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치마꼬리와 빨래터

by 할미꽃

지금으로부터 85년도 더 된 옛날 이야기다.

나는 한 때, 엄마의 치마꼬리를 잡고 세상을 걸어다니던 아이였다.

엄마는 빨래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나는 엄마의 치마꼬리를 붙잡고 쫄래쫄래 따라갔었다.

홍릉에는, 이제는 사라져버린 빨래터가 하나 있었다.

우리 집에서 빨래터까지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그 거리가 멀다는 것을 느끼지 않았던 것은 엄마의 치마꼬리 덕분이었던 것 같다. 엄마만 곁에 있으면 어디를 가든지, 얼마나 멀리 가든지 마냥 좋기만 했던 시절이었다.

소나무가 늘어선 둔덕 아래로 제법 넓은 평지가 있었고 끝자락에 샘이 있었다.

땅 속에서 맑은 물이 끊임없이 콸콸 솟아오르고 그 물은 작은 내를 이루며 흘러갔다.

샘에서 조금 떨어진 곳, 냇물 양쪽으로 하얀 빨랫돌들이 줄지어 있었다.

샘솟는 곳은 식수로 쓰이는 곳이라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다. 푯말 하나 없어도 그곳은 성지처럼 지켜지고 있었다.

엄마가 커다란 빨랫돌에 앉으면, 나는 그 옆에다 작은 돌을 하나 끌어다 놓고 손을 내밀며

“엄마, 나도.” 하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 엄마는 버선짝 하나를 집어 내게 건네주셨다.

물길 옆으로 제법 넓은 공터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커다랗고 까만 가마솥이 걸려 있었다. 누구의 것도 아닌 빨래터의 것이었다.

엄마는 그 커다란 솥에 애빨래한 이불호청을 넣고 양잿물을 조금 풀어 넣어 끓였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삭정이들을 주어다가 불을 지피고,

빨래가 부글부글 한참 끓어 오르면, 국수를 건지듯이 방망이로 건져내어 물속에 담갔다.

겨우내 묵은 먼지를 품었던 호청은 빨래방망이에 두들겨 맞으며 차가운 물속에서 흔들리다가 이내 눈부시게 하얗게 살아났다.

물기가 줄줄 흐르는 커다란 호청은 혼자 힘으로 짤 수 없었다. 말하지 않아도, 곁에 있던 아낙이 일어나 한 자락을 잡고 비틀었다. 그렇게 물기를 거둔 이불호청은 풀밭 위에 활개를 치듯 널려서 햇볕을 받았다.

그 사이 빨래 삶고 남은 잔불에서는, 감자가 익어가는 구수한 냄새가 솔솔 피어올랐다.

엄마가 호호 불며 까주던 감자의 맛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결혼하고 처음 살게 된 곳도 홍릉동이었다. 매일 같이 그 길을 오갔지만,

소나무 숲은 사라지고 높은 빌딩만 들어선 낯선 풍경이 되어 있었다.


그 옛날의 빨래터가 어디쯤 있었던지 이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다만 오랜 내 삶의 길에 그곳이 분명 있었다는 기억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래서 오늘도 어머니 사진 앞에서 문득

빨래터를 떠올리며

어머니의 하얀 무명치마 꼬리를 그리워한다.

매거진의 이전글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