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은 아이들과 조금이라도 더 함께 하고픈 마음에 밤늦게 울산으로 내려왔다. 그러다 보니 주변 풍광도 전혀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밤길 운전도 점점 힘들어지기도 하여 올해부턴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명절 연휴 마지막날은 조금 일찍 아이들 집을 나와 오는 길에 관광을 겸해 몇 곳 돌아보고 내려오기로 한 것이다.
그 첫 번째 지역이 바로 문경이다. 문경은 나의 아버지가 지금의 나보다 더 젊었던 시절, 지금은 없어진 어느 시멘트공장에 다녀 이곳에서 몇 년 사신적이 있다 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문경을 첫 번째 지역으로 정한 이유는 울산에서 서울로 가는 길에 문경까지가 거의 중간 정도 되는 곳이란 점이 가장 큰 이유다. 내가 칠십 대 정도 될 때쯤 이곳을 마지막 삶터로 할까 하는 마음에서다. 아이들이 서울에 자리 잡고 산다면 울산까지는 너무 멀기도 하고, 문경 정도면 차로도 약 2시간대, KTX역도 계획이 있다 하니 나들이 겸해서 오기 좋을 듯하기 때문이다. 칠십 대가 되면 장모님도 내 엄마도, 누나들도 과연 몇이나 살아 있을까, 친구들도 모두 힘 빠질 나이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어, 산세 좋은 곳에 조용히 세월을 보내며 사는 것도 나쁘진 않으리라.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문경새재 IC에서 내렸다. 한적하고 조용한 시골 동네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진남교반 진남휴게소까진 10분여 정도 걸린 것 같다. 그동안 막힘없이 달리던 차가 진남휴게소를 중심으로 양방향 모두 차가 엄청 길게 꼬리를 물고 있다. 이곳이 명소는 명소인가 보다.
나는 진남휴게소 반대방향에서 온 때문에 네비는 영강을 휘돌아 한 바퀴 돌아가라고 안내한다. 덕분에 진남교반 일대를 휘둘러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진남휴게소 앞은 차들로 많이 붐볐으나 의외로 진남휴게소 주차장은 여유가 많았다. 서울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한 터라 이곳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4시가 넘어 해가 산을 넘어가버린 것이 조금은 아쉬웠다.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고모산성 진남문으로 향했다. 세월에 훼손된 성문을 복원한 흔적이 역력하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복원에 사용된 돌 재질이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분명 이 성을 쌓을 땐 인근에 돌을 사용했을 것인데 지금은 모두 화강석으로 크기도 맞지 않아 왠지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진남문 뒤로는 이 길로 수많은 영남의 유생들과 보부상들이 드나들었을 주막을 재연해 놓았다. 그동안 많이 봐왔던 대청마루를 가운데 두고 양 옆에 방이 있는 구조가 아닌 정사각형 형태다. 조그만 마루를 기역자로 한편은 부엌과 또 한편은 방으로 연결된다. 어찌 보면 이게 주막에서 일하는 주모의 입장에서 편할 것도 같다. 부엌에서 방으로, 마루로 또 마당으로도 쉽게 연결되니 이 집의 중심은 어찌 보면 부엌인 것이다. 주막을 뒤로하고 성벽을 따라 남문지로 올랐다.
그동안 성하면 큰 바위로 성벽을 쌓아 올린 것만 보다 이곳 고모성의 성벽돌은 너무나 작고 소박하다. 마치 벽돌 쌓기 마냥 쌓아 올린 돌들과 그럼에도 웅장하고 날렵하게 쌓은 것이 여간 솜씨가 좋은 것이 아니다. 성벽에 가까이 가 돌을 만져보니 푸석푸석한 것이 긴 세월에 버티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 돌은 모두가 검은색 계통의 편마암인 모양이다. 멀리서 본 영강 옆의 깎아지른 절벽을 보니 언 듯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나마 성벽 복원에 사용된 돌은 비록 백색 계열의 화강암이긴 해도 크기는 비슷하게 한 것이 다행이다.
남문지와 연결된 성벽에 올라 발아래 영강을 내려다보니 천혜의 요새란 생각이 든다. 휘돌아 좁아지는 영강으로 올라오는 적군을 막기에는 최적의 장소로 보인다. 이런 곳에서 싸움 한번 하지 않고 도망부터 가버린 조선의 양반네들을 생각하니 오랜 세월 누리기만 하고 책임은 지지 않고 살아온 자들의 헛껍데기가 지금의 세상과 오버랩된다.
곧 어두워질 듯해서 서문지 쪽 전망대까지만 보고는 돌아서 동문지를 향했다. 남문지에서 동문지까지는 무너진 성벽이 어지러이 쌓인 채로 있다. 이곳에서 일제로부터 나라를 구하기 위해 싸웠을 의병들. 우리는 그들의 이름도, 아니 이 땅에 그들이 왔다 갔는지 조차 알지 못한다. 나도 그럴 것이다. 이 지구별에 여행 왔다 때가 되어 어떤 방법으로 여행을 끝내고 돌아갈 때 내가 이곳에 왔다 간 줄 아무도 모르리라.
남문지 옆에 쌓아둔 투석전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돌멩이들, 80년대 끝자락 데모할 때 도로에서 던졌던 보도블록 깬 돌멩이. 고모산성에서는 맞아 죽어라고 던졌을 돌, 도로에서는 혹시 전경이 맞아 다치면 어쩌나 하며 던졌을 돌. 시대와 상황에 따라 의미도 마음도 다른 돌멩이 그러나 지금은 그 소용을 다하여 유물로 남겨졌다.
산성을 돌아 내려오니 진남문에 조명이 켜져 있다. 제법 어두워졌다. 토끼비리로 향했다. 처음 오는 길이라 토끼비리가 뭔지도 모르고 토끼 캐릭터라도 있나 하는 생각에 가 봤다. 조금 더 가니 영강을 비켜서 있는 깎아지른 절벽을 겨우 토끼가 다닐만한 길이라는 안내판이 나온다.
대략 난감이다. 신발도 그렇고, 시간이 어두워져 앞도 잘 보이지 않으니 이대로 더 갈 것인지 아니면 다음을 기약하고 돌아설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아쉬운 마음에 어스름한 어둠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발아래 영강이 흐른다. 지금은 그나마 데크로 단장되어 안전하지만 그 옛날 이 길을 다녔을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니 아찔하다.
중간쯤 왔을까 여기서 더 가다간 자칫 인적도 없는 산길에서 다치기라도 한다면 공연히 119 사람들 고생시키겠다 싶어 돌아왔다.
어둠에 완전히 쌓인 고모산성을 뒤로하고 저녁을 먹기 위해 문경시청으로 향했다. 시청 근처엔 식당이 있겠지 싶어서다. 도로가에 선짓국집이 보인다. 젊은 남자 둘이 장사하고 있다. 생각보다 음식도 깔끔하고 정갈한 것이 좋았다.
이제부터 혼자 하는 여행에 익숙해지기 위한 첫걸음, 나의 문경 여행은 아쉽지만 이렇게 끝을 내고 울산길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