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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거리 소설가 Aug 22. 2024

(단편소설) 소녀와 우물(完)

 어느 마을에 작은 우물이 하나 있었다. 그 우물은 마을사람들이 사는 곳과 너무 떨어져있고, 우물 안의 물도 많지 않아 주민들은 잘 찾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물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를 위해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어느 날, 마을에서 태어난 8살 정도 된 소녀가 놀면서 돌아다니다가 그 우물을 발견했다. 그 우물에는 작은 두레박과 그 옆에 두레박에서 물을 떠먹을 수 있는 표주박이 있었다. 소녀는 그 물을 너무 마시고 싶었지만, 어린 소녀의 작은 키는 두레박을 돌리는 손잡이에 닿지 않았다.     

 

 소녀는 매일 같이 그 곳을 찾아 있는 힘껏 손을 뻗어 도르래를 잡으려 노력했지만 늘 실패했다. 소녀는 하루하루 실망하며 돌아갔지만, 내일이면 잡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슬퍼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자연스레 소녀가 가족과 저녁을 먹을 때에는 오늘은 두레박의 도르래에 닿을 수 있었는데 아깝게 실패했다는 그녀의 무용담으로 식사자리를 채웠다.      


 소녀가 그 손잡이를 잡기위해 노력한지 1년이 지났다. 소녀는 1년 새 키가 많이 컸고, 이제는 도르래 손잡이를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작은 소녀의 힘이 문제였다. 도르래를 돌려 두레박을 올려야했는데 그녀는 충분한 힘이 없었다. 결국 소녀는 두레박 물을 기어 올리기 위해 또 1년 동안 힘을 길렀다. 그리고 소녀가 작은 우물을 발견한지 꼬박 2년이 되는 날, 드디어 그 곳의 물맛을 볼 수 있었다. 너무 맛있고, 시원했다.    

  

 다음날 소녀는 물을 담을 큰 병을 가방에 넣어 그 곳으로 갔다. 가족들에게도 그 맛있고 시원한 물맛을 맛보게 해주기 위함이었다. 소녀가 물을 길러 저녁식사 때, 물을 가져오는 동안의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식탁 중앙에 병을 올려놓았다. 가족들은 고사리 손으로 길러온 물을 다 같이 마셨고, 소녀의 가족은 행복했다.     

 

 그런데 소녀는 그날을 마지막으로 그 마을을 떠나야 했다. 소녀의 아버지가 다른 지역으로 발령을 받아 어쩔 수 없이 가족 모두가 이사를 가야했기 때문이다. 소녀는 이사 가기 직전에 그 우물에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작았던 소녀는 이제 곧 대입을 앞둔 숙녀가 되어있었다. 한적하고 무료한 시골생활을 뒤로한 채, 삭막한 도시에 삶은 그녀를 지치게 했다. 이제는 그녀에게 어렸을 때의 순수함은 없었다. 그리고 작은 우물 따위는 진작 잊었다.      


 그녀는 계속 대입에 실패했다. 그녀는 이제 가족도 싫고, 삶도 싫었다. 그때, 그녀를 바라보는 아버지는 오랜만에 가족여행을 가자고 했다. 그녀는 모든 것이 귀찮아 짜증을 냈지만 가족들은 그녀를 어르고 달래 결국 예전에 그녀가 작은 소녀였을 때 있었던 그 곳으로 갔다.  

    

 그녀는 그 곳이 싫었다. 많은 벌레와 가축분뇨냄새 그리고 구질구질한 시골풍경들이 그러했다. 캠핑준비를 하는 가족들을 뒤로하고 그녀는 정처 없이 걸었다. 목적지 없이 걷던 그녀의 눈에 어릴 적 작은 우물이 보였다. 그녀는 10년을 잊고 살았던 그 우물을 보자 눈구덩이가 뜨거워지면서 갑작스레 눈물이 흐른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연신 눈물을 훔치며 다시 가족이 있는 캠핑장으로 갔다.      


"엄마, 물통 좀"     


 어머니는 그녀에게 말없이 물통을 건냈다. 그녀는 물통을 들고 힘든 줄도 모르고 뛰어 다시 작은 우물로 갔다. 소녀는 그 우물 자세히 보고는 예전보다 더 작아졌고, 낡았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아직 두레박과 표주박이 그대로 있어서 다행이라고 느꼈다. 그녀는 힘을 내서 두레박 도르래 손잡이를 돌렸다. 끼익 끼익 소리를 내며 두레박 한 가득 물이 올라왔다. 그렇게 퍼 올린 물을 표주박으로 한 가득 떠서 마셨다. 그러자 아까와 다른 눈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눈물을 훔치며, 통에 물을 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족에게 갔다. 가족들은 그녀가 오기를 기다린 것인지 저녁상을 한가득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상을 보고는 자신이 떠온 물을 조심스레 테이블에 올려놨다. 그리곤 그녀는 가족을 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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