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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채동 Mar 06. 2023

간절곶 소망길을 달리다

달리기 여행 1

처음 무작정 달리던 것을 시작으로 3년의 세월이 축적되었다. 달리는 방법에 대한 교육도 없이 혼자 무작정 달리다 보니 허벅지와 종아리에 크고 작은 부상도 경험했었다. 그 과정에서 나의 달리기 목표를 속도보다는 거리를 늘려서 전국의 많은 걷는 길을 달려보는 것으로 정했다.

먼저 부산에서 강원도까지 이어지는 해파랑길을 달려보기로 했다. 처음 하는 일이라 엄두가 나지 않아 연습 겸 울산 진하해수욕장에서 간절곶을 거쳐 서생면사무소 뒤편까지 약 9km 정도 되는 간절곶 소망길을 시험 삼아 달려보기로 했다.


간절곶은 울산에서 나고 자란 나에겐 익숙한 곳이다. 편도 약 9km 정도 거리면 왕복하여도 20km 내, 그러면 크게 무리는 아닐듯하여 3월이 시작되는 첫 주 토요일에 다녀왔다. ‘출발점에서 종점까지 쉬지 않고 달려야 하나?’ ‘풍광이 좋은 곳에서 구경도 하며 쉬어도 다시 달릴 수 있을까?‘등 온갖 생각을 하며 진하로 갔다.

진하해수욕장 옆 명선교 광장에서 간단히 몸을 풀고, 허리에 물 한 병 차고 출발했다. 같은 장소라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참 다르게 느껴짐을 새삼 느꼈다. 진하해수욕장은 대학 때 MT로,  데이트로도 자주 왔던 곳이지만 이렇게 아침에 혼자 달리며 보는 풍광은 많이 낯설다. 달리며 사진을 한번 찍어봤다. 잘 안된다. 이내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래 이건 여행이고 이동 방법이 달리는 것이라고, 좋은 장소에선 때론 오래 머물기도 하는 것이지 마라톤대회처럼 기록에 신경 쓸 이유가 없음을.


소망길은 해안선을 따라 계속 이어졌다. 백사장이 펼쳐지기도 하고 때론 바위와 산이 길을 막아섰다. 그러나 길이 험한 곳은 데크와 계단으로 잘 단장되어 있어 시원한 바다와 예쁜 해안선이 잘 어우러진 모습을 감상하기엔 너무 좋다. 그동안 늘 찻길로만 쌩쌩 지나쳐버렸으니 이렇게 아름다운 해안선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살았었다.

예전에 가족여행으로 괌에 간 적이 있었다. 그때 백사장을 현지인이 달리는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이번엔 내가 현지인으로 이렇게 백사장을 달리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어릴 적 기억으로는 바닷물에 접하는 모래는 발이 잘 빠지지 않았든 것 같은데 여긴 생각보다 발이 푹푹 빠지는 것이 달리기에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래도 재밌다.

아무도 없는 바닷가 백사장, 쉼 없이 밀려드는 파도 그리고 파도소리.

지금은 대학교 3학년이 되어버린 큰딸이 아직 걷지도 못하던 시절, 처가식구들이랑 간절곶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그날 나는 아이를 안고 쉼 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보며 아이에게 말했었다. ‘저 파도를 봐라. 저 파도처럼 너도 세상에 끝없이 도전해라. 겁먹지 마라’. 그 아이는 지금까진 세상에 주눅 들지 않고 열심히 도전하며 잘 살고 있는 듯하다. 그 말을 이제 나에게 한다. 나도 나의 삶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세상에 도전하리라.

백사장을 벗어나자 길은 다시 계단과 데크길로 연결된다. 모랫길이 끝없이 펼쳐져있어도 좋겠지만 돌아서면 바윗길, 돌아서면 숲길, 돌아서면 푸른 초장길이 어우러진 우리네 산하의 아기자기함은 마치 싫증 날 틈을 주지 않는 유쾌한 사람과 같다.


구경도 하며 쉬엄쉬엄 달리다 보니 어느새 간절곶이다. 전국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뜬다 하여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한 행렬로 몸살을 앓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새해도 아니고 아직 관광객이 올 시간도 아니라 한산한 것이 참 좋다.  


간절곶을 지나면서부터는 해안가엔 카페와 펜션들이 이어져있다. 내 아이들이 어렸을 적엔 포장마차가 죽 이어져 있었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깔끔한 카페가 저마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멀리 원자력발전소가 보이는 걸로 봐서 종착점이 다 와가는 것 같다. 원자력발전소 주변은 지원금 받는 재미에 빠진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난 시한폭탄을 머리에 이고 있는 듯하여 원자로를 볼 때마다 두렵다.

원자로 냉각수를 바다로 방류하는 곳엔 낚시가 잘 된다 하여 낚시꾼들이 많이 있다. 오늘도 그렇다.

나사해수욕장을 지나면서는 더 이상 해안으로는 갈 길이 없다. 해파랑길을 알리는 리본도 도로를 향하고 있다. 도로로 접어들어 조금 가니 서생중학교가 나온다. 서생중학교 담을 따라 해안으로 내려가 보았으나 길은 여전히 없다. 앞에 군부대가 보이는 것으로 봐서 해안길을 만들기엔 장애가 많았나 보다.

다시 돌아 나와 서생중학교를 따라 포장된 도로를 이용해 마을 안쪽으로 내려가니 삼발이 방파제가 길이 끝남을 알린다. 여기가 종착점이다.

낚시꾼들이 이놈은 뭔가 싶은 눈으로 쳐다본다. 손목와치는 시간은 약 70여분, 거리는 약 10km를 알린다. 언덕에 세워놓은 정자에서 잠시 숨도 돌리고 물도 한 모금 먹고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왔던 길을 그대로 가기엔 재미가 없을 듯하여 돌아갈 땐 도로를 이용했다. 도로는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이나, 생각보다 차가 많지 않아 그렇게 위험하진 않다.

자전거 한 대가 나를 앞질러 가더니 오르막에서 낑낑대고 있다. 어쩌다 보니 내가 자전거를 다시 추월했다. 그 사람도 민망했던지 '오르막에서는 뛰는 게 더 빠르네요' 한다. 나도 힘들어 혀가 한 자나 빠져나온지라 대답도 못하고 죽어라 달렸다.

그렇게 오르막 내리막의 연속을 한참이나 지나다 보니 진하해수욕장 그리고 2시간여 동안 약 18km를 달려 최초 출발점 영선교 광장에 도착했다.

광장엔 중년의 남녀들로 구성된 색소폰 공연단의 공연이 한창이다. 벤치에 앉아 여성 색소폰주자의 연주 두어 곡 감상을 끝으로 나의 첫 달리기 여행은 그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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