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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채동 Apr 05. 2023

해파랑길 2코스

해파랑길 달리기 여행 첫 번째

1코스 종점인 해운대에서 화장실도 다녀오고, 백사장 계단에 앉아 미리 준비해 간 연양갱 하나를 먹었다. 시간이  오후 1시가 넘어 그런지 연양갱 하나로는 전혀 허기가 해결되질 않는다. 미니 에너지바 한 개를 더 먹어도 뭔가 아쉽다. 그렇다고 뜨끈한 국밥 한 그릇 말아먹을 수 도 없고, 더 쉬면 다시 달리기만 어려울듯하여 출발했다.


해변을 벗어나서는 길이 어지럽다. 길을 안내하는 리본도 잘 보이질 않고, 상가사이로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잖아도 배 고픈데 주변엔 온통 먹을 것뿐이니 더 괴롭다. 여기서 그만 길을 잃었다. 대충 방향만 잡아 좁은 골목으로 요리조리 올라가니 기차 폐선부지를 활용한 것인지 뭔진 잘 모르겠으나 젊은 사람들이 뭔가를 타려고 줄이 줄이 어마어마하게 길게 늘어져 있다. 나는 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기차 레일 옆으로 잘 정비된 데크길을 따라 천천히 뛰었다. 리본이 데크 난간에 묶여있다. 이제 길을 찾았나 보다. 해운대 달맞이길 밑으로 산 허리를 타고 돌아가는 길인 듯하다.  

데크로 잘 만들어진 이 길로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고 걸어온다. 경사도 별로 없고 해안 풍경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걸어갈 수 있게 잘 조성된 길이다. 뛰는 나로서는 별로다. 합성목재로 만든 데크가 뛰는 나로 인해 손상되지 않을까 싶어 마음이 불편하다.

한참을 가다 보니 기차역이 나온다. 여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린다. 예전 대만 가족여행에서 풍등 날리는 곳으로 가기 위해 열차를 탄 적이 있었는데  그곳이 연상된다. 기차는 달리는 나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천천히 간다. 좀 생하며 가버리면 좋으련만, 기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싫든 좋든 나를 쳐다보게 되니 힘든 척도 할 수가 없다. 젠장. 이 길이 꽤나 길다. 송정해수욕장까지 계속된다.

 송정해수욕장부터는 힘이 없어 다리를 들어 올리질 못하겠다. 편의점에 들어가 구운 계란 2개와 쵸코우유 하나 그리고 생수 0.5리터 한 병을 쌌다. 백사장 계단에 앉아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이제 옆이 조금 보인다.

오늘의 여정에서 송정해수욕장까지 총 3개의 해수욕장을 지나왔다. 각자 나름의 개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이곳 송정해수욕장은 서핑 강습하는 사람들로 바다가 비좁을 정도다. 내 눈엔 저렇게 조그만 파도도 다 타는가 싶지만 다들 너무 진지하다. 모래 위에 보드를 놓고 일어나는 연습을 하는 팀이 있는가 하면, 자세를 잡는 팀도 있고, 물속에 들어가 보드 위에 올랐다 물에 빠졌다를 반복하는 사람까지 다들 신나 한다. 그리고 저 백사장 끝에는 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떼로 모여 뭔가를 한다. 고함에 함성에 뭔진 몰라도 재밌나 보다.


얼요기도 했고 다시 출발이다. 가면서 좀 전에 학생들이 모여있던 곳을 지나게 되어, 보니 동아대 학생들이 단체로 MT라도 온 모양이다. 게임도 하고, 줄 맞춰 앉아 응원도 하고, 요즘 학생들도 이런 걸 하나보다.

리본은 나를 송정해수욕장 옆 죽도공원을 돌아 나오란다. 잠시 갈등했다. 겉으로 봐선 별것 없어 보이기도 하고 피곤도 하여 그냥 패스할까 망설이다. 지금 아니면 언제 또 오겠나 싶어 리본이 시키는 데로 한 바퀴 돌아 나왔다. 힘들어도 시키는 대로 하길 잘한 것 같다.

죽도공원을 돌아 나와서는 해동용궁사로 간다. 용궁사는 예전에 딸들이 아기였을 때에 처가 식구들인지 본가 식구들인지 기억이 확실치는 않으나 구경 온 적은 있는 곳이다. 그때도 주변에서 하도 유명하다기에 아이를 덜 쳐 업고 왔었다. 이제 세월은 흘러 함께 왔던 사람은 곁에 없고 나 혼자 그곳을 다시 가보게 됐다.

내 마음을 용궁사 부처님이 헤아려주셨나, 절은 입구부터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다. 중국에서 단체로 관광을 왔는지 깃발을 들고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용궁사를 통과해서 해변 가야 하는데 도저히 절 안으로는 들어갈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절 입구까지만 겨우 갔다 다시 돌아 나왔다. 다행이다. 그 사람은 없고 기억은 아직 살아있는 곳을 가기엔 아직은 마음이 힘들다.


원래 코스는 용궁사를 지나 국립수산과학원 뒤편 해안을 따라 대변항으로 가게 되어있으나 인파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고 수산과학원 앞으로 돌아 동안항에서부터 다시 정상적인 코스를 따라갈 수 있게 되었다.

동안방파제를 지나면서부터는 화려한 해변은 아니지만 오밀조밀한 해변으로 이국적인 분위기를 느끼며 산책하기에 딱 좋은 그런 해변이 쭉 펼쳐진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서서히 배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달리면 배가 결리니 더 이상 달릴 수가 없다. 한 번에 1킬로 이상을 뛸 수가 없다. 아마도 송정에서 먹은 계란과 쵸코우유가 속에 부담이 되었나 싶다. 뛰다 걷다를 반복하며 달리는 내 모습이 어지간이 힘들어 보였는지 2구간 종착점인 대변항에 다 와갈 무렵,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사람이 ‘그만 쫌 뛰소’하며 웃으며 간다. 내 얼굴이 곧 죽을 상으로 보였나 보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다리를 계속 앞으로 내디디니 결국 도착은 한다. 비록 배는 꼭꼭 쑤셔 1킬로도 연속으로 달릴 수 없고, 예전 군대 가기 전 포크레인에 깔려 부러진 오른쪽 발등이 30년이 지나 이젠 다 나았다 생각했던 그곳이 아파와 절뚝이며 뛰었어도 애초에 먹었던 마음 그대로 완주했다.

대변항 종착점에서 해파랑길 2구간 QR인증을 했다. 지도에는 총 거리 14.6km, 내 폰으로는 14.64km, 총 소요시간 2시간 12분. 그렇게 2코스도 완주했다. 오늘 하루 1, 2코스 총 거리 31.18km, 뛰고 걸으며 움직인 시간은 4시간 29분, 휴식포함 총 5시간의 여정을 모두 마무리했다.

 

나의 한계를 넘어보고 그 힘으로  아직은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딸들을 지켜줄 힘을 갖고자 시작한 해파랑길 달리기 여행은 나에게 그 이상의 많은 것을 안겨주었다.

한태수 작곡, 채정은 작사의 ‘아름다운 나라’ 노랫말처럼 ‘큰 바다 있고 푸른 하늘 가진 이 땅 위에 사는 나는 행복한 사람 아닌가’.

그래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렇게라도 행복하다 생각하자. 그래야 살지. 그래야 우리가 함께 꿈꾸고, 함께 했던 그 많은 날들을 증거 할 것이 아닌가.


나의 님이여

나의 두 발로, 나의 두 눈으로

이 땅에

이 아름다운 나라를 보시게

우리가 함께했던 이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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