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한 추석은 가라
추석명절이 모든 집, 누구에게나 환한 날인 것은 아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얼굴에 화색이 만연하여
가족들이 함께 모여 송편을 빚는 풍경,
온 집안에 고소한 기름냄새를 풍기며 전을 굽고
오랜만에 만난 사촌들의 큰 웃음소리가 담장 너머까지 들리는 것,
그것은 내가 티비뉴스 화면에서나 보는 이미지였다.
불행한 집은 명절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추석 전날 가난한 살림이지만 생쥐 같은 까만 눈망울로 기대하는 자식들을 위해 엄마는 삶의 의지를 있는 힘껏 끌어올려야만 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떡방앗간을 오가며 쌀을 곱게 갈아온 후 송편을 빚고 찌고, 혼자서 전을 굽고 나물반찬을 만드셨다.
정성껏 만든 그것들이 혹시나 상할세라 시원한 곳으로 이리저리 옮기는 엄마의 얼굴은 늘 슬픔과 알 수 없는 그늘로 어두웠다.
곧 닥쳐올 일을 예감이라도 한 듯이...
엄마의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았다.
자정이 가까워 오는 시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술에 잔뜩 취한 아버지가 짙은 알코올 냄새를 풍기며 마당을 들어서자 엄마는 그동안 참았던 고된 노동과 서러움의 한을 분노로 폭발시켰다.
죽일 듯이 아버지를 할퀴고 날카로운 언성이 담장을 넘을 때
장독대에 두었던 전과 송편은 아버지의 손에 의해 마당으로 내팽개쳐져 흙속에 뒹굴었다.
그 속에서 우리는 공포에 질린 채 침묵해야만 했다.
내가 기억하는 추석의 보름달은 희망이 아니라 절망의 달이였다.
몇년째 남편과 아이들만 시댁으로 떠나고 나는 혼자서 명절을 보내고 있다.
어릴 때 트라우마의 영향인지 명절은 친정에 가도 시댁에 머물러도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양가에 양해를 구하고 명절에는 혼자 있는 것을 선택했다.
효녀 효부대신 나를 돌보기로...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워낙 잘 웃고 긍정적이어서 좋은 부모님과 화목한 가정에서 몸과 마음 둘 다 건강하게 잘 자란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몰랐던 사실이 한 겹 두 겹 벗겨질 때 결국은 나와 같은 근기(내적인 힘)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처럼 남편도 시부모님들이 늘 싸우는 모습을 목격했고 그런 정서적 폭력은 우리 가정을 불행의 대물림 속으로 몰아넣었다.
나의 해결되지 않은 감정, 남편의 억눌러 두었던 분노는 우리 부모님처럼 잦은 충돌을 만들었고 그 속에서 아이들은 불안해했다.
이제, 내 아이들에게만은 내가 겪은 불행을 대물림해주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부터 안정된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내 감정을 내가 알아주고 지난 상처를 보듬고 ,
나를 온전히 사랑하고 존중하다 보면
남편도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우리 부부가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며 살게 되면 언젠가 우리 아이들은
티브이 속의 명절풍경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오늘 밤 달이 떠오르면 희망의 소원을 빌어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