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여선 산문집.
[술꾼들의 모국어]
권여선, 한겨레엔, 2024년 9월, 볼륨 233쪽.
얼마 전 읽었던 박찬일 세프의 책([망할 토마토, 기막힌 가지])을 읽다 제 레이더 망에 포착된 책입니다. 요리사가 극찬한 책이니 그냥 넘어갈 순 없죠.
권여선 님은 1965년 경북 안동 生으로 서울대 국문과를 나와 평생 다른 직업에 종사하지 않고 작가로서의 삶만을 살아온 분입니다. 그 흔한 출판사 편집자 자리도 기웃거리지 않았네요. 대학시절 운동권 서클에 몸 담았고, 1996년 <푸르른 틈새>라는 작품으로 전업작가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운동권 세대와 광주 5.18 민주항쟁에 대한 부채감으로 [레가토(2012)]를, 인혁당 사건을 다룬 [토우의 집(2014)] 두 작품에 대해, “제가 소설가가 되면 꼭 써야겠다고 다짐한 소설입니다. 그 소설들을 쓰고 나자마자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느낌이었습니다” 라 밝히고 있습니다.
책은 음식,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술(소주)에 어울리는 안주 이야기입니다. 권작가는 ‘술과 안주의 작가’로 불립니다. 작품 여기저기에 술과 안주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 ‘酒類문화(한자어에 유의하셔야 합니다, 主流가 아닌 酒類입니다)의 마에스트로’입니다. 본인 스스로 알코올중독일 수 있다는 겸허한 인정의 근거로 “어떤 술자리에서도 결코 먼저 일어나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분입니다.
책은 [오늘 뭐 먹지?(2018)]로 출간되었다가 2024년 개정판으로 제목을 바꿔 다시 나왔습니다. 술과 안주, 그리고 자기 자신이 어우러지는 ‘삼위일체론’을 내세웁니다. 진정한 술꾼은 모든 음식을 안주로 일체화시키는데요. 책의 구성 역시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 順으로, 어울리는 술안주와, 어린 시절 추억, 그리고 계절을 따지지 않고 좋아하는 별미별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다른 작가들은 아이템을 정하고 관련 인물들을 취재한 결과를 토대로 작품을 쓰는 반면, 권작가는 자신과 가족, 친구 등 주변 인물에 대한 관찰과 말 걸기를 통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自傳的 이야기를 써나가는 작가입니다. 정여울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 외부의 서사’가 아닌 ‘내면의 서사’로 작품을 직조”하고 있습니다. “모든 음식은 술안주다. 안주가 되는 순간 모든 음식은 맛있다”는 지론을 가진 분. 저 같은 주당은 안 좋아할 수 없는 캐릭터입니다.
이제 계절별 술안주의 세계로 들어가 볼까요?
봄에는 순대와 순댓국, 만두와 만둣국, 김밥, 전(부침개), 죽과 젓갈입니다. 더위로 입맛을 잃기 쉬운 여름엔 냉면을 위시한 麵類, 물회, 땡초, 밑반찬입니다. 소고기 장조림, 명란젓, 오이지부침, 시래기나물, 가죽나물 등 단어 만으로도 입에 침이 고입니다. 가을은 냄비국수와 고로케, 시원함과 달디 담이 완성된 가을무, 이를 활용한 갈치조림, 굴비구이가 나오고, 겨울엔 감자탕, 꼬막조림, 어묵(오뎅), 집밥입니다. 주의해야 할 점은 ‘집밥 예찬론’이란 이름으로 모든 집밥을 숭앙하는 문화에 대해 거부 반응을 보인다는 점입니다. 재료가 다르고 요리하는 사람이 다 다른데 어떻게 모든 집밥이 맛있다 얘기할 수 있냐는 거죠. 똑같은 요리를 반복해도 결단코 똑같은 맛을 낼 수 없습니다. 더불어 어머니, 아내의 요리에 투입되는 노동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각자의 혀에는 각자가 먹고 살아온 이력이 남아있다”는 문장이 인상적입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의식주가 필요합니다. 먹지 않으면 굶어 죽듯 그중 제일은 食입니다.
지천에 벚꽃이 만발해 야간에도 가로등불빛을 받아 훤한 느낌입니다. 안주 이야기를 읽었으니, 오늘 술자리에 어떤 술안주를 먹을지 오전부터 행복한 고민 중입니다. 트럼프가 일으킨 중동(이란) 전쟁이 그의 일방적 선언으로 정전을 맞게 될 듯합니다. 오늘 술자리는 세계평화를 위해 건배를 해야 할 듯하네요.
건강을 위해 과도한 음주는 자제하세요.
대신 읽어도 읽어도 취하지 않는 이 책을 맛있게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올해 35번째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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