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화 1971 가을 캐나다
스카보로 하이 스쿨

캐나다 고교 생활

by Engineer

캐나다의 새 학기는 9월 초 Labour Day 연휴 다음날인 화요일부터 시작한다. 9월의 연휴인 Labour Day

(노동절)는 9월 첫 번째 월요일이며 레이버 데이의 근원은 노동자들에게 노동 조건이나 급여를 향상하려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미국 영어의 레이버 스펠링은 Labor이나 영국 영어를 따르는 캐나다는 Labour을 사용한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나는 캐나다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조건이 안되었다. 한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엘리트 학교를 나왔지만 당시 이민자인 나의 캐나다 대학 입학 조건은 캐나다 고교 졸업장이었다. 한국은 나의 과거에 존재하는 아주 먼 나라가 되었고 캐나다가 나의 현재와 미래이니

조금 느려도 캐나다의 방식대로 사는 게 옳다는 생각이 들어 캐나다 고교를 다니기로 마음먹었다. 또한

알바를 하면서 강하게 느낀 것은 캐나다에서 나의 앞날은 오직 내 힘으로 헤쳐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부치한테 학교에 대한 얘기를 했더니 자기 학교의 교감 선생님 성함을(Mr. Skully) 알려주며 9월 학기

시작 전에 만나보라고 조언해 주었다. 자신은 12학년을 마치면 경찰학교에 입학할 것이라며 토론토 공대를 가려면 13학년까지 다녀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당시엔 12학년이 졸업반이지만 4년제 대학에 갈 경우 반드시 13학년까지 마쳐야 했었다. 학기 시작 며칠 전 부치가 알려준 대로 집에서 걸어서 30여분 거리에 있는 학교에 찾아갔다. 캐나다 온 후 처음으로 학교라는 데를 갔는데 한국과는 달리 학교에 담장도 교문도 없었다. 그냥

건물 앞에 있는 현관문으로 들어가면 되었다. 아무도 나를 저지하거나 쳐다보거나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내가 졸업한 한국의 고등학교는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정문은 등교와 하교를 제외한 시간외에는 항상 굳게 잠겨 있었다. 정문 옆 수위실에는 제복을 입은 수위 아저씨가 근엄한 얼굴로 출입을 통제했었다. 그래도 우리들은 자주 후미진 곳의 담장을 넘나 들었었지만..


아직 학기가 시작하지 않아 건물 안은 조용했고 선생님 들만 사무실 안에 몇 분 계셨다. 내가 기웃대자 한분이 누구 찾아왔냐고 물었다. 부치가 알려준 대로 Vice Principal(교감 선생님)을 찾는다고 얘기했더니 나를

데리고 교감 선생님 방으로 안내해 문을 노크하고는 나를 들여보냈다. 교감 선생님은 얼굴에 구레나룻

수염이 있는 분이셨고 어딘지 인자해 보이는 분이셨다. 그 분과의 대화,,

How can I help you?

Hello Mr. Vice Principal Sir, my name is Chul Soo Park. I am a high school graduate from South Korea. I live here in Canada now and I would like to attend your high school, so that when I graduate I can go to a university. 부치가 알려준 이 말을 그 전날 수백 번 속으로 되뇌었다.

When did you graduate?

In Spring this year Sir.

Do you have your transcripts with you?

난 여기서 잠깐 패닉 상태에 빠졌다. 트랜스크립트? 이 단어가 모지? 졸업장? 아닌데 졸업장은 그레쥬에이션 서티피케트 인데…. 혹시 성적표….. 그렇지 성적표일 거야 내가 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을 보려는

거겠지.. 이런 생각이 들자..

I am sorry Sir. I do not have one.

Can you get it from your high school in South Korea?

I will try sir. But I don’t know how long it will take.

Don’t worry, you can bring me when you have it.

On Tuesday morning 9 o-clock come and see me again.

이 말을 하시고는 자리에 일어나 나에게 손을 내미셨다. 그의 손은 내 손보다 두배는 더 컸고 키와 몸무게도 두배는 더 될 것 같은 거인이셨다. 그리고는…

You know, you might be the first Korean student in our school. Welcome to David & Mary Thompson Collegiate, Charles…. Ah, I am sorry Chul Soo.

순간 교감 선생님이 나를 흔한 영어 이름인 찰스라고 부르셨고 금방 철수로 정정하셨는데.. 난 문득 찰스란

이름이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치도 나를 여러 번 찰스라고 잘못 부르기는 했는데.. 어차피 난 캐나다에서 주욱 살아야 하니 찰스 파크라는 쉬운 영어 이름으로 사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될 것 같았다.

Mr. Skully, is it good idea to call myself Charles instead of Chul Soo?

Well, it’s up to you, but you might blend in easier with Charles than Chul Soo.

I think so too Mr. Skully. Thank you. Now I am Charles.


그렇게 나는 찰스가 되었고 다음 주 화요일 오전 9시에 교감 선생님은 나를 데리고 미스 무어의(Miss Moore) 반으로 가셨다.

Good morning Miss Moore. This is Charles Park I’ve told you about.

Charles, meet Miss Moore. She is your grade 12 homeroom teacher.

Good luck!


그것이 다였다. 그렇게 캐나다에서 나의 두 번째 고등학교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몇 달 후에 한국에서 영문으로 번역된 성적표를 받았으나 교감 선생님은 You are fine. I don't need to see it.라고

말씀하셨다. 느낌으로는 여러 선생님으로부터 나의 진행 상황을 들으셨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셨으리라 생각되었다. 실제로 12학년이 끝날 시 나의 성적표에는 모든 수학 과목(calculus, algebra, geometry)은 A+, physics, chemistry는 A, 그 외 문과 과목들은 선생님들이 조금 봐주셔서 C~C-정도를

유지했다. 사실 모든 수학 과목들은 한국에서 이미 다 철저하게 공부했었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캐나다의 수업 방식은 공식을 달달 외우는 것이 아니고 공식이 만들어진 과정도 가르쳐 이해가 훨씬 쉬웠다. 시험도 공식들을 외울 필요 없이 여러 공식을 열거해 놓고 맞는 공식을 찾아 문제 해답에 응용만 하면 되는

식이었다. 공식들은 이미 한국에서 배워 머릿속에 있었는데 만든 과정까지 알게 되자 수학 공부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대신 나에게 가장 어려운 영어와 문과 과목에 치중했었지만 영어로 모든 것을

해야 하는 과목들은 1년 사이에 쉽사리 향상되지 않았다. 그렇게 12학년 과정이 6월 3번째 주에 다 끝났고

여름 방학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다시 풀타임 주유소 직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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