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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키 Aug 22. 2022

봉쥬르 빠히

미드나잇 인 파리 

코로나 때문에 그동안 휴가를 국내로만 다니다 최근에 많이 완화되어 해외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오랜만의 해외여행이라 어디를 가야 할지 선택하는 게 마치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주변에 유럽여행을 좀 가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유럽 중에서 스페인이 제일 좋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처음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가려고 했다. 그러나 일정상 맞지 않아 포기하고 직항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차선책인 프랑스 파리로 정했다. 유럽이라고는 영국과 동유럽의 튀르키예만 가보았지 파리, 이태리 등은 가보질 못했다. 파리하면 낭만의 도시와 디저트 천국으로 유명한데 어떨까? 한편으론 불친절한 파리지앵과 더러운 거리, 소매치기 집시로도 유명하다. 나에겐 넷플렉스 드라마인 <에밀리 파리에 가다> 덕분에 환상과 허상이 증폭되었고 이전에는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미드나잇 인 파리>가 원조다. 

낭만의 도시로 여행을 왔지만 약혼자는 쇼핑에만 관심 있고 주인공 혼자 파리의 밤거리를 헤매다 과거로 가서 평소 자신이 동경하던 사람들(스콧 피츠제럴드, 피카소, 헤밍웨이 등)을 만나게 되는 타임슬립형 영화이다. 나는 전공이 동양화인지라 내가 조선시대로 간다면 신윤복, 김홍도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을 실제로 만나게 된다면 얼마나 감격스러울까'하며 감명 깊게 봤던 영화였다. 

  

여행 가기 전 검색을 하다 파리는 가게에 들어갈 때나 사람을 마주칠 때 '봉쥬르/봉수아'라고 인사를 해야 예의라고 한다. 프랑스어를 접하니 옛 기억이 스물스물 나는데,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제2외국어가 프랑스어였다. 고등학교 때 프랑스어 과외까지 받아 나름 내신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이마저도 좋아하지 않고 억지로 했던 터라 지금까지 생각나는 프랑스어는 고작 '꼼쀼따ㅎ', '쥬마뻴 김마키'이다. 프랑스어 단어를 외우면서 프랑스인들은 컴퓨터를 이런 식으로 발음하는구나 했던 기억이 난다.

 

긴 비행시간 동안 영화도 보고 잠도 자겠지만 시간이 많이 남을 것 같아 책을 구매했다. 여러 책을 구매했지만 그중 비행기에서 읽을 책으로 김영하 작가의 '오래 준비해온 대답'을 읽기로 했다. 김영하 문체를 좋아하기도 하고 작가가 시칠리아를 여행하며 쓴 책이라고 한다. 비행기 안에서 책으로 시칠리아를 경험하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파리를 온몸으로 느끼기에 딱일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미드나잇보다는 이른, 저녁시간에 파리에 도착했다.



한여름의 땡볕 유럽을 생각하며 여름옷만 가져왔는데 웬걸 내가 도착하기 전까지 폭염이었다가 지금은 비 내리며 추워졌다고 한다. 하지만 비가 내리지 않는 날 낮에는 한없이 더웠다. 여름과 초가을이 왔다 갔다 하는 파리 날씨가 이렇게 변덕이 심할 줄은 몰랐다. 

파리에 대해서 잘 모르니 자유여행과 현지 투어를 섞어서 여행했다. 초반 이틀은 현지 투어로, 시내투어와 그다음 날 근교 투어를 했다. 시내투어는 파리 유명 명소 위주로 돌았다. 몽마르트언덕과 사크레쾨르 대성당을 가고 방돔 광장, 바스티유 광장 등을 갔다. 근교 투어로는 모네와 고흐가 살았던 마을을 구경했다. 나머지 일정은 자유롭게 가고 싶었던 미술관과 100년 넘은 셰익스피어 서점, 팔레 로얄같은 정원에 가서 산책도 했다. 



It's Paris! Darling.

파리에 가기 전 환상이 가득했지만 정작 와보니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다 똑같았다. 

It's just Paris.

하지만 파리가 좋았던 점은 그들이 문화와 예술을 대하는 방식이다.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는 고딕 양식의 건물 외벽조차 작품 같아 보였다.  



모네의 집과 정원이 있는 지베르니와 고흐가 잠든 곳을 갔다. 그림을 그릴 때는 주변 환경과 상황, 그로 인해 본인에게 형성되는 감정들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완성 후에 보는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아름다운 빛과 자연 속에서 살았던 모네와 고흐의 쓸쓸했던 마지막 장소를 가보니 생각이 많아지면서도 그들이 바라봤던 풍경을 나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다.



예술의 도시에서 미술관, 박물관 투어는 필수다.

5박 6일의 짧은 일정 탓에 루브르, 오랑주리, 오르세, 퐁피두센터, 피노 컬렉션, 쁘띠 팔레밖에 못 갔지만 (비전공자에겐 많을 듯하다) 현대미술이나 설치작품보다 회화작품을 좋아하는 나는 인상주의 작품들이 많은 오르세와 쁘띠 팔레가 개인적으로 좋았다. 오랑주리에서 인스타 샷으로도 유명한 모네의 수련 작품에서 '나 언제 찍었어?' 하는 뒷모습 샷을 찍어 만족스러웠다. 루브르에서는 유명한 모나리자 작품과 함께 어릴 때 미술학원에서 엄청 그렸던 비너스 석고상까지 있어 괜히 반가웠다. 



그 외에도 유명한 곳들을 방문했다. 베르사유 궁전과 함께 오페라 가르니에, 쁘띠 팔레의 천장은 환상적이었다. 중학생 때 재밌게 읽었던 책 중에서 '오페라의 유령'과 '냉정과 열정사이'가 있는데 책과 영화도 다 챙겨볼 만큼 좋아했다. (중학생 때부터 마음먹은, 냉정과 열정사이에 나오는 두오모 성당은 사랑하는 사람과 꼭 가보기로!) 오페라의 유령 배경인 오페라 가르니에 안으로 들어갈 때 웅장한 스케일에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화려하고 엔틱 하면서 고풍스러운 실내장식을 옛날에 어떻게 만들었까? 생각하면 경외심이 든다. 그래서 프랑스 사람들이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게 들 수밖에 없나 보다. 

천장마다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나 같은 그림쟁이가 이 시대에 살았더라면.. 죽어나갔을 것 같다. 현대에 태어나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후식은 말차 퐁당 쇼콜라


파리에서 음식 먹었던 것 중에서 마지막 날에 먹은 게 제일 좋았다. 카페 '안젤리나'와 일식당 'Nanaumi'이다.

카페 '안젤리나'는 1903년에 문을 열어 당시 코코샤넬도 즐겨갔다고 한다. 지나가다 보여 들어갈까 했지만 웨이팅 줄이 너무 길어 다음날 오픈 시간에 갔다. 시그니처 메뉴로는 몽블랑과 핫초코이다. 빵순이에 디저트 덕후는 밀푀유와 바게트도 시켰는데, 역시 빵은 유럽 밀로 만든 유럽빵이다. 이렇게 맛있게 먹은 바게트는 처음이었다. 꿀과 여러 잼들을 섞어 발라서 더 맛있었던 느낌은 안 비밀.

파리 길거리를 지나면서 한식당도 눈에 띄었지만 주로 많았던 음식점은 일식과 쌀국수집이었던것 같다. 한 번은 가게 이름이 '강남처럼'이라 들어갔더니 중국인이 운영하는 한식당이었다. 반찬부터 메인은 어색한 한식을 따라 해서 맛이 별로였다.

이날은 뭔가 일식이 당겨 구글맵으로 찾다가 근처에 평점이 4.7인 정통 일식이라 되어있는 곳을 발견했다. 꾀죄죄한 여행객이 들어가기 미안했던 이곳은 깔끔 그 자체였다. 가게 내부도 정갈한 일본 느낌에 서빙하는 직원도 일본인이었다. 그리고 손님은 파리 현지인들만 있었다. 메인이 나오기 전 반찬을 주는데 반찬 하나하나 다 맛있어서 감탄을 연발하며 먹었다. 파리 현지식보다 파리에서 먹은 일식이 더 기억에 남는다.



유럽을 가기 전 치안과 인종차별 등을 걱정했지만 어찌저찌해서 어느새 공항 가는 시간이 다가왔다.

프랑스 님 Nimes에 사는 중학교 동창에게 불어로 '안녕 잘 있어'가 뭐야?라고 물었다.

'오흐봐~ 아비앙또!' 

역시 사람 사는 곳은 어디라도 다 똑같다. 이미지와 마케팅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으면서 또 올 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그땐 몽생미셸과 남부 쪽을 가고 싶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인근 마트에서 재료를 구입해 여유롭게 음식을 직접 해 먹고 현지 사람들과 섞어서 지내보는 그런 여행을 해보고 싶다.

 책 '오래 준비해온 대답' 마지막 페이지에 이렇게 나온다.


"...그런데 시칠리아 사람들 보니까, 이렇게 사는 것도 좋은 것 같아."

"이렇게 사는 게 뭔데?"

"그냥, 그냥 사는 거지. 맛있는 것 먹고 하루 종일 얘기하다가 또 맛있는 거 먹고."

"그러다 자고."

"맞아.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고 그냥 닥치는 대로 살아가는 거야."

"그러니까 여행을 해야 된다는 거야."

"결론이 왜 그래?"

"결론이 어때서?"


어릴 때 내면의 어린 예술가는 어느덧 사라지고 심심하고 한심한 어른이 되어버렸다. 다들 경험이 쌓여서 그런지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걱정이 많고 신중하다. 그리고 자신의 육신과 정신을 아주 잘 알고 있어 안전하게만 있으려 한다. 어릴 땐 무모하게 이성보다 마음을 따라 모험을 하기도 하고 또는 365일 내내 울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은 어린애로 치부한다. 타성에 젖어 더 이상 호기심을 느끼지 않고 피곤해하며 영혼이 없어 보이기까지 하다. 

여행은 경험해보지 않았던 것을 느끼게 해 주고 원래 내가 있던 곳의 잡생각과 스트레스도 잠시나마 잊게 해 준다. 우리를 어딘가로 움직이게 하고 흘러가게 하는 여행. 어찌저찌 닥치는 대로 살아보자구. (돈도 많이 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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