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병 속에서도 피어난 예술의 꽃
아내는 요즘에도 아침이면 천을 펴고, 색실을 꿰어 바늘을 든다.
그녀의 손끝에서 태어나는 건 단순한 자수가 아니다.
그건 하루를 견디는 힘이며, 마음을 다스리는 기도다.
병마와 싸우는 시간 속에서도 그녀는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통증이 찾아와도, 검진 결과가 불안해도,
아내는 바늘을 들어 한 땀 한 땀 실을 엮었다.
그 모습은 천상 내가 사랑하는 참사랑의 얼굴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아내는 미술을 전공하고 싶어 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색을 보는 눈이 남달랐다.
하지만 부모님의 뜻으로 미술대학 대신
일반대학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다.
젊은 날 우리 사랑이 깊어지던 어느 날,
아내는 내게 고백하듯 말했다.
“원래는 독일에 유학 가서 릴케를 공부하고 싶었어요.”
그 꿈은 결국 내 곁에서의 40년 세월로 바뀌었지만,
그녀는 한 번도 삶의 예술적 감각을 잃지 않았다.
세 아이를 키우며 일하던 시절에도
도자기를 배우고, 물레를 돌리고, 그림을 그렸다.
퇴근 후에도 항상 새로운 걸 배우던 그녀는
‘공부하는 여성’ 그 자체였다.
그런 아내에게 암이 찾아왔다.
27년의 직장생활을 마무리하고
이제 좀 쉬려던 찰나였다.
그러나 그녀는 병상에서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작년 겨울,
그녀는 직접 손으로 수세미 120개를 떠서
나와 같은 장애인활동지원사들에게 연말 선물로 건넸다.
그건 물질이 아니라 진심의 선물이었다.
그 무렵부터 그녀는 유튜브를 보고 배우며
읍내의 프랑스 자수공방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녀가 만든 작품들은 크지 않다.
대부분 찻잔 받침대나 손수건 모서리 같은 작은 것들이다.
하지만 받은 사람들의 반응은 놀랍다.
“이걸 직접 하신 거예요?”
“정말 감동이에요.”
그 말들은 단순한 칭찬이 아니라,
그녀의 마음이 전해진 순간의 고백이었다.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자수가 고통 속에서 피어난 꽃이라는 것을.
아내의 작업대 위에는
수십 가지의 바늘이 놓여 있다.
가느다란 바늘, 굵은 바늘,
그때그때의 마음처럼 다 다르다.
그 바늘들이 천 위를 지나갈 때,
마치 그녀의 인생이 펼쳐지는 듯하다.
젊은 날의 희망, 육아의 고단함,
세월의 인내와 지금의 고요까지
한 줄 한 줄이 삶의 파노라마처럼 수 놓인다.
그녀는 특히 작고 이름 없는 꽃을 자주 그린다.
화려하지 않지만,
바람에도 꺾이지 않고 피어 있는 들꽃들.
그 작은 생명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늘 다정하고 조용하다.
나는 그 꽃들에서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그녀의 철학을 본다.
나는 아내가 자수를 놓을 때면
한참을 그 모습을 바라본다.
얼굴에는 평화가 깃들고,
손의 움직임은 규칙적이며 정교하다.
그 모습은 마치
기도하는 수도자의 손 같기도 하고,
하루를 건너는 예술가의 손 같기도 하다.
그녀의 바느질은 아픔을 잊게 한다.
그리고 나에게는
삶의 의미를 다시 일깨운다.
나는 이제 안다.
아내가 바늘로 수놓는 건 단지 천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 그리고 사랑의 시간이다.
그녀는 오늘도 묵묵히 바늘을 든다.
한 땀 한 땀, 실을 따라 피어나는 꽃들은
그녀의 의지이고, 나의 위로다.
세상이 아내의 자수를 보고 “예쁘다”라고 말할 때마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이건 단순한 예술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