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나영 Apr 27. 2023

나의 아픔이 너에겐 위로더냐

진정성


1. 가짜는 다~ 보여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올리브 키터리지 - 튤립』)



라킨 부부에겐 도일이라는 아들이 있다. 도일은 부인을 스물아홉 번 난도질하는 사고를 저지르고 복역 중이다. 그일 이후 로저 라킨과 루이즈 라킨은 새벽에만 잠시 나올 뿐 그 집 블라인드는 밤낮으로 언제나 내려져 있다. 이웃들은 그들을 꺼려했고 올리브는 그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7년이 흘렀다.


올리브와 헨리에겐 크리스토퍼라는 아들이 있다. 그들은 크리스토퍼가 살 집을 손수 지었고, 의사가 된 크리스토퍼는 의학박사인 수잔과 결혼하여 그곳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들은 불과 몇 달 후, 먼 곳으로 이사를 간다. 올리브와 헨리는 몹시 상심한다.


또다시 불과 몇 달 후, 그렇게 먼 곳으로 이사 간 크리스토퍼는 이혼한다. 그 소식을 듣고 일주일 후, 헨리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요양원에서 지내게 된다. 헨리는 걷지도 못하고 눈이 멀고 말도 못 하는 상태가 된다. 크리스토퍼는 딱 한 번 헨리를 보러 왔다.  


우편물을 정리하던 중 올리브는 '그분은 언제나 좋은 사람이었어요. 분명 지금도 좋은 분이겠지요.'라고 적힌 루이즈 라킨의 편지를 발견한다. 올리브는 라킨부부의 집을 방문한다.


루이즈는 올리브에게 직설적으로 마음 아픈 말을 쏟아내며 이렇게 말한다. "내 꼬락서니를 보고 위안을 얻으려고 왔구나."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낀 올리브는 서둘러 그 집에서 나온다. 올리브는 뉘우친다. '그 여자가 괴로워하는 걸 보고 기분이 나아지길 바라며 찾아간 것은 잘못이었다'라고.


매일 요양원으로 헨리를 만나러 가는 올리브. 그와 함께 했던 행복한 날들을 생각하며, 튤립을 심을 것인지 고민한다.


'튤립은 이미 활짝 핀 꽃이 알뿌리 안에 들어 있는 거야. 한 번만 피거든. 그걸로 끝이야.' (p.257)

  



2. 진심은 다~ 느껴져요!



얼핏 보면 루이즈의 삶과 올리브는의 삶은 다르게 보인다.


루이즈는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가 있는 아들이 있고, 그 때문에 그녀 또한 감옥에 갇힌 것과 다름없는 생활을 한다. 동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종일 블라인드를 내리고 있고 새벽에만 잠깐 나온다. 죄인을 자식으로 둔 부모는 또 다른 죄인이 될 수밖에 없다.


올리브는 남부러울 거 없이 잘 자라 남들 다 부러워하는 의사가 된 아들이 있다. 어딜 가도 아들 때문에 기죽을 일은 없다. 그렇게 잘 자란 아들은 의학박사와 결혼한다. 의사 아들에 의학박사 며느리. 잘난 자식을 두었다고 생각하는 올리브는 어딜 가도 당당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루이즈의 삶과 올리브의 삶은 다르지 않다.


올리브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애지중지 키웠고, 평생 옆에 두고 싶었다. 그래서 아들이 살 집도 손수 지었고, 그곳은 아들의 신혼집이 되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녀의 바람과 아들의 생각은 달랐다. 성인이 된 아들은 올리브를 떠날 준비를 한다.


그 시작은 결혼이었다. 아들이 결혼한 여자는 외지인이었고 자기주장이 강한 고학력자였다. 차갑고 퉁명스럽고 자기주장이 강한 올리브와 맞을 리가 없었다. 아들은 결혼 후 불과 몇 달 만에 올리브가 손수 지은 집에서 나간다. 게다가 올리브가 살고 있는 곳으로부터 멀리 이사를 간 후, 이혼한다.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올리브가 혼자가 되었어도 아들은 절대로 그녀에게 돌아올 생각이 없다.


루이즈 라킨은 비록 그런 큰 일을 겪고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고통 속에 살고 있지만 매일 아들을 면회하고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 그러나 올리브는 아들도 남편도 모두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올리브는 자신이 서럽고 외로운 처지가 되자 위로받을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고, 마침내 그녀가 찾은 그 대상은 루이즈 라킨이었다. 올리브가 7년이란 세월을 모른 척 외면했던 루이즈 라킨.


진정성이라곤 하나도 없는 올리브에게 루이즈 라킨은 말한다.  "내 꼬락서니를 보고 위안을 얻으려고 왔구나." 꽃길만 있을 것 같던 올리브의 인생. 그녀의 삶이 바닥을 뚫고 지하로 떨어졌다고 느꼈을 때, 비로소 남의 인생이 궁금해졌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남의 인생에 측은지심이 아닌 궁금증이 생긴 것이다. 이것이 루이즈 라킨의 눈에는 훤히 보였던 것이다.


측은지심은 다른 사람의 불행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측은지심의 중심은 내가 아니다. 힘든 상황에 놓여 있는 상대가 중심이다. 하지만 궁금증은 상대가 아닌 내가 중심이 된다. 올리브는 자기 아픔만 생각하며 위로를 가장한 연기를 한 것이다.


말 못 하는 애기도 자기한테 잘해주는 사람을 알아보고, 공부 못하는 학생도 정성을 다하는 선생님을 알아본다. 하물며 인생의 희로애락을 경험한 인생 앞에 거짓 연기는 훤히 보이지 않겠는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건 궁금증이 아닌 측은지심의 '심(心)'임을 명심(心) 또 명심(心)해야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보아야 잊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