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蘊皆空(오온개공)
지인이 현대중공업 내에 조그마한 리모델링공사 중 조적일을 하게 되어 며칠 알바를 하였다.
새벽밥 먹고 막노동을 위한 작업복 차림으로 공장에 갔다. 안전교육을 받기 위해 교육장으로 가는 동안 만감이 교차되었다. 대학 선배, 동기, 후배 등등 많은 이가 이곳에 다니고 있고 지금은 대부분 부장급, 임원급으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허름한 작업복 차림으로 이곳에 서 있다.
현장에 도착하니 목욕탕과 창고를 만들기 위해 벽돌로 내부를 구획 짓는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당엔 내가 날라주어야 할 벽돌이 만 육천 장 정도 쌓여있었다. '저걸 다 날라야 이 일도 끝이 나리라.' 반장 영감이 리어카에 실어 밀고 가서 부어주는 시범을 보여주었다. 이제부턴 내가 할 일이다.
작업장 안은 시멘트 가루와 벽돌을 붙는 과정에서 쏟아지는 먼지의 캐캐함이 가득했지만 다들 묵묵히 제 할 일들을 하고 있다.
점심시간, 공장 직원들이 한꺼번에 몰리면 식당이 복잡하니 우리는 15분 정도 뒤에 식당으로 갔다. 그럼에도 식당 안은 밥을 먹으려는 사람들로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쇠를 만지는 고된 노동으로 배가 고파 그럴까 아님 분주히 움직이는 많은 사람들 때문에 덩달아 마음이 급해서일까, 숨도 쉬지 않고 바삐 숟가락을 놀린다.
낙하산병사가 비행기에서 뛰어내릴 순간을 준비하듯 바삐 먹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급하게 일어나 나간다. 그 속에 나도 빈자리 하나에 엉덩이만 걸치고 먹고 있다. 앞사람이 다 먹고 일어선다. 또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아 먹는다. 내 자리도 누군가 먹고 일어선 자리였고, 내가 일어나면 또 누군가 이 자리에서 밥을 먹겠지. 그렇게 식당은 돌아간다.
이 자리의 주인은 누구인가?
누가 주인이라 할 수 있는가?
정주영은 어디 있는가?
이 공장을 두고 그는 어디 갔는가?
죽어지면 이 몸뚱아리도 불속에 던져지고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는데 내 것이라 할 수 있는가?
내 정신은 온전히 내 것인가?
상황에 따라 화도, 슬픔도, 기쁨도 일어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정신은 내 것이라 할 수 있는가?
"照見五蘊皆空 "
오온이 비어있음을 알게 되니.
추진하던 프로젝트를 어렵게 어렵게 정상 괘도에 올려놓고 나니 회사의 해고 통보 그리고 며칠 뒤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 소중한 나의 모든 것이 한순간 물거품이 되어버린 그 참담함.
본부장이란 직책도, 언제나 함께 할 것으로 알았던 아내도 모두가 내 것이 아니었음을.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으로 알고 애를 끓이며 살아온 나를 잠잠히 돌아본다.
"度一切苦厄"
모든 괴로움을 극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