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

by 갈휘연

나의 외조부는 함경도 출신이라고 했다.


일제 당시 일본 건축가 밑에서 건축기술을 배워 건축기술자로 남부럽지 않게 살았었다고 한다.

가정을 이루고 자식들도 있었는데 6.25.가 터지고 남자들을 다 징집해 간다는 소문이 마을에 퍼져서 “잠깐 소란만 잠잠해 질때까지만 남쪽으로 갔다가 오겠다”고 1.4. 후퇴 때 남쪽으로 내려왔다가 영영 다시 올라가지 못했다.


원가족을 버린셈이 되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휴전선이 그어져 영영 돌아갈 수 없다는 걸 깨닭고

어찌저찌 남한여자와 혼인해서 다시 가정을 꾸렸지만

새부인에게 깊은 정을 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는 새부인과 자식들에게 과도하게 엄하고 차가웠다.

남편의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평생을 살았던 나의 외조모는 그 불만이 말투에 늘 들어났다.

뭐든 말을 예쁘게 하는 법이 없었다.

좋은 일도 그녀의 입 밖으로 나가는 문장에서는 세상 비극이 되었다.


엄마는 외조부가 그저 무섭기만 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외조모의 말투를 물려받았다.


결혼은 그녀가 생각할 수 있는 무서운 본가에서의 온전한 탈출의 한 방도였을지 모르지만 그녀가 원하는 안락한 안식처가 되줄 결혼생활을 위해서는 그녀의 말뽄새를 본가에 놓고 왔어야 했다는 걸 깨닭지 못했다.


단어 하나하나에 민감한 나의 부친과 결혼 초부터 문제가 불거졌다. 부부싸움이 정말 하루가 멀다하고 터졌다.

거기에 깐깐한 시어머니 시집살이는 강력한 촉매였다.


따뜻한 공감이나 위로, 애착을 남편과 나눠서 내 편으로 만들어 원팀이 되는 게 더 근본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보다 온갖 이해가 안가는 시집살이로 본인이 피해자라는 생각만 매일 더 강하게 자라났다.


그렇게 아이들을 낳아 본인의 아버지처럼 차갑게 키웠다.

따뜻한 포옹이나 공감이 너무나도 어색한 관계로.


나는 그런 엄마랑 상극이었다.

엄마의 드센고 고집스런 성정과 아빠의 예민함을 물려받은 하이브리드가 나였다.

나는 애정을 오감으로 받아야하는 아이였다.

따뜻한 포옹.

사랑한다는 말.

날 바라보며 행복하게 짓는 미소.


뭐가 결핍이라 문제인지 모르는 상황에 난

불안이 높은 아이로 컸다.

고부갈등이 반 이상을 차지한 이민결정을 하고 캐나다에 와서 사춘기에 제대로 접어든 나는 엄마와 거의 매일 전쟁을 치뤄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많은 내 상처가 된 다툼이 엄마에게도 과연 상처였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걸 염려할 “무엇”이 나에겐 없다.

나는 그저 필사적으로 집을 떠나고 싶었다.

엄마가 없는 집에서 평화롭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학교를 멀리 정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떠났다.

비행기로 6시간 가까이 걸리는 곳으로.

내가 떠나던 날 엄마가 집에서 울었다는 얘길 나중에 들었을 때 프로세스가 되지 않았다.


그나마 대학을 가서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고 사이가 좋아졌다.

전화로만 대하는 엄마는 그렇게 나쁘지 않은 대화 상대였다.


대학기간 동안이 어느정도의 관계 회복의 시간이 되어 주었다. 하지만 이민 1.5세가 겪는 잡다한 심부름이 내 상황에 대한 배려 하나 없이 불쑥불쑥 내 일상을 예고 없이 흔드는 건 계속 됐다.


“고맙다. 미안하다.” 대신 듣는 건,

“이걸 니가 당연히 해야지 그럼 누가해?”


70이 넘은 친정엄마와 사춘기 미친 개딸이 되어 물어 뜯고 싸울 수 없어 이제는 체념했다고 생각을 하지만 불쑥불쑥 그런 무배려에 하루 기분이 망하는 건 아직도 익숙치 않다.


대학 졸업을 할 때 쯤 남편을 만났다.

늘 불안이 디폴트인 나랑은 달리 평온하고 잔잔한 사람이었다.

그것만 달랐다.

애정을 나누는 그 모든 부분에서 우리는

서로의 오감을 충족했고 영혼을 채워나갔다.


얼마전 이런 얘길 나누는 와중 친구들이 그랬다.

“그런 배우자 복에 부모복까지 완벽하면 그건 너무 불공평하잖아.”


그래.

내 욕심이 과한 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인건 어쩔 수 없다.


이 숙제는

어떤 날은 날 천하의 불효 개딸년으로

죄책감에 시달리게 하다가

어떤 날은 짜증으로 가득한, 별일도 아닌데 폭발을 하는

미친년을 만들기도 한다.


남들은 부모가 나이가 들수록 짠하다는데

나는 그 감정을 느낄 수가 없다.


난 그 짠하다는 감정에 대한 글을 볼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부럽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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