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최근에 누군가를 용서해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정확히는 4개월 전부터 저를 괴롭혀온 일이고, 1달 전부터 용서해야만 했죠. 용서해야 하는 일이라... 듣고 보면 이상할 수도 있어요. 사건의 진상을 알려드리기는 힘들지만 여러분들이 알아듣기 쉬운 말로 해드리자면, 그냥 '인생에서 가장 억울했던 일.'로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거짓말, 과장이 가득한 세계에서 저 혼자만 쓸데없는 정의감에 불타오르며 진실만을 얘기하다 호구가 되어버린 이야기죠.
그래서 아쉽게, 이젠 아무에게도 제 공황장애와 심해진 우울증의 책임을 돌릴 수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용서하기 더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너무나도 억울했습니다.
아직도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저는 모두 용서했어요. 그리고 축복했어요. 딱딱한 바닥에 앉아 한 시간 동안 기도하며 그들의 아름다운 앞날을 기원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제가 할 수 있는 한 그들을 도와주고 싶어 졌습니다. 그게 제가 원하는 철학의 길이라는 것을 알기에 말이죠. 그래요. 철학은 입만 터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증명하는 거예요. 익명으로 글 쓰는 사이트에 이런 걸 올려봤자 저를 알아줄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마는, 누군가는 저의 철학에 동감하고, 동조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래서 용서하는 법이 뭐냐고요?
그 사람을 믿는 겁니다. 미안해하고 있다는 믿음.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 말입니다. 이건 저의 소설인 인류에서도 등장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죄책감 때문에 힘들어도, 아무리 버거워 그 일을 잊어버리지 마. 아직도 고통에 몸부림치 이들이 수두룩하니까. 하지만, 네가 패배자라고 생각하지도 마. 끼친 만큼, 도우면 돼."
인류 中
상대가 그 일을 잊지 않기만 하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 기억은 필연적으로 인생에 흔적을 남기고, 다음 선택을 바꾸는 기준이 됩니다.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사람으로 변해간다면, 그 자체로 이미 책임은 작동하고 있는 셈이죠. 이것이 제가 이해한 예수 철학의 핵심입니다. ‘네 원수를 사랑하라’. 그리고 이 말은 제가 몇년동안 살기 위해 철학을 배워오며 눈물로 익힌 문장이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철학 앞에 가장 덜 부끄러운 선택을 골랐을 뿐입니다.
직필의 장점은 여기에 있습니다. 아직 살지 않은 경험을 끝까지 사유해 보고, 그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결말을 미리 선택할 수 있다는 것. 물론 현실에서는 예외경우라는 핑계로 더 쉬운 길에 끌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것만큼은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뭐가 더 나은 길인지 아시잖아요.
이게 용서하는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