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時事 고사성어 - 김영수의 지인논세知人論世》

지인知人

by 김영수

《시사時事 고사성어 - 김영수의 지인논세知人論世》


지인(知人) - 사람을 알다


전설시대 성군인 순(舜) 임금 당시 사법관에 임명된 고요(皐陶)를 비롯하여 훗날 하나라의 시조가 되는 우(禹)와 대신 백이(伯夷) 등이 조회 때 통치의 요체를 놓고 토론을 벌였다. 무려 5천 년 전이었다. 이 토론에서 고요는 통치의 핵심을 다음과 같은 말로 간명하게 설파했다.


“재지인(在知人), 재안민(在安民).”

“사람을 알고 백성을 안정시키는데 있습니다.”(《사기》 권2 <하본기>)


우가 그런 경지는 요 임금도 이루기 어렵다며 “사람을 알려면 지혜로워야 하고, 지혜로워야 사람을 쓸 수 있습니다. 백성들을 편안하게 할 수 있어야 은혜롭다 할 수 있고, 그리하여야만 백성들이 그 덕을 마음으로 느낍니다”라고 응수했다. 고요는 리더가 일을 행하는데 있어서 구체적으로 필요한 아홉 가지의 덕, 즉 ‘구덕(九德)’을 설파했다. 고요가 말한 통치의 요체는 간결하다. 사람을 알고 백성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2,700년 전 춘추시대 제나라 환공(桓公)은 관중(管仲)에게 자신의 천하의 패주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를 물었다. 관중은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을 알아야 합니다. 알았으면 써야 합니다. 쓰되 소중하게 써야 합니다. 썼으면 맡겨야 합니다. 이러고도 소인배를 가까이 하면 다 허사가 됩니다. 소인배를 멀리 하십시오.”


이것이 저 유명한 관중의 리더십 5단계론이다. 즉, 지인(知人) – 용인(用人) – 중용(重用) – 위임(委任) - 원소인(遠小人)이다. 오늘날 리더십론이라 해도 하나 이상할 것 없을 정도로 정확하게 핵심을 짚고 있지 않은가?

사마천은 ‘그 리더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거든 그가 기용하는 사람을 보라’는 뜻의 ‘부지기인(不知其人), 시기소사(視其所使)’라는 천고의 명언을 남겼다.

이렇듯 사람을 안다는 ‘지인’은 과거에는 리더의 중요하고 핵심적인 리더십 항목의 하나였다.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사람, 특히 나라에 필요한 인재를 기용하는 통치자에게 가장 중요하고 심각한 일이 다름 아닌 ‘인사(人事)’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인사가 만사(萬事)요, 동시에 망사(亡事)이기도 하다’는 말까지 나올까? ‘인사가 망사’를 지난 몇 년 처절하게 겪으면서 이 말이 더욱 절절하게 들린다.

관점을 리더가 아닌 보통 시민으로 돌려보자. ‘사람을 아는’ ‘지인’이 리더에게만 필요할까? 주기적으로 직접 보통 시민의 손으로 나라를 운영할 사람을 뽑는 시스템에서 ‘지인’의 필요성은 리더보다 보통 시민에게 더 요구되지 않을까? 이 필요성 역시 지난 몇 십 년 사이 여러 차례 겪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우리 보통 시민들의 선택은 A학점과 F학점을 오갔다. 무엇이 문제일까?

명나라와 청나라 교체기라는 위기의 시대를 살았던 고염무(顧炎武, 1613~1682)는 “천하흥망(天下興亡), 필부유책(匹夫有責)”이라는 400년 전 당시로서는 놀라운 말씀을 남겼다. “천하의 흥망은 필부(보통사람)의 책임이다”는 뜻이다. 그로부터 400년 뒤,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고 했다. 고염무가 말한 ‘필부’가 곧 ‘깨어있는 시민’이고, 노무현 대통령은 이 시민의 ‘조직된 힘’이 나라의 흥망을 좌우한다고 인식했던 것이다.

깨어있는 시민의 첫 번째 역할이자 책임, 즉 가장 중요한 자질이 곧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는 ‘지인’이 아니겠는가? 지인의 책임이 이제 우리 보통 시민들이 더 많이 져야 하고, 또 기꺼이 그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 나와 후손의 미래가 내 손과 사람을 바로 볼 줄 아는 ‘지인’의 능력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씀에 덧붙여 ‘스스로 공부하고 생각하는 시민이 미래를 만든다’는 사족을 달면서, 제1부에 실린 31편의 글들을 이런 관점에서 읽어주셨으면 좋겠다.(본문 21~24쪽)

시사(時事) 고사성어 | 김영수 | 창해(새우와 고래) - 예스24 - https://m.yes24.com/goods/detail/186948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