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1주기와 민주시민교육

기억이 기어이 길을 낸다.

by 유민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4월 16일. 열여덟 살이던 학생은 스물아홉 살 사회인이 되었겠지. 11년이라는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나면서 잊지 않겠다던 다짐에도 불구하고 조용한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초임교사 시절이던 2019년엔 학생들이 주도하여 커다란 칠판에 고래 그림을 그리고, 학교 곳곳에 노란 리본을 매다는 행사가 열렸다. 나도 아이들을 응원하기 위해 노란 가죽으로 고리를 만들어 함께 나눠주기도 했었다. 하지만 올해는 그 어디에서도 노란 리본을 찾아볼 수가 없다. 아쉽고 헛헛한 마음이 들다가 '그래, 이 아이들은 세월호 참사 당시 유치원생이었지. 세월호가 갖는 무게가 나와 이 아이들에게 같을 수는 없겠지.' 하며 현실을 깨닫는다. 그렇다면 어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또 다른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오래오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일일 거다.


그래서 오늘 수업시간에 세월호 11주기 특집 다큐멘터리 영화를 틀어주었다. 다음 주가 중간고사라 자습시간을 주기로 약속했던 터라 모두에게 집중하라고 하지는 못하고 관심 있는 사람만 보라는 말을 덧붙였다. 세월호 생존자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긴 영화라 몇 명쯤은 고개를 들어 화면을 바라볼 줄 알았는데 예상과는 달리 한 명의 학생만 영화를 끝까지 시청했다. 삼십 명 중 한 명. 어쩜 이리 무관심할 수가 있지? 아무리 이 아이들에게 세월호가 다소 낯선 일이라 해도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불과 3년밖에 되지 않았다. 희생자들도 또래 학생들이었고, 동료 중에 제자를 하늘나라로 보내야 했던 가슴 아픈 기억이 채 아물지도 않았기에 실망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런데 교실 한쪽에 스물아홉 명이 귀에 이어폰을 꽂고 문제집을 풀거나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을 때 끝까지 영화를 보던 한 명의 학생이 있었다. 스물아홉 명과 한 명. 이 한 명이 나머지 스물아홉 명과 함께 사는 세상을 바꿀 힘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이 느껴졌다. 현직 대통령이 계엄령을 내리고, 국회를 해산시키려 하고, 사람들을 잡아다 가두려고 시도한 나라. 한편에선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려 놓기 위해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선 시민들이 있는 나라. 이게 우리나라다.


비록 오늘은 한 명의 학생만이 내 수업의 의도를 이해한 듯했지만 입시경쟁에서 벗어나 스스로 사고할 줄 아는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함께 연대할 줄 아는 민주시민이 되길 바란다. 요즘 아이들은 왜 저렇게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이냐며 아이들을 탓하기보다는 세계시민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지치지 않는 내가 되길 또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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