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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거리 소설가 Aug 29. 2024

(단편소설) 불청객(完)


 태수가 카페에 앉아 막 어둠이 내린 바깥을 보고 있자, 그 앞의 가게에서는 알록달록 네온사인 불빛으로 다시 그 거리를 밝혔다. 태수는 그 시간을 좋아했다. 그 거리를 붉은 석양이 비추다가, 어둠이 밝음을 잠식했을 때, 다시 네온사인으로 환해지는 작은 거리가 꼭 하루를 압축해 놓은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태수는 네온사인이 켜진 거리를 보며, 점원을 불러 위스키와 소다를 주문했다. 점원은 능숙하게 주문을 받아, 5분 도 채 되지 않아 그가 주문한 술을 가져다주었다. 술 옆에는 그가 늘 같이 주문하던 담배 두 개비도 놓여있었다.     

 

 “손님, 오늘은 담배를 따로 주문하시지 않으셨었죠? 매일같이 같은 메뉴를 주문하셔서 저도 모르게 담배까지 가져와 버렸네요”


 점원은 자신의 실수로 고객이 주문하지 않은 것 까지 가져온 것에 대해 적잖이 민망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태수는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괜찮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주문하려고 했었어요. 그냥 두고 가세요. 세심하게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태수는 점원이 자리를 떠나기 전에 담배부터 집어 들어 불을 붙였다. 항상 술을 한 잔 마시고 나서 담배를 피우는 그였지만, 오늘 만큼은 어린 점원이 더 이상 민망해 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태수는 입 안 가득 담배연기를 밀어 넣고는 술과 함께 연기를 쓸어 넣었다. 그리고는 밝은 빛이 감도는 거리를 계속 응시했다. 


 “아, 여기 계셨네?”     


 태수의 등 뒤에서 우렁찬 소리가 들렸다. 태수는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려 자신의 휴식을 방해하는 이를 확인했다. 그가 모르는 사람이었다. 태수가 어정쩡하게 고개를 돌리고 앉아있자, 그 사내는 태수의 당혹스러운 표정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의 앞자리에 앉았다.     


 “이태수 선생님이시죠? ‘정의’라는 소설을 쓰신?‘ 

 “네, 그런데요. 누구시죠”


 그의 태도는 그의 우람한 목소리보다 더 무례했다.    

  

 “저는 작가님 펜입니다. 다른 펜들에게 물어보니, 저녁식사 후 항상 이 곳 카페에서 거리를 바라본다고 하셔서 찾아왔습니다”

 “아, 제 펜이시군요? 저는 막 나갈 참이었습니다. 오늘은 조금 피곤한 일도 있었고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내일 낮에 보시는 게 어떠실까요?”     


 태수는 거구의 불청객이 싫었다. 그리고 내일 만나줄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그 거구의 불청객은 태수가 자신을 만나주지 않을 것을 알고라도 있는지 능글맞게 웃으며 태수의 의견은 무시했다.      


 “아니, 여기 술이 이렇게 많이 남고, 담배까지 하나 남았는데 어딜 가십니까?”     


 그 사내는 태수가 민망해할 말을 서슴없이 하고는 고래고래 ‘점원’을 불렀다.      


 “네, 손님”

 “나도 앞에 선생님이랑 같은 걸로 주세요”

 “위스키와 소다, 그리고 담배 두 개비를 드릴까요?”

 “네, 그렇게 줘요”     


 사내의 우악스러운 주문이 끝나고, 몇 초간 정적이 흘렀다. 태수는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싸인’이나 한 장 해주고 얼른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싸인 해드리겠습니다. 싸인 받으시려고 찾아오신거 맞으시죠?”

 “아닙니다. 선생님 싸인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태수가 피곤한 듯이 되 물었다.     


 “제 싸인이 필요없으시다고요?”     


 그러자 그 사내가 짧게 대답했다.     


 “네”     


 태수는 손을 이마로 가져가 문지르며 말했다.    

  

 “그럼 절 왜 찾아오신건가요?”

 “선생님과 대화하고 싶었습니다”     


 이번에는 태수가 짜증 섞이듯이 말했다.     


 “그런 거라면 내일 찾아오시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저는 저녁시간에는 그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상대는 개의치 않아하며 자기 할 말을 시작했다.      


 “선생님 작품, ‘정의’를 재밌게 봤습니다. 아주 재밌었습니다. 침몰하는 배에서 구사일생으로 뛰어내린 소녀, 그리고 그 소녀를 발견한 구명보트 속 6명, 그런데 그들은 그 소녀를 구하지 않았죠. 그리고 자신의 가녀린 딸이 어떻게 차가운 물속에 수장됐는지 우연히 듣게 된 그 소녀의 어머니, 그리고 그 어머니의 피의 복수. 그 어머니는 결국 6명 모두를 찾아내서 죽였죠. 소녀와 똑같이 익사를 빙자해서...”

 “아주 잘 알고 계시는 군요. 그렇게 잘 알고 계신데 제게 무슨 대화를 하자는 거죠? 솔직히 ‘정의’는 직관적인 소설이라 따로 토론할 만한 내용이 없을 텐데요?” 


 태수는 다소 냉소적으로 말하며, 말끄트머리에 그를 조롱하며 쏘아부쳤다. 하지만 상대는 당황하지 않고, 번들거리는 이마를 손바닥으로 닦으며 말했다.     


 “아뇨. ‘정의’야 말로 토론 거리가 무궁무진 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째서죠?”


 상대는 고쳐 앉고는 태수를 바라보며 제법 점잖은 투로 반문했다.   

  

 “선생님은 ‘정의’라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태수는 다소 의아해 했지만, 그의 물음에 고분고분 답했다.     

 “정의란, 절대적인 진리 아니겠습니까?”

 “선생님,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데요?”


 태수는 이제 포기했다는 듯이 상대 말을 받아치고 있었다.      


 “선생님, 소설의 내용 축약하면 ‘자신의 딸을 지켜주지 못한 어머니의 심판입니다’. 즉, 어머니의 심판이 ‘정의’가 되는 것이지요. 맞지 않나요?”

 “네, 뭐 그렇죠”


 태수는 술을 한 모금 한 뒤, 하나 남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저는 그게 잘 못 됐다고 생각합니다”

 “뭐가 말입니까?”

 “제 생각에 ‘정의’라는 것은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태수는 잠자코 그의 말을 들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 사내가 술을 한 모금 하고는 담배를 물더니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러니까, 정의라는 것은 상대적이라 이 말입니다. 소녀를 구해주지 않은 것이 ‘정의롭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 말입니다. 그 고무보트에 만약 그 소녀까지 태웠다면 그 고무보트가 한도 초과로 가라앉을 수도 있었고, 혹은 그 소녀를 태우는 과정에서 고무보트가 뒤집히기라도 했으면 모두가 물에 빠져 죽을 수도 있었다는 겁니다. 그 고무보트에 타고 있는 6명의 ‘정의’는 바로 ‘자기를 제외한 5명은 살 수 있도록 해야한다.’였습니다. 그 6명 중 1명이라도 그 소녀를 고무보트에 태우자고 말을 한 사람이 있었다면 그 사람은 위선자 일 뿐인 거죠. 즉, 선생님은 그 ‘어머니’의 정의에 대해서만 소설 속에 묘사를 하셨는데, 그럴 거면, 그 보트위의 6명에 대해서도 묘사를 해주셨어야죠”

 “제 소설에 대해서 이런식으로 이야기하는게 조금 웃기기는 하지만, 그게 무슨 말도 안 돼는 소리입니까? 어린 소녀가 몸무게가 나가면 얼마나 나간다고, 어떤 식으로든 아이를 구했어야 맞았습니다. 그리고 정의는 절대적인 진리입니다. 그 진리는 어려운 이를 보면 도와주는 것이 맞구요”

 “생각보다 꽉 막히신 분이었네”

 “할 말은 다 하셨습니까? 뭐, 의견은 주셨으니 다음 작품 활동 할 때, 참고 하겠습니다. 이제 그만 가주시죠”     

 태수는 그렇게 이야기하곤 시계를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밤 9시가 넘어 카페가 문을 닫을 시간임에도 카페 안에는 평소와 달리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태수는 혀를 차며, ‘분명, 우리의 대화에 흥미를 느껴 집에 가지 않은 얼간이들’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태수가 자리에 일어나려 하자, 그 사내가 다급이 말했다.    

 

 “아, 선생님 아직 질문이 남았습니다”     


 태수는 일어나려던 몸을 다시 앉히고는 한 숨을 크게 내쉬고는 손을 자신 쪽으로 저으며 말했다.     


 “할 거면 빨리하세요. 이제 정말 피곤하니까요”

 “‘정의’라는 소설의 모티브가 어떻게 됩니까? 선생님의 순수 창작인가요? 아니면 그런 경험을 토대로 작성하신 건가요?”

 “음.... 예전에 배가 뒤집힌 기사를 봤었습니다. 그 것을 모티브로 나머지는 창작한 거에요”


 사내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물었다.     


 “그 어떤 기사를 말하시나요?”

 “몰라요. 기억 안나요. 그냥 배가 뒤집혔다는 기사였어요. 그 이상은 저도 모릅니다”


 태수는 사내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사내는 그에게 위축된 건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잠시의 침묵조차 싫었던 태수는 다시 일어날 채비를 했다. 그때, 사내가 재빨리 말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 활동 부탁드리겠습니다”    

 

 사내는 자신에게 남은 담배 한 개비를 태수에게 주며, 다시 인사했다. 태수는 그에게 담배를 받아 입에 물었다. 사내는 태수의 담배에 불을 붙여주고는 완전히 일어났다. 태수는 그 가준 담배를 물고는 일어나 몸을 홱 돌려 나갈 채비를 했다. 그 때, 그 사내도 태수를 따라 일어났고, 그러자 카페에 있던 10명 가까운 사람도 일제히 일어나 그곳을 빠져나갔다. 태수는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듯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내가 카페를 빠져나갔다. 사내마저 나간 카페에는 태수와 점원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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