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아 너는 이런 인생을 살거라

by 녹차라떼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을 하고 긍정보다 부정으로 가득 찬 내 마음이 나도 모르게 흘러넘쳐 외부로 표출될 때 아차 싶은 순간이 있다. 바로 내 딸이 나의 어둠을 그대로 따라 할 때이다. 딸은 엄마를 닮는댔는데 그런 부분까지는 좀 못 본 척해줬으면 좋겠는데. 나의 어둠은 선척적인듯하다. 총량제처럼 어느 순간 내 옆에 다가와 일정기간 머물러야 떠나는 어둠이 때론 버겁다가도 지금은 내 일부로 받아들이곤 한다.


그래서 어느 순간 생각해 봤다. 내 딸만큼 나 자신도 소중하지 않은가. 그럼 지금부터는 내 딸이 살기를 바라는 방향으로 내가 한 번 살아보자. 그러면 자연스럽게 내 딸도 나를 따라 하지 않겠는가.


○오해가 생겼을 때

살아보니 모든 꼬인 것들은 제자리를 찾아가더라. 인과응보라는 말이 있지? 하지만 당장에는 오해를 바로잡고 싶겠지. 그럴 땐 딱 하루만 기다려보자. 시간이라는 게 진짜 신기한 힘을 가졌거든.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을 때도 하루가 지나면 어느 정도 이해도 되고 받아들여지기도 하더라고.


참 어려운 게 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거더라. 도대체 왜 그런 행동과 말을 했는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데 제삼자의 입장에서 양쪽을 보면 이해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 그 양쪽의 당사자가 됐을 때는 정말 시야가 좁아져서 상대편을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거지. 그러다가 영원이 틀어지기도 하는 거야.


하지만 오해는 언젠가는 풀리더라. 그때가 되면 나도 상대방도 자연스럽게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격하게 반응했던 나 자신이 머쓱해지는 거지. 그러니 오해가 생겼을 때는 일단 한 박자 쉬고 다른 일에 집중을 해보는 거야. 그러다 보면 시간이라는 놈이 그 매듭을 서서히 풀어줄 거야.


○나 자신이 초라해 보일 때

넌 정말 예쁘고 귀한 사람이란다. 아무도 너에게 함부로 할 수 없어.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엄만 그렇게 못 컸던 것 같아. 내가 얼마나 귀하고 예쁜 사람인지 말해주는 사람이 많이 없었어. 작은 실수에 위축되고 정돈되지 않은 내 모습이 못내 부끄러웠던 삶을 살았던 것 같아.


네가 태어나면서 순간적으로 엄마의 자신 없어하는 성향이 너에게서 보일 때 얼마나 놀랐던지. 딸은 엄마를 보며 자라니까. 그때부터 노력 중이야. '나는 정말 귀한 사람이고 그 누구도 나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 네가 그러길 바라는 마음에서지.


엄마는 '싫어요'라는 말을 잘 못했던 것 같아. 근데 세상 사람들은 '싫어요'라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을 '좋아요'라고 이해하더라고. 정확하게 표현해야 되더라. 엄마도 아직 힘들어. 첫 직장에서는 '싫어요'라는 말을 못 해서 모두가 싫어하는 상사와 마지막에 둘 만 회식자리에 남은 적이 있어. 다른 사람들은 다 그 자리를 피하는 거지. 아직도 연습 중이란다. '싫어요'는 잘못된 게 아닌 것 같아. 정확한 의사표현이 상대방도 편하니까.


○뜻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살아보니 길이 하나만 있는 건 아니더라.

소 뒷걸음질로 쥐 잡듯이 생각지도 못한 방향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기도 하지.


엄마가 승진을 앞두고 본사에서 연락이 왔어. 지금 본사 근무를 해야 조금 더 빠르게 승진을 할 수 있다고...

그런데 그때 나연이가 아직 어려 본사 근무가 녹록지 않았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순 없는 노릇이라

본사 진입을 포기했더랬어. 그런데 웬걸, 본사 인원 과부하가 돼서 가지 않는 내가 더 유리해진 거지. 빠르게 승진하지는 못했지만 적기에 원하는 것을 얻었달까?

길이 반드시 하나로 정해진 건 아닌 것 같더라고.


그런데 빨리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길이 하나인데 그 진입로에 못 들어갔으니 일단 실패라고 생각하고 포기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어. 엄만 그건 아닌 것 같아. 엄마의 성향도 그렇지는 않아. 오히려 사람들이 많이 가지 않는 길로 갔지만 같은 목적지에 도달했던 경험도 있어. 2000년대 초 엄마는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어. 각종 가격증과 스펙 준비로 정신이 없었지. 학원 여기저기 상담을 받았더니 취업 강의에 면접 학원까지 마치 그 코스를 밟지 않으면 절대로 취업을 할 수 없는 것 처럼 이야기하더라고. 묘한 오기가 생겼달까? 무엇보다 너무 많은 돈을 들여야 해서 고민이 되더라. 그래서 무료강의로 혼자 해보자 생각하고 선택과 집중을 했고 면접도 스터디를 찾아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준비했지. 그리고 엄만 원하는 직장을 얻을 수 있었지. 정해진 길은 없어. 어차피 목적지에만 가면 되고 그 길에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돈벌이를 목적으로 사람의 절박함을 이용(?)한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라.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은 없어. 뭔가 잘 안 풀릴 때는 잠시 놓아두고 머리를 좀 식히는 것도 방법이더라.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네 인생 전체를 봤을 때 '오히려 좋아'가 될 수도 있단다. 집착하면 시야가 좁아지는 것 같아. 과감히 눈을 돌릴 줄 알아야 된단다. 그럴 때 여행이 도움이 되지. 더 넓은 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한 곳에만 집중하던 네 생각을 확장해 보는 거지. 여행 갈 때 파트너로 엄마를 선택해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마무리해 본다^^


○트라우마가 널 끌어내릴 때

어려움이 없는 인생은 없다. 인생의 기본값이라 생각하면 되지. 중요한 건 어려움이 왔을 때 너의 마음가짐이야.


내가 초등학생(정확히는 국민학생)이었던 90년대 초반에는 트라우마라는 단어가 지금처럼 통용되지 않았단다. 지금의 육아처럼 세심하게 아이의 심리를 파악하려 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삼 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난 엄마는 어릴 때부터 유독 예민한 성격으로 잠도 잘 못 자고 짜증도 많이 내는 아이였어. 완전 반대 성향인 엄마의 엄마와 언니는 나를 미래인(현재에선 찾아볼 수 없는 성격??)이라 불렀지. 그땐 내 예민함이 내 잘못인 줄 알았어. 좀 더 세심하게 나를 살펴주지 못한 엄마에 대한 원망도 있었지만 그 시절엔 다 그랬던 것 같아. 지금보다는 조금 더 먹고사는 일에 집중하던 때니까. 예민한 성격으로 살기는 정말 불편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신경 써야 하거든.


내 딸인 너도 일부분 엄마의 성향을 물려받은 것 같아 안타깝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해. 무엇보다 중요한 건 너의 예민함이 절대 고쳐야만 하는 잘못된 성향이 아니라는 걸 네가 알았으면 좋겠다.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게 중요해.


예민함 덕분에 많은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단다. 일상 속에 불쑥불쑥 그 트라우마들이 마치 잔잔한 호수 위에 떠오르듯 뇌를 스칠 때 아무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고는 해. 무의식 중에 잠자고 있는 거겠지? 가해자는 모른다? 그게 나의 트라우마가 되었고 아직도 나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아무런 트라우마 없이 인생을 살아가길 바라는 게 엄마의 마음이지만 불행이라는 건 마치 반드시 누군가는 뽑는 꽝 뽑기처럼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야. 그 불행, 어쩌면 트라우마를 잘 넘기는 게 인생살이의 키포인트 아닐까?


최근에 오디오북에서 들은 내용인데 삶에는 '아 몰라' 마인드가 필요하대. 내가 그걸 고민한다고 해서 당장 해결할 수 없다면 아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그 마인드도 나쁘지 않아. 아니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해결되는 문제들이 생각보다 많더라. 엄마는 나를 괴롭히며 살았어. 눈앞의 불행이 해결될 때까지 나 자신을 괴롭히고 또 괴롭혔던 것 같아.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말이지. 너를 키우면서 바뀌려고 많이 노력해. 네가 날 닮지 않도록. 아 몰라 마인드 기억하자. 큰 힘을 발휘할 거야.




그러고 보니 엄마는 우리 딸과 더불어 성장하는 것 같구나. 몸은 이미 어른인데 마음속 어른아이는 이제야 성장을 시작하는 느낌이네. 불혹이 넘은 지금 비로소 삶을 가꿔야 하는 이유와 방법을 조금씩 배워가는 느낌이야. 그리고 아직 불혹(不惑)을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도 부끄럽지만 고백할게. 아직도 많은 유혹에 흔들리며 살고 있거든. 사람은 각자 자기만의 속도가 있으니까. 느리다고 조급할 이유가 절대 없단다.


지금까지 엄마의 삶은 종착역을 향해 달리기만 하는 느낌이었어. 뭐든지 '때가 되면 할 수 있을거야'라는 마인드로 포기했었지. 하지만 달려가는 지금 이 순간들이 모여서 비로소 내 인생의 스토리가 완성되어 간다는 것을 알아가는 요즘이야. 우리 딸이 엄마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지. 이토록 소중한 존재인 너와 내가 이토록 아름다운 인생을 함께 만들어간다는 게 벅차구나.


많이 사랑하고 항상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