”
“그렇게 해서 사람은 본래의 모습을 잃고 둘로 갈라져 옛 자신의 모습을 그리워하며 자신의 반 쪽을 찾는 운명이 되었대.”
“내가 왜 이 말을 하는지 너는 이해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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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면 만사가 너무나도 간단해질 것이라고 누군가가 말하더군요.
맞아요.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게 되는 행위에 모든 해답이 있다면 얼마나 인생이 간단명료할까요? 그저 모두가 온 힘을 다해 사랑을 주고, 받으면 되는 게 아닐까요?
무의식 중에도 우리의 몸은 안간힘을 다해 산소를 들이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뱉어요. 지극히도 당연한 이 행위를 하기 전 작전을 짜고, 계획을 설립하고, 맞는 담당자를 배정하고, 일어나는 시행착오들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저 살기 위해서. 살고 싶으니까. 그냥 그렇게 하는 거잖아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한껏 연기하는 삶이었습니다. 행복하고 싶어 한껏 이기적인 삶이었습니다. 살고 싶어서 한껏 사랑해보려 했습니다. 그렇게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다 결국 행복은 잠깐, 고통은 영원하다는 진실을 마주합니다.
과연 저의 삶은 살아갈 가치가 있는 삶이었을까요? 걸을 의미가 있는 길이었을까요. 한 생명으로서 이 행성의 산소를 소비할 가치가 있었을까요? 콱 죽어버리고 싶지만 그럴 용기가 없는 저에게 이 모든 말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입니다.
그저 살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저 행복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저 한 사람으로서 온전히, 오롯이 존재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생명을 주신 분들께 죽음을 말하는 아들은 어떤 존재로서 다가왔을까요. 새벽의 보이스톡. 그것이 부모를 죽이는 짓인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어린아이처럼 전화기를 붙잡고 죽고 싶다고, 살려달라고 빌었습니다. 죽고 싶다면서 살려달라니요. 이 얼마나 어이없는 소리인지.
이젠 억지로 웃어보려 해도 웃음이 나오지 않습니다.
친구들에게도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결국 전 여러분을 단 한 번도 진심으로 위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모든 게 나, 나, 나였습니다. 이토록 이기적인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게, 그리고 하필이면 그런 사람이 나라는 게 미칠 듯이 괴롭고 고통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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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 보이는 카페 2층 자리에 저는 지금 앉아있습니다. 흐르는 강을 보면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든다는데 그런 생각마저 들지 않습니다.
점심으로는 우동을 먹었습니다. 아무것도 먹지 않아 너무도 배고픈 상태에서 먹어서 그런지 접시에 코를 박고 제가 그렇게도 싫어하는 입소리마저 내며 정신없이 먹었습니다. 순간 기억이 끊긴 것만 같은 그런 맛이었습니다. 정말로 맛있었어요. 먹고 난 뒤 몰려오는 허기짐은 무엇일까요? 배는 분명 채웠는데 왜 눈물이 나는 걸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질문들. 자려고 가만히 누워있으면 별안간 심장이 뚝, 하고 멈춰버릴 것 같은 두려움. 이따금 건네어져 오는 누군가의 안부 연락. 혼자 들이키는 술. 타는 듯이 뜨거운 태양. 나무가 자라고 흔들리는 풍경. 그 안에 머무는 개와 고양이와 새들의 소리가 제가 사랑하는 이의 품에 안겨 듣고 싶은 마지막 숨결의 소리입니다. 그 모든 길들 사이로, 우두커니 서있는 저에게, 사랑이 굴러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