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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영 May 12. 2023

나 아니면 안 돼? 나 아니어도 돼!

너무 애쓰지 않기


1. 나여야만 한다는 생각 (프란츠 카프카 『변신』)



어느 날 아침잠에서 깬 그레고르 잠자는 큰 해충으로 변해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딱딱한 등딱지, 갈색의 둥그런 배, 가느다란 여러 개의 다리. 꿈이 아니다. 출근이 늦어지자 지배인이 찾아왔고, 가족은 그레고르에게 빨리 출근하라고 재촉한다. 힘들게 방문을 연 그레고르. 변신한 그를 발견한 지배인과 가족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그레고르는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족의 생계를 혼자 책임지고 있는 그레고르는 출장 영업 사원을 하며 고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오 년 일을 쉰 나이 든 아버지, 천식을 앓고 있는 어머니, 열일곱 살 여동생. 너무 힘들어서 쉬고 싶지만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흘러도 그레고르가 정상으로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가족은 어떻게 먹고살지 의논하기 시작했고, 곧 그들은 각자 일자리를 구했다. 아버지는 말단 은행원들에게 아침 식사를 날라다 주는 일을 구했고, 어머니는 양장점에서 받아 온 고급 내의를 바느질했다. 여동생은 판매원 자리를 얻었다.


그레고르가 변신한 지 이미 두 달, 여동생은 오빠가 기어 다니기 편하도록 가구들을 치우기 시작한다. 가구를 치우다 오빠를 발견한 엄마는 기절하고, 화가 난 아버지는 그레고르에게 사과를 던진다. 사과 하나가 정통으로 등에 박힌 그레고르. 한 달이 넘도록 아무도 사과를 떼어주지 않아 엄청난 고통에 시달린다. 그레고르의 식사와 청소를 챙기던 여동생은 시간이 지날수록 오빠의 식사도 청소도 대충 한다. 이제 그레고르는 먹는 게 거의 없다. 


가족들 모두 돈을 벌지만 살림은 점점 더 쪼들린다. 소득을 늘리기 위해 집에 세 명의 하숙인을 들였다. 이제 가족들은 그레고르에게 관심이 없다. 집안의 지저분한 잡동사니들을 그레고르의 방에 모두 쌓아 둔다. 그레고르의 몸에는 먼지가 뒤엉켜 있다.


그렇게 방치된 그레고르는 어느 날 저녁 바이올린 소리를 듣고 거실로 나온다. 여동생이 하숙인들을 위해 연주하고 있었다. 그레고르를 발견한 하숙인들은 불쾌해하며 방을 빼겠다고 한다. 가족들은 그레고르에게 분노한다이제 더 이상 괴물 오빠를 견딜 수 없으니 내쫓으라고, 저 짐승 때문에 못살겠다고 여동생은 말한다.


쇠약해진 몸으로 자기 방으로 돌아가는 그레고르. 들어가자 재빠르게 문을 잠그는 여동생. 쾅 닫는 문소리에 놀라 다리가 꺾였다. 이제 몸을 움직일 수 없다. 등에 박힌 썩은 사과. 그 주변 곪은 부분에 먼지가 덮여 있고, 감각도 없다. 그의 머리가 저도 모르게 푹 수그러졌다. 마지막 숨이 약하게 새어 나왔다.


죽은 그레고르를 파출부가 발견하고는 가족들에게 알려준다. 그레고르의 죽음을 확인한 후 아버지는 세 여인과 함께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드린다. 가족은 오늘 하루를 푹 쉬며 산책을 나가기로 결정한다. 모두들 식탁에 앉아 결근 사유서를 쓴다. 몇 달 만에 그들은 전차를 타고 교외로 나갔다. 그들은 행복했다. 




2. 너무 애쓰지 마



주인공 그레고르는 어느 날 아침 큰 해충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 상황에서도 제일 먼저 든 생각이 출근이었고, 제일 걱정하는 것도 출근이었다. 이상해진 자신의 몸이 아니라 오로지 출근 생각, 오로지 출근 걱정뿐이었다. 왜 그랬을까?  


그레고르의 가족 중에 돈을 버는 사람은 그레고르밖에 없었다. 가족의 생계가 오직 그의 손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는 앉으나 서나 돈 벌 걱정을 했던 것이다. 그레고르가 볼 때 가족들은 모두 돈을 벌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오랜 시간 무직자인 데다 나이도 많고 살이 쪄서 행동도 둔했다. 천식을 앓고 있는 어머니는 몸이 약했고, 여동생은 이제 겨우 열일곱 살이라 돈을 벌기에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자 그레고르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시작했다. 가족을 위해 정말 열심히 일했고 큰 집도 장만했다. 내년에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여동생을 음악학교에 보내줘야 하고, 부모님이 사장에게 진 빚도 갚아야 한다. 출장 영업 사원으로 일하면서 너무 힘들어 쉬고 싶지만 앞으로 돈 들어갈 일이 태산이라 가족을 생각하면 쉴 수가 없다. 


하지만 어느 날 그레고르는 큰 해충이 됐다. 오직 가족만을 위해 가족의 생계를 위해 살았는데, 그가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제 가족은 어떻게 될까? 그레고르의 눈에 경제활동이 불가능해 보였던 가족들은 상황이 바뀌자 빠르게 변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왜? 먹고살아야 하니까. 그레고르가 아니면 안 될 줄 알았지만, 그레고르가 아니어도 되는 거였다. 하나같이 취업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던 가족들은 각자 일자리를 구했고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들이 각자 돈을 벌기 시작하자 그레고르를 대하는 태도도 바뀌기 시작한다. 처음엔 안타까워했지만 이젠 귀찮은 존재, 내쫓고 싶은 존재가 되었다. 그레고르 덕분에 살았던 가족이 이젠 그레고르 때문에 죽겠다고 외친다. 뭐 때문일까? 그레고르의 쓸모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가족에게 그레고르는 소위 '돈 버는 기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고장 난 기계를 어디다 쓰겠는가? 버리는 수밖에.


소설 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멀리 볼 것도 없다. 우리 주변에도 그리고 우리 가족 중에도 있다. 큰 해충이 된 그레고르와 앞으로 큰 해충이 될 그레고르는 어디에나 있다. 문득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너무 애쓰지 마." 나 아니면 안 될 것처럼 너무 애쓰며 살지 말자. 나 아니어도 누군가는 하게 되어 있고 변함없이 세상은 돌아가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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