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생각나는 한 사람
동굴 탐사에서 맺은 한 사람과의
인연이 30년이 지났다
지금은 고인이 된 그분을 생각하며
글을 쓴다
동굴은 또 하나의 소우주다.
빛이 닿지 않는 곳,
그러나 가장 오래 살아온 생명들이 숨 쉬는 세계.
KBS 환경스페셜
'화석곤충 갈로와 , 4억년 생존의 비밀"
취재를 하고 있었다
취재기간은 약 3개월
동굴 취재다.
우리는 먼저 동굴에 서식하고 있는
황금박쥐를 찾아 (2005년 천연기념물지정,멸종위기 야생동물 ㅣ급)
전국의 동굴을 다녔다.
석회동굴, 용암동굴, 해식동굴.
강원도에서 제주도까지.
사람들은 말한다.
신비의 동물 황금박쥐.
정식 학명은 붉은박쥐.
어릴 적 만화영화 속 노래로만 기억되던 존재.
그러나 어디에도
그 모습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충북의 한 동굴
누군가는 말했다.
“이 근처에 도로가 나면
황금박쥐와 동굴 생물들은 모두 사라질 겁니다.”
그 말 하나를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현장에 있던 그 동굴은
석회동굴이 아니었다.
일제강점기 철광을 캐다 버려진
철광석 폐광이었다.
수십 년의 시간이 만든 폐광.
가슴까지 차오른 물,
악취와 쓰레기,
사람의 흔적은 파괴로 남아 있었다.
우리는 약 500미터를 기어 들어갔다.
황금박쥐는 없었다.
대신
관박쥐 몇 마리가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그곳은 이미
박쥐가 살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습도, 온도,
산과 물, 먹이.
그러나 황금박쥐는 없었다.
결국 우리는
황금박쥐가 과거에 실제로 발견되었던
무명동굴들을 찾아 나섰다.
7월.
한여름.
박쥐가 새끼를 낳는 계절.
강원도의 이름 없는 동굴에서
우리는 그 장면을 보았다.
관박쥐가 새끼를 낳았다.
어미 박쥐가
천장에 매달린 채
새끼는 어미의 배 위에서
젖을 먹고 있었다.
솜털도 나지 않은 생명.
작고 떨리는 몸.
그 순간,
카메라를 들고 있던 우리의 손이
조용히 떨렸다.
조명을 최소로 낮추고
숨소리마저 삼켰다.
바깥이 인간의 세상이라면
이곳은
완전히 다른 우주였다.
수백 마리의 어미가
같은 방식으로 새끼를 품고 있었다.
그 광경은
말이 필요 없는 생명의 증명이었다.
동굴에는
인간의 욕심이 없었다.
약육강식도,
쓸데없는 파괴도 없었다.
전 세계적으로
동굴 생물은 200종이 넘는다 한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종도 많다.
이 작은 어둠 속 우주에서
생명은
조용히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세계는 달랐다.
도로 하나,
개발 하나 앞에서
생명의 존재 여부가
조건이 된다.
우리는 보름 동안
전국의 무명동굴을 헤맸다.
머리엔 헤드램프 하나,
손엔 로프,
마음엔 두려움.
그때
항상 맨 앞에 있던 사람이 있었다.
동굴탐험대장
엄경섭 대장.
위험한 굴 앞에서는
언제나 먼저 내려가
안전을 확인하던 사람.
그날도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 산길에서
그가 말했다.
“ 최PD 님,
너무 아름답지 않아요?”
어둠을 누구보다 오래 본 사람에게
그는
가장 밝은 감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황금박쥐를 발견했다고.
우리는 마침내
붉은빛 몸을 가진
그 존재를 카메라에 담았다.
귀 끝의 검은 테,
몸 전체를 감싼 붉은빛.
그 순간,
모든 어둠의 시간이
보상받는 것 같았다.
방송은 나갔고
세상은 잠시 떠들썩했다.
보호 조치가 취해진다 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다시 잊었다.
지금도
자연은 파괴되고 있다.
개구리는 동면 중에 파헤쳐지고
야생동물은 덫에 걸린다.
돈이 된다는 이유로
생명은 거래된다.
우리는 자연을
소유한 적이 없다.
잠시 빌려 쓰고 있을 뿐인데
왜 이렇게 함부로 대할까.
동굴 속 생명들은
탐욕이 없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 태어나고
사라진다.
우리는
그 순리를 거스르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기억 끝에
한 사람이 떠오른다.
엄경섭 대장.
미얀마 해외 취재 중
그의 부고를 들었다.
나는 장례식에 가지 못했다.
이 글로 대신 전한다.
“대장님,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어둠 속에서
늘 먼저 길이 되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이제는
편히 쉬십시오.”
동굴은 아직도
어둠 속에서
자기만의 우주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그 우주를 지키던
한 사람의 이름도
내 기억 속에
조용히 살아 있다.
엄경섭 대장님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