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속 또 다른 계급사회 이야기
저자 조남주
출판 한겨례출판
발행 2022년 1월 19일
페이지수 243면
가격 15,000원
80년대 생인 나는 주택에서 태어나 아파트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취업 후 수도권으로 막 귀경해서는 몇몇의 고시원(창 없는 방과 창 있는 방)을 전전했고, 다세대 주택의 원룸과 투룸을 오가며 자취 생활을 했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사람이라면 아파트에서 태어나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요즘 아이들과는 달리 꽤 다양한 주거환경을 경험했을 것이다. 떠올려보자면 지방 소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집이란 오직 몸을 뉘일 주거공간의 의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성인이 된 나는 더 이상 '주거공간'으로만 아파트를 정의하지 못하게 됐다. 둘째 아이를 낳고서야 어렵게 매수한 아파트 매매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내놓는 정책에 위아래로 요동쳤다. 상급지도 아닌 곳의 작은 아파트에 내 마음이 이렇게 울렁되는데, 부동산을 외면한채 성실한 개미처럼 근로수당에만 매달려 지낸다면 상대적으로 허망한 마음이 들 수 밖에 없는 시대이다.
지금의 나는 낯선 길을 걷다가도 신축 아파트가 눈에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부동산 어플부터 켜 시세를 확인한다. 마흔의 나에게 집이란 지켜야 할 자산이자, 기회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독자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우리에게 집은 뭘까? 아파트는 뭘까?
『서영동 이야기』는 서영동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자산을 대표하는 '아파트'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계급화된 현대사회의 민낯을 보여준다. 그 민낯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사실적이라 혹시 작가가 만들어 놓은 소설 속 서영동이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아닌지, 작가가 혹시 나를 아는 사람인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서영동 이야기』는 단편〈봄날아빠를 아세요?〉에서 시작된 연작소설이다.
연작소설: 여러 단편이 공통의 주제나 등장인물로 연결되어 하나의 통일된 작품을 이루는 소설.
예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장강명의 《산자들》, 한강의 《채식주의자》
이 소설은 연작소설의 장점인 짧은 호흡과 전체의 서사를 아우루는 확장성을 가지고 있어, 다양한 인간군상을 드러내는 캐릭터와 서사를 몰입도 있게 보여준다. 전체적 세계관에서는 아파트라는 존재 아래 서영동 사람들의 욕망과 이기심. 더 들어가서는 경제적 풍요 이면의 불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작가소개
시사 교양 프로그램 방송작가로 10여 년 일하다, 2011년 장편소설《귀를 기울이면》으로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으며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대표작인《82년생 김지영》은 2017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으며 최근까지 해외에서 가장 많이 팔린 한국문학이기도 하다. 젠더적 기준에서는 페미니즘 성향의 작가로서, 다수의 작품들에서 여성주의적 문체와 사회적 주제의식이 선명한 문장들을 발견할 수 있다. 『서영동 이야기』는 작가의 대표작 82년생 김지영을 뛰어넘는 소설의 형식을 빌린 사회 리포트라고 생각된다.
줄거리
<봄날 아빠> 서영동 주민 커뮤니티에 닉네임 '봄날아빠'의 게시글이 연이어 올라온다. '봄날아빠'는 좋은 학군, 편리한 교통에도 서영동이 다른 지역보다 저평가되었다고 주장하고, 주민들은 게시글에 남겨진 단서를 바탕으로 서로가 '봄날아빠가 아닌지 의심한다.'
<경고맨> 대기업에 다니는 유정의 아버지는 정년퇴직 후 서영동 우성아파트의 경비원으로 일하게 된다. 유정은 경비원 일을 하며 온갖 수모와 부당한 일을 겪는 아버지를 목격한다.
<샐리 엄마 은주> 은주는 딸 새봄이가 다니는 영어유치원의 학부모 회장 '케이엄마'를 동경한다. 하지만 '케이엄마'가 자신의 고교시절 나쁜 사건과 소문의 중심이던 동창인 것을 알게 된다.
<다큐멘터리 감독 보미> 보미는 아버지의 삶을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찍게 되고, 아버지의 자산이 모두 부동산 투기로 생성되었음을 알게 된 후 다큐멘터리는 엉켜가기 시작한다.
그 외 <백은학원연합회 회장 경화> <교양 있는 서울 시민 희진> <이상한 나라의 엘리> 가 수록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경고맨'과 '다큐멘터리 감독 안보미'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인상 깊었던 문장
p.38 분명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것인데 내 것이었던 것 같고, 빼앗긴 것 같다. 용근은 박탈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p.208. 가족은 115동 1102호를 떠나지 못했다.(...) 그렇게 시끄러운 윗집과 예민한 아랫집 사이에서 병들어가는 사이 집값은 계속 올랐다. 이사한 지 1년여 만에 시세는 15억이 되었다. 희진은 집이 좋기도 싫기도 했다. 이 집을 가져서 다행이기도 불행이기도 했다. 행복하기도 우울하기도 했다.
p.240 아영은 기사에 나열된 30대의 사례들이 무척 낯설었다. 너무 다른 세상 이야기라 오히려 황당하지도 화가 나지도 않았다. 끌어모으면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영혼은 대체 어떤 영혼일까. 나는 영혼마저도 실속이 없네. 웃음이 나왔는데 솔직히 웃기지는 않았다.
『서영동 이야기』의 인물들은 자기 입장에서 나름의 정당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나는 그런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불편한 위선과 타인에 대한 절대적 무관심이 자리 잡고 있다. 절대적 악인도 선인도 등장하지 않는 나와 이웃들의 이야기인 『서영동 이야기』는 등장인물들에 비추어 독자 스스로를 살펴보게 한다.
주변 상가에 치매 노인시설이 들어온다는 소식에 달려가 반대 시위하는 경화와, 친정엄마의 치매 진단을 듣고 절망하는 경화가 한 사람이 듯 우리 모두는 개인적 이득에 따라 이중잣대를 휘두르고 사는 사람들 아니던가.
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지극히 나와 이웃들의 모습을 닮았다. 그래서 읽는 내내 낯 뜨겁고 책을 덮고 나서는 스스로를 돌이켜보게 된다.
『서영동 이야기』는 2025년을 살아가는 누구라도 공감할 모두의 이야기이다.
'집'이란 공간에서 삶을 충실히 꾸려가는 모든 이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