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고사성어

호가호위

by 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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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 간신들의 커밍아웃

호가호위(狐假虎威)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 유명한 성어는 《전국책》에 전한다. ‘호가호위’는 ‘여우가 호랑이 위세를 빌린다’는 뜻으로, 강한 자의 위세를 빙자하여 설치는 것을 비유한다. 먼저 역사 사례를 보자.

기원전 369년 초나라 숙왕(肅王)의 형제인 선왕(宣王)이 즉위했다. 어느 날 선왕은 군신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물었다.


“듣자 하니 북방의 여러 제후국들이 우리 초나라의 대장 소해휼(昭奚恤)을 그렇게 두려워한다는데, 대체 어찌된 일이오?”


신하들은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이 때 강을(江乙, 위나라 출신으로 지모가 뛰어났다)이란 대신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호랑이가 배가 고파 짐승을 잡아먹으려다 여우를 잡았습니다. 그러자 여우는 ‘너는 감히 나를 잡아먹을 수 없어! 하느님께서 나를 백수의 우두머리로 삼으셨단 말이다. 지금 네가 나를 잡아먹으면 하느님의 명을 어기는 것이 되지. 내 말을 못 믿겠다면 내가 몸소 보여 줄 테니 내 뒤를 따르면서 백수들이 나를 보고 감히 도망가지 않는 놈이 있는가 보라고.’라고 말했답니다. 호랑이는 그럴듯하다며 여우를 따라 나섰습니다. 동물들이 보고는 모두 도망쳤습니다. 호랑이는 동물이 자기 때문에 도망친 줄 모르고 그저 여우를 무서워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답니다. 지금 왕의 땅은 사방 5천 리에 백만 군대를 자랑하고 있으며, 소해휼은 그 일부분일 뿐입니다. 북방 제후들이 해휼을 두려워하는 것은 실은 왕의 군대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마치 백수가 호랑이를 두려워하듯이 말입니다.”


사람들은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어 백수를 겁주었다는 고사를 ‘호가호위’라는 성어로 개괄했다. ‘가(假)’ 자는 빌린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권세를 빌어 남을 억누르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강을이 이 고사를 인용하여, 각 제후국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대장 소해휼이 아니라 초나라 선왕이라고 한 아첨은 아주 적절했다. 당시의 사회적 조건에서 보면 전쟁이 빈번했기 때문에 정치・군사・외교 영역에서 이러한 ‘호가호위’의 책략으로 생존을 도모하는 것도 작은 제후국들에게는 유용했다. 만약 외교상 대국이나 강국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언제고 남에게 먹힐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었다.


‘호가호위’는 역사적으로 간신들이 써먹은 전형적인 수법의 하나였다. 간신은 자신의 위세를 떠벌려 상대를 기죽이기 위해 힘 센 사람, 특히 권력자를 앞세운다. 끊임없이 유력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강조하면서 자신을 과시한다. 그렇게 해서 상대를 굴복시키거나 패거리를 짓는다. 간신은 최고 권력을 자기 손에 넣을 때까지 ‘호가호위’를 멈추질 않는다. 따라서 누군가의 언행을 잘 살피고 분석하면 그가 간신인지 아닌지를 가릴 수 있고, 간신으로서 ‘호가호위’하는 간행을 정확하게 파악하면 간신을 제어할 수 있다. 물론 보통사람들도 ‘호가호위’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함부로 간신으로 규정하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된다.

‘호가호위’에서 하나 더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흔히 ‘호가호위’의 핵심과 문제는 여우이지만 그 뒤에 있는 호랑이가 더 큰 문제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여우의 꾐에 넘어간 호랑이의 어리석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호가호위’를 우리 사회의 신종 간신부류를 대표하는 검찰의 검간(檢奸)에 적용해보자. 지난 반세기 이상 검간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휘둘러왔다. 여우, 즉 검간이 이런 권력을 갖게 된 데는 호랑이, 즉 역대 정권과 권력자 및 정치가들의 비호(庇護)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개 청에 불과한 검찰이 나라 전체를 흔들고, 급기야 그 출신이 최고 권력의 권좌에 앉을 수 있었던 것도 ‘호가호위’가 극대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 신종 간신부류를 청산하는 첫 대상은 당연히 검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검간의 실상은 간신이 흔히 쓰는 ‘호가호위’라는 수법이 초래하는 결과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절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큰일이나 중요한 일이 닥치면 간신이 커밍아웃한다. 그 일이 대부분 자기 개인의 이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지금 여당 안에서 ‘호가호위’하는 자들이 출몰하고 있다. 개인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내부를 갈라치기 하면서 유력자와 대통령을 끌어들인다. 마치 자신의 의견과 주장이 권력자의 의중이라도 되는 양 허풍을 떨고 허세를 부린다. 지금 당장 이런 자들을 간신으로 규정하기는 뭐하지만 그대로 놔두면 간신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화근(禍根)은 싹을 틔우기 전에 잘라야 한다. 살다보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산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 우리네 인생도 그렇고 나라도 그렇다. 야금야금 좀 먹기 전에 살충제를 뿌려야 한다.(2026년 2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