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버지께서 갑작스럽게 소천하셨다.
2025년의 추석은 이례적으로 긴 연휴였다. 개천절이니 추석이니 이 날 저 날 합쳐놓고 보니 거진 열흘에 가까운 연속 휴일에 사람들은 가족들을 만나거나 여행을 떠나기 위해 서울을 떠났다. 나 또한 결혼 이후에 자주 뵙지 못했던 어머니와 처가 식구들을 만나 뵐 생각에 마음이 들떠있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소식에 반가워야 할 연휴는 마냥 반가울 수 없었다.
연휴가 막 시작한 첫날 점심 즈음, 큰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마음이 일순간 복잡해졌다. 그저 슬픈 것이 아니라 '복잡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겠지만 큰 아버지의 죽음이 아버지의 죽음과 겹쳐 보였던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5년 전, 아버지께서는 약 4개월 간의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투병 기간 동안에 나는 아버지의 곁을 수시로 오가며 간병했고, 떠나시는 길조차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완벽하게 보내드리고 싶었던 나는 힘든 내색 없이 장례의 모든 과정을 치렀다. 외동아들에 편찮으신 어머니를 모시고 있던 입장에서 아버지의 간병부터 장례까지를 도맡아 책임지는 것은 당연하게도 나의 책임이었다.
그런데 그때 당시를 생각해 보면 나 스스로가 가엾게 느껴진다. 단순히 혼자 모든 과정을 짊어졌기 때문만이 아니다. 조문객으로 찾아온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을 만날 때, 나는 그들 앞에서 단 한 번도 눈물짓지 않기 위해서 애썼다. 지금에서야 그랬던 나의 모습이 더욱 애잔하게 느껴진다.
나는 왜 파도처럼 밀려오는 슬픔의 순간에 눈물짓지 못했을까? 당시에는 별 다른 이유랄 것도 없이 그냥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제야 톺아보건대 눈물지으며 약한 나의 감정이 드러나는 순간, 나는 단단히 서지 못하고 허물어져 내릴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항상 힘들 때에면 되뇌던 말이 있다.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어?"
이만큼 믿음직스럽게 보이는 말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한 편으로는 굉장히 무서운 말이다. 세상의 전부가 나라면, 나의 실패는 모든 세상의 실패이지 않겠는가? 외동아들인 내가 허물어져 내리면 아버지의 장례는 절차대로 올바르게 진행될 수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나의 나약함은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길 위의 걸림돌일 뿐이었다. 그러니 슬퍼할 수 없었다. 아니 슬퍼해서는 안 됐다.
이러한 그동안의 경험 때문인지 큰 아버지의 소천 소식에 슬픔보다 앞서서 책임감이 나를 찾아왔다. 대단한 양반가의 자제도 아니지만 유교적인 분위기에서 자라온 우리 집안의 '독자'인 입장에서 곰곰이 따져보니 나는 상주 노릇을 해야 할 팔자였던 것이다.
그러니 마음은 자연히 복잡해졌다. 나는 어디까지 얼마나 책임지고 이 지난한 장례의 과정을 또 짊어져야 하는 것일까? 지금 당장 가야 하나? 발인 날까지 계속 같이 있어야 할까? 또다시 막중한 책임감이 돋보기로 나를 들여다보며 나를 샅샅이 감시하고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정말 내가 세상의 전부이겠는가? 그럴 리가 없다. '아들'인 입장에서 곰곰이 따졌을 때에나 내가 상주이고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것이지 큰 아버지에게는 딸이 둘이나 있고, 큰 어머니도 계시고, 형제도 셋이나 더 있으시지 않은가?
불현듯 아내가 나에게 해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아내는 여럿이 모인 모임을 좋아한다. 극단적인 내향인으로서 소규모의 모임만을 좋아하는 나는 도저히 아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여럿이 모이면 모두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하니 에너지가 당연히 배로 쓰이지 않겠는가? 이러한 나의 생각에 아내가 아주 가볍게 답 해주었다.
"같이 얘기하는 거니까 내가 좀 못 들어도 책임감이 n분의 1 되어서 좋아!"
30여 년을 쌓아온 나의 책임감의 뒤통수를 제대로 때리는 한 마디였다.
중학교 과학 시간에 압력이라는 개념을 배운다. 압력은 좁은 면적에 작용할 때에는 많은 힘을 가한다. 하나의 기둥에 모든 압력이 작용한다면 아주 힘겹게 견디거나, 부러지거나, 휘어져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압력을 감당하는 면적이 많아지면 압력에 의해서 발생하는 힘은 분산되어 점차 작아지게 된다. 압력을 받아 견디어줄 기둥이 많다면 하나의 기둥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던 꽤 많은 압력을 견디어 낼 수 있게 된다.
세상에 홀로 선 외로운 기둥으로 살고자 한다면 압력을 견디기 위해 충분히 단단한 나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가끔은 끝없이 짓누르는 압력을 피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럴 때에는 주위를 돌아보자. 생각보다 나의 압력을 함께해 줄 이들이 많이 있다. 가족, 친구, 동료 누구든 좋다. 많이도 필요 없다. 한두 명이면 족히 압력을 분산시킬 수 있다.
또, 한가로울 때에는 주위를 돌아보자. 압력에 짓눌린 기둥이 있을지 모른다. 절실한 그 순간에 손 내밀어 빌려주는 그 어깨가 그 사람에게 어찌나 감사한 일일지 떠올려보자.
그리고 한 편으로 쓸데없는 짐을 짊어지고 압력을 받고 있지는 않은지 돌이켜보자. 내가 받고 있는 압력이 어쩌면 내가 만들어내어 짊어진 허상에 의한 압력일지도 모른다.