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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채동 Jul 14. 2023

오름은 이 맛이구나!

내 큰누나가 제주도 한달살이를 갔다. 우리네 삶이 그렇듯 누나도 하루하루 헉헉대며 살다 보니 제대로 된 여행 한번 하지 못했다. 그러다 혼자된 동생이 걱정되어 동생 놈 살핀다며 따라온 산행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발목이 부러지고 말았다. 손주까지 본 젊지 않은 아지매는 수술과 재활에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동생에 대한 원망도 많을만했건만 오히려 이참에 그동안의 정신없는 삶을 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됐다니 내 마음은 더욱 미안하기만 하다. 

발목 재활도 끝이 나고 생각도 정리할 겸 혼자서 제주도로 한달살이를 간다니 그간의 마음고생과 돌아봄의 시간이 많이도 힘들었구나 싶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고, 여행도 해본 놈이 하는 거지. 그동안 여행이라야 딸들과 함께 어디 펜션 빌려 하루 놀다 온 게 다인 누나가 한 달이라는 긴 기간과 혼자라는 용기가 필요한 여행을 한다니 걱정이 많이 되었다. 

떠나는 날은 점점 다가오고 걱정이 되어 누나집엘 가보니 거실 한가득 짐이 쌓여있다. 주부답게 고추장, 된장 등 양념이 한가득이다. 이 많은 짐을 어떻게 가져가냐 물으니 차에 실어 배로 먼저 간단다. 딸들이 엄마의 걱정을 말끔히 해결해 준 듯하다. 


"누나야, 계획은 있나?"

"몰라 그냥 가면 되겠지"

"가고 싶은데 몇 군데 미리 안정해 두면 숙소에서 한 발짝도 못 나올 수도 있데이" 

누나는 자기 성격상 집에만 틀어박혀 있지는 않을 것 같다며 말은 걱정 없다지만 막내딸 말로는 엄마가 무섭다고 난리라 한다.


결국 누나는 혼자 제주도로 갔고, 며칠은 딸들이 수시로 엄마가 있는 제주도를 들락거린 통에 정신없이 보낸 모양인데 그 이후가 걱정되어 나도 제주도로 갔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 김해공항 탑승장에 혼자 앉아 있으려니 오히려 내 마음이 더 심란하다. 신혼여행, 아이들 데리고 몇 번 온 제주도 그리고 이년 전 선배들이 위로차 함께해 준 제주도. 모두가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이었는데 지금의 나는 오롯이 혼자다. 산에 혼자 가는 것과는 또 다른 외로움이 밀려든다. 그러나 이젠 이런 감정도 즐겨야 하지 않을까. 


제주공항에서 누나를 만나 숙소로 갔다. 가는 동안 그간의 무용담과 고생 이야기를 한 바가지나 들었다. 마침 누나 숙소가 다랑쉬오름 자락에 있어 매일 아침 다랑쉬오름에 올라간다며 내게도 꼭 다랑쉬오름을 보여주고 싶단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아침을 먹고 다랑쉬오름으로 향했다. 숙소에서 걸어갈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오름 입구 안내소까지 가는 길은 인적이 없는 약간 외진 길을 가야 했다. 누나는 이 길로 다랑쉬오름에 오르기까지 몇 번이나 무서워 돌아갔단다. 나는 남자라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여자기 때문에 느낄 수밖에 없을 불안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다랑쉬오름 안내소를 옆으로 돌아가는 시원한 길을 한참을 걸으니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이건 둘레길이고 너무 좋아 꼭 보여주고 싶었단다. 

"그래 누나 원대로 다 하소."

우리는 이제 본격적으로 오름에 오르기 시작했다. 약간 숨이 차려할 즈음 능선 같은 곳에 도착했다. 오름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었던 내겐 일반적인 산에서 볼 수 있는 능선쯤으로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숲이 우거진 이곳은 일반적인 산의 능선과 다를 바가 없었다. 능선을 따라 조금 더 오르자 오름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화산 분화구임을 알게 하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온 천지가 오름이다. 여기저기 솟아오른 크고 작은 오름들. 

산과 산이 서로 연결되어 계곡을 이루고, 능선을 이루고, 그 사이를 비틀어 길이 놓이고 마을이 들어서고, '주 봉이 어디네', '산의 기운이 어디를 통해 내려오네', '풍수가 어떠서 여기가 명당이네'하는 육지의 온갖 이론과 말들이 일순간 사라진다.

육지 산에서 보는 풍경은 한쪽은 첩첩 산이요, 다른 쪽은 산아래 마을들과 들판의 시원한 풍경이라 한다면 제주 오름에서 보는 풍경은 소위 말하는 360도 서라운드 뷰가 아닌가 생각한다. 

봉긋봉긋 쏟은 크고 작은 오름과 너른 들판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바다. 이것이 오름의 맛이 아닐까. 


다랑쉬오름 안내소에서 오름 안내지도를 가지고 숙소로 돌아와 오후엔 높은 오름을 가보기로 했다. 

높은 오름은 입구에 있는 공동묘지가 약간 얼씨년스럽다. 다랑쉬오름에 익숙해져 있는 누나는 썩 마음이 내키질 않는 듯하다. 계속해서 "혼자 왔다면 입구에서 돌아갔을 것 같다"라고 한다. 

다랑쉬오름에 비해 찾는 이가 적은 지 훨씬 원시스럽다. 표고는 400미터가 넘지만 기본 출발지점이 높아서 그런지 얼마가지 않아 정상이다.        

다랑쉬오름에 비해 분화구 깊이가 얕고 주변에 큰 나무는 없어도 예쁜 풀꽃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높은오름 정상에서 다음에 가볼 오름으로 손지오름을 택했다. 그런데 손지오름은 올라갈 수가 없었다. 입구를 찾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분명 등산로는 맞는 것 같은데 풀이 너무 우거져있어 도저히 헤치고 나갈 수가 없었다. 

대신 손지오름 옆에 있는 메밀밭에서 늦은 추수를 기다리고 있는 메밀꽃을 구경하는 것으로 서운함을 달랬다.


다음날은 어승생악으로 갔다. 어승생악까지 가는 길은 경치도 좋았고, 워낙 유명한 곳이라 우리나라 사람보다는 외국인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올라갔다 내려올 때까지 외국인을 더 많이 본듯하다.   

그동안 시계가 좋지 않아 어느 오름에서도 한라산을 보지 못했는데 이곳 어승생악은 한라산 자락이라 할 수 있어 멀리 서라도 한라산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동안 한라산은 저 혼자 우뚝 쏟은 분화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구나 싶다. 여러 크고 작은 오름들이 모여있고 그 힘을 받아 만들어진 최고로 높은 오름이 바로 한라산이구나 싶다. 우리네 삶도 그렇지 않을까. 저 혼자 잘났다 떠들어 대지만 실은 그 뒤에 보이지 않는 많은 희생들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그것을 너무나 간과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어승생악을 내려와서 분화구 세 개가 한데 어우러진 따리비오름으로 향했다. 내가 간 이후에라도 누나 혼자서 가기 힘들만한 곳을 가는 것과 지도를 보고 스스로 찾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나의 이번 여행의 목적이기도 했다.  

따라비오름은 마치 삼분할 반찬통 같이 서로의 영역을 잘 지켜주면서 어우러져 있다. 분화구를 보는 재미가 있는 오름이다. 어떤 이가 분화구 사잇길에 앉아 상념에 잠긴 듯 한참을 앉아있다. 우리도 나무 아래 밴치에 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많이도 주고받았다. 따라비오름을 끝으로 나의 이번 여행도 끝이 나간다. 조금 있으면 해가 질 것이다. 


누나가 김영해변에서 보는 일몰이 좋으니 그곳으로 가서 바닷가 구경도 하고, 해변에 있는 해녀횟집 회국수가 끝내준단다. 그리고 그 집 옆에 있는 커피숍에서 바라보는 일몰이 장관이니 꼭 가잔다. 누나가 내게 무척 보여주고 싶어 한다.    

김영해변에 우리가 도착했을 땐 바닷물이 조금씩 들어오고 있었다. 덕분에 바닷속 검은 용암의 속살을 온전히 볼 수 있었다. 쇳물을 부어 놓은 듯 검은 바위가 한 덩어리로 끝없이 펼쳐 저 있다. 


한 처음엔 오름들도 저렇지 않았을까. 붉은 쇳물이 식어 검게 변하고, 바람이 불어 단단한 끝을 어루만져 그곳에 풀이 자라고, 새들이 날아들고 숲을 이루기까지 얼마나 긴 세월이 흘렀을까. 대자연의 위대함과 끝없음에 비해 우리 인간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돌아본다.   

해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고, 바람은 선선하게 불어온다. 할머니 한분이 돌담에 비스듬히 올라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옆에 놓여있는 지팡이로 알 수 없는 박자를 맞추며 주문인지 뭔지 모를 말을 중얼거린다. 

가슴이 아프다.

그 옛날 아낙이 저러지 않았을까?.

뱃일 나간 남편은 돌아오질 않고, 해는 점점 기울어만 가는데 옆집 남편은 왔건만 내 남편은 오지를 않으니 그 속이 또 어땠을까. 할 수 있는 거라곤 오로지 기다림뿐. 기약 없는 기다림뿐. 그때 그 아낙도 지금 저 할머니처럼 알 수 없는 박자에 맞춰 무언가 중얼거림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도대불이라 불리는 옛날 등대가 있다. 저 위에 불을 놓는 사람의 심정은 얼마나 간절했을까. 올라가 보니 불을 놓을 수 있는 공간이라야 조그맣다. 한두 시간이면 또다시 장작을 넣어야 할 것 같다. 밤을 꼬박 새워 간절한 기다림으로 불을 넣고 또 넣었으리라. 풍어보다는 오직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누나의 마지막 일정은 하나도 이루어 지질 못했다. 횟집은 재료가 없다며 문을 닫았다. 맛집인 건 맞나 보다. 아쉬움에 누나는 어쩌질 못한다. 이 집에서 회국수 먹고 옆집에서 차 마시며 일몰을 볼 계획이 첫 단추부터 어긋나 버렸다. 

대안으로 다른 식당에서 회국수를 먹었으나 맛은 영 아닌가 보다. 나야 어차피 그 집 맛을 모르니 상관없지만 누난 너무 아쉬워한다. 그런데 구름이 아무래도 심상찮다. 일몰도 안될 것 같다. 우리는 숙소로 그냥 돌아왔다.


아쉬움은 누구의 것인가? 

먹어보지 못하고, 일몰의 멋진 장관도 보지 못한 내가 아쉬울까? 

아니면 그 맛을 보여주지 못하고 일몰의 장관도 보여주지 못한 누나가 아쉬울까?

아쉬움은 경험하지 못한 자의 것이 아니다.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쉬울 것도 없다. 

다만 못해준 내가 아쉬울 뿐이다. 

그래야 살 수 있다.


딸들 예쁘게 잘 키워 서울에 보낼 수 있도록 다 해놓고 그것 한번 보지 못하고 뭐가 그리 급해서 가버린 아내. 서울에 있는 딸들을 보러 가는 길은 아쉬움에 몸서리치는 길이다. 그러나 아쉬움은 내가 아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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