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나라의 총성에서 낡은 정의를 봅니다

:석유와 패권, 그 차가운 계산법 뒤에 가려진 것들

by 하루의경제노트

주유소에서 마주한 지구 반대편의 비극

며칠 전, 퇴근길에 습관처럼 주유소에 들렀습니다. 주유기 화면에서 빠르게 올라가는 숫자들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내 통장을 스쳐 지나가는 이 몇 만 원의 기름값이, 지구 반대편 누군가에게는 생사를 가르는 총성이 되어 날아들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뉴스를 통해 들려온 2026년의 베네수엘라 소식은 참으로 무거웠습니다. 미국의 군사 작전, 그리고 정권 교체. 화면 속 앵커는 ‘민주주의 회복’과 ‘안보’를 이야기했지만, 그 건조한 단어들 사이로 저는 왠지 모를 서늘함을 느꼈습니다. 오늘은 그 서늘함의 정체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정의라는 이름의 ‘이익’


우리는 학교에서 정의(Justice)는 옳고 그름의 문제라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마주한 국제 사회에서 정의는 종종 ‘이익’의 다른 이름처럼 쓰이곤 합니다.


미국과 라틴아메리카의 관계를 되짚어보면, 거기엔 늘 ‘먼로주의’라는 오래된 유령이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1989년 파나마 침공 때도, 그리고 지금의 베네수엘라 사태에서도 명분은 화려했습니다. 마약 척결, 독재 타도, 혹은 자유의 수호.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그 명분의 가장 밑바닥을 들추어보면, 결국 ‘석유’라는 검은 황금과 ‘패권’이라는 놓칠 수 없는 칼자루가 묻혀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의 석유 매장량을 가진 나라입니다. 게다가 리튬과 구리 같은 미래 자원의 보고이기도 하죠. 전문가들은 조심스럽게 추측합니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나쁜 정권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가 앞마당까지 치고 들어오는 상황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미국의 다급한 ‘영토 표시’일지도 모른다고요.


확실한 건 없습니다. 하지만 1989년의 파나마가 운하 통제권과 연결되어 있었듯, 2026년의 베네수엘라 역시 ‘에너지 안보’라는 미국의 생존 본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거대한 체스판 위의 말들


저는 이 거대한 국제 정세의 흐름을 보며 무력감을 느낍니다. 강대국들이 벌이는 이 게임은 마치 거대한 체스판 같습니다. 미국이 말을 옮기면, 중국과 러시아가 대응하고, 그 사이에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줄을 서야 합니다.


어떤 나라는 미국의 편에 서서 실리를 챙기고, 어떤 나라는 주권을 외치며 저항합니다. 대륙은 쪼개지고, 이웃 국가 간의 신뢰는 금이 갑니다. 누군가는 이것을 ‘외교 전략’이라 부르고 ‘국익’이라 칭송하지만, 그 과정에서 부서지는 것은 결국 그 땅에 발붙이고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입니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때로는 진실을 가리기도 합니다. ‘석유 매장량 1위’, ‘군사 개입 성공 확률’, ‘경제적 파급 효과’… 이런 차가운 숫자들 속에 두려움에 떨고 있을 베네수엘라의 한 가족, 저녁 식탁의 평화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얼굴은 지워져 있습니다.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

물론 독재 정권 아래서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외부의 개입이 일말의 희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세상일이라는 게 선과 악으로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회색지대에 놓여 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묻고 싶어집니다.


“누구를 위한 정의인가?”

미국의 국익이 곧 세계의 정의가 될 수 있는지, 석유 패권을 지키기 위한 전쟁이 과연 ‘평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수 있는지 말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당장 우리네 경제와 기름값에 영향을 미치는 이슈이기에 마냥 남의 일처럼 여길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투자 지표나 국제 유가 그래프를 확인하기 이전에, 잠시만 그 이면에 깔린 ‘사람’과 ‘명분’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은 여전히 차갑고 냉혹합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견지해야 할 것은, 강대국의 화려한 명분에 휩쓸리지 않고 그 뒤에 숨겨진 ‘진짜 욕망’을 꿰뚫어 보는 서늘한 이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퇴근길, 여러분의 발걸음은 안녕하신지요. 먼 나라의 소란이 우리의 평범한 하루를 더욱 소중하게 만드는 밤입니다.



작가의 이전글K-패스 모두의 카드 개찰구 앞에서 망설이지 않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