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를 만나는 시간 8]

Q. 가족 사이에 아직 풀리지 않은 마음의 매듭이 있는가?

by 연하

Q. 가족 사이에 아직 풀리지 않은 마음의 매듭이 있는가? 부모님이나 형제자매와 마지막으로 진심을 나눈 순간은 언제였을까? 지금 내 마음이 바라는 가족과의 ‘회복’은 어떤 모습일까?


올해 어머니와 진심을 나누면서 마음속의 오랜 매듭을 풀었다.

마음의 매듭이란 서로 깊이 이해할 때에야 비로소 상처 없이 풀 수 있다. 특히 가족 간의 매듭은 잘못 건드리면 더 엉키거나, 아예 풀려고 시도하지 않은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많은 이들이 세월이 가도 아예 덮어둔 채 살아가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 형제자매에게 어머니의 말은 절대적이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우리를 키워내신 어머니에 대한 감사함 때문에, 그 뜻을 거스르는 것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특히 나는 더욱 그랬다. 나와 여동생은 상업고등학교로, 오빠와 남동생은 도시로 나가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던 차별에 대해서도, 우리 자매는 단 한 번도 서운함을 토로하거나 반항한 적이 없다. 그마저도 감사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뚜렷한 남존여비 사상 또한 이해했다. 어머니는 세 살에 아버지를, 마흔한 살에 남편을 일찍 여의셨다. 그런 어머니께 '남자'의 빈자리가 얼마나 크게 느껴졌을지 짐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딸아이가 내게 “엄마, 나도 아들로 태어날걸. 할머니는 남동생만 예뻐해”라고 말했을 때, 나는 크게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딸에게 말했다. “할머니가 널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란다. 다만 남자인 동생을 조금 더 사랑하실 뿐이야. 엄마도 그랬거든.”


내게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초등 졸업을 앞두고, 오빠를 인문계 고등학교에 보내기 위해 내가 1년을 쉬고 중학교에 진학해야 했다. '1년 선배는 깡패'라는 말이 있을 만큼 위계가 무섭던 시절, 1년 늦게 학교에 들어가면서 마음에 상처를 입었었다. 그랬기에 '내 자식만큼은 나와 같지 않게 살게 하리라' 다짐하며 아들딸 구별 없이 양육하려 애썼다.


자식을 향한 내 마음과 별도로 어머니를 이해하려는 마음은 내 결혼 생활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남편에게 잘하라, 힘들게 하지 말아라”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따라, 맞벌이를 하면서도 모든 살림을 도맡았다. 하지만 ‘나는 누구인가?’를 찾기 위한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어머니의 삶의 방식이 내게 그대로 대물림되어, 관성처럼 의문조차 품지 않고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정말 헌신적이셨다. 달팽이는 알에서 깨어난 새끼들이 어미의 몸을 자양분으로 먹고 자란다고 했던가? 내 어머니는 그런 분이셨다.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는 분. 그런 어머니께 반항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말씀은 '국룰'이었다.


나는 그저 어머니의 유별난 사위 사랑이 남존여비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작년,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며 문득 깨달았다. 어머니의 삶이 내 삶에 그대로 '프린트'되어 있었다는 것을.

작년에 용기를 내어 어머니께 물었다. “엄마, 제가 직장 다니면서 야간대 졸업하고, 한의대 입학한다고 다시 공부하면서 간이 많이 안 좋아졌잖아요. 거기다 임신 중 교통사고로 척추 협착을 앓으면서도 일과 육아, 살림을 다 해왔는데, 왜 제게 많은 역할들을 강요하셨어요? 사위보다 제가 더 안쓰럽지 않으셨어요?”


어머니는 뜻밖에 사위가 한없이 안쓰러웠다고 답했다. “일찍 엄마를 잃은 가온아빠가 너무 안타까웠어. 너도 알다시피 외할머니가 얼마나 나를 사랑해 주셨냐? 세상에서 엄마 없이 크는 아이들이 제일 힘들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사위 생각만 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너도 힘들었겠다.”

그 순간 나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나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 미련함과 어머니의 뒤늦은 위로가 뒤섞여,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 단지 너도 힘들었겠다는 말을 들었을 뿐이었는데 내 마음속에서 뭔가가 뚫린 기분이 들었다. 그 이후로 어머니는 우리 부부 사이를 간섭하지 않는다.


사람에게는 '자기중심'이 있어야 한다는 깨달음은 행동의 변화로 이어졌다.

돌이켜보면 남편은 내가 도움을 청했다면 기꺼이 응해줄 사람이었지만, 정작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은 나 자신이었다. 미안한 마음에 주저했던 과거와 달리, 나는 필요할 때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1주일에 3번은 요청하지 않아도 주기적으로 치료해줄 것', '집안일이 필요할 땐 요청하면 바로 해줄 것' 등을 구체적으로 부탁했다. 처음에는 잘 지키다 남편이 본인 생활에 쫓겨 이행하지 못할 때도 생겼다. 예전 같으면 또 혼자 짊어졌겠지만, 이제 나는 '예전과 달리 바로' 다시 대화를 나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이런 요청 자체를, 그로 인한 '불협화음'을 피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안다. 대화와 약간의 불협화음은 더 나은 성장을 위해 필요불가결한 과정이라는 것을.

이 작은 실천들이 쌓이면서 내면을 맴돌던 서운함과 불만들은 눈 녹듯 조금씩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그 빈자리에 새싹이 돋아나듯 마음속이 평온해짐을 느낀다. 어떤 깨달음이나 생각은 작은 실천이라도 실천으로 이어질 때에야 비로소 내 안의 ‘나’를 오롯이 키우고 굳건히 세울 수 있다는 것을 배운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나를 돌아보면서 57년 묵은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잡초라고 생각되면 피하지 않고 어떻게 대처할까? 고민해 보고 실천해 본다.


[나를 만나는 시간 9]


Q.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에게서도 배운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들이 내게 가르쳐준 교훈은 무엇이며, 그 경험이 지금의 나를 어떻게 더 단단하게 만들었나요?


질문은 나를 성장하게 합니다. 성장은 어제와는 다른 존재가 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나 자신을 알아가는 질문 수요일, 토요일에 연재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를 만나는 시간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